여기는…?
하아…
어째서 여기 있는 거야, 난.

멍해지려는 정신과 흩어지려는 기억을 간신히 붙잡고 상황을 떠올렸다. 나루토의 폭주로 구미호의 꼬리가 7개까지 나오자, 야마토가 다급하게 지원요청을 해왔었다. 이 이상은 혼자서 제어가 불가능하다고. 조금 떨어져 있는 거리에 있던 난 그대로 나루토에게 달려갔다. 이런 때를 대비해서 나루토의 스승이 된 이후부터 계속 봉인술을 익혀오긴 했지만… 8번째 꼬리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걸 보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무작정 기억나는 봉인의 인을 맺으며 달려들었다. 이미 나도 오랫동안 싸우고 있던 중이었고 만화경 사륜안때문에 꽤나 무리한 상태였다. 그러니까ㅡ

알고 있었다.
죽을 거라는 걸.

 

 

눈을 뜬 곳은 의외로 천국도 지옥도 아니다. 선선한 공기가 기분좋게 몸에 스며들고 뺨을 스치는 바람이 상쾌한, 맑고 맑아서 청명한 밤. 등뒤로 느껴지는 널찍하고 시원한 바위의 감촉이 침대만큼 푹신한 것도 아닌데 마음이 편안해져 온다. 쏟아질 듯 펼쳐져 있는 별빛들에 눈이 시리다. 딱딱한 바위에 제 안방인 것처럼 등을 붙이고 있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죽은 건지 정신을 잃은 건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어쨌거나 가지고 있는 마지막 기억으로는 분명 만신창이에 차크라는 바닥이고, 엉망인 몸이었는데… 지금은 조금 힘이 없고 나른할 뿐 어떤 상처도, 고통도 없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을 근처의 숲속, 꽤나 높은 언덕에 자리잡은 맨들맨들하고 커다란 바위. 덕분에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잠든 나뭇잎 마을과 주변의 숲들. 그리고 마을에 자장가라도 불러 주듯이 내려앉은 푸릇한 달빛. 불빛 하나없이 어둠에 잠겨있는 세상을 비추는, 은빛으로 빛나는 만월에 취할 것 같은 밤….

나는 이 곳을 안다.
그 옛날 언젠가, 내가 이 곳에 있었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져서 매일같이 떠올리고 그리워 했었다.
하지만 절대 풀어낼 수 없는 안타까움이 남아서 다시 찾아오진 않았었다.

그 옛날 언젠가ㅡ와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 밤이다. 바위 위에 걸터앉아 나른한 시선으로 바라본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너무 맑아서, 손가락으로 톡 건드리면 챙하고 유리처럼 깨질 것 같다. 어둠을 삼키기라도 할 듯 커다란 만월은 파리한 은빛 가루를 솔솔 뿌리고, 간혹 부는 청량한 바람이 그런 달의 향기를 전해온다.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지금은 그가 여기 없다는 것과 내가 그때의 그만큼 커버렸다는 것.

그래도 나쁘진 않다. 이렇게나마 다시 한번 그 시간을 추억할 수 있다는 것은. 내 체온보다 조금 낮아, 적당히 선선한 바람이 기분 좋다. 정말 그때로 다시 돌아온 것만 같다.


.
.
.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니?」


언제 나타난건지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는 그의 모습이 눈부셨다. 무슨 생각을 했냐고 물었지만, 이미 내 생각을 읽혀버린 것 같아 귀밑까지 얼굴이 달아오른 듯 후끈거렸다. 언제나 쓰고 다니는 복면은 이런때 꽤나 유용했다. 그리고 어둑한 밤중이라 내 표정이 잘 보이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 참 다행으로 느껴졌다. 비록 완벽한 원을 그리며 가득 차있는 달이 은은하게 빛나는 밤이지만.


「카카시는 보름달 뜨는 날이면 항상 여기 있더라.」


대답조차 없던 나에게 다시 한번 보여주는 태양같은 미소. 언제부터인가 이런 만월의 밤이면, 빼놓지 않고 이 곳에 찾아오게 된 것을 누구에게도 말하거나 보인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나를 알고 있었다. 평소엔 허술하다 싶을 정도로 실없이 잘 웃어대는 성격이라 빈틈이 많은 것 같아 보였지만ㅡ 사실 그는 언제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그의 등장으로 조금 빠르게 뛰기 시작한 내 심장도, 복면아래 붉어진 뺨도, 내가 달을 바라보며 태양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태양은 너무 눈이 부셔서 쳐다볼 수가 없으니까요.」

「사실은 태양이 보고 싶은 거구나, 카카시는.」


그의 모습이 언제나 눈부시다고 느꼈던 건, 밤바람에 찰랑이던 그의 머리칼이 달빛 아래에서조차 태양처럼 빛나는 금발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겨울을 녹이는 봄같은 미소가, 아픔을 쓰다듬는 따뜻한 손길이, 얼음처럼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버린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상냥한 마음씨가, 그를 빛나게 만들었다. 그 빛은 너무나도 따뜻해서ㅡ 사방에서 찔러오는 날카롭고 차가운 상처들 속에서도 난 숨쉴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는 내게 태양이었다. 하늘에 떠 있는 금빛이다 못해 새하얗게 빛나는, 눈이 아플정도라 정면으로 쳐다볼수도 없는 태양. 하지만 언제나 세상을 둘러싸고 있는 밝음과 따스함을 통해 그 존재를 느낄 수 있는, 그로 인해 만물이 태어나고 살아가고 다시 흙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태양. 나에게 있어 그는 그런 존재였다. 밤을 비추는 달을 보며, 나는 언제나 태양을 생각했다. 바라보기엔 너무 벅찼던 그를.

제 정신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들정도의 많은 상실을 겪었던 그 무렵의 나는, 말해야만 하는 진심을-그게 중요하면 중요한 것일수록- 직접적으로 입밖에 내는 것에는 별로 재주가 없었다. 사실 그럴 흥미도 필요성도 못느낄 때가 태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달빛 아래에서 내 마음을 고백할 용기가 생겼던 것은, 유일하게 내 곁에 남아있던 그 태양이 당시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도 훨씬 더 내게 소중했기 때문이 아닐까. 난 아직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선생님, 그거 알아요?」

「응?」

「선생님은 저한텐… 태양같아요.」


차마 똑바로 바라볼 수 없어서 우릴 비추던 달로 시선을 옮겼다. 시리게 빛나던 은빛의 만월. 그 빛은 두 눈에 아무리 가득 담아도 결코 눈부시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달은 한 별을 따뜻하게 데울 수 있을 정도의 온기를 가지고 있지도 않고, 다른 불빛들은 필요없을 정도로 세상을 밝히지도 못하니까. 밤을 비밀스럽게 드러내는 은은함은 그럴듯한 미혹(迷惑)일 뿐.

그가 태양이라면, 난 차가운 달이라고 생각했다.
창백하고 쓸쓸한 빛을 가진, 온기라고는 조금도 없는. 그래서 내게는 태양이 필요한거라고.

서툴지만 처음으로 드러낸 내 진심에ㅡ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분명 따뜻하고 눈부시게 웃고 있었을 나의 태양. 달을 보며 문득 느껴지는 서늘함에 나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때 쯤, 그의 다정한 목소리가 다시 한번 부드럽게 마음 속에 흘러들었다.


「카카시, 알고 있니?」

「네-?」

「너는 저 달을 닮았어.」


그는 달처럼 푸르스름하게 반짝이는 은빛의 내 머리카락을 슬며시 쓰다듬었다. 그의 손가락 사이로 내 머리칼이 사락거리며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굳은 표정으로 여전히 쓸쓸한 밤을 보내는 외로운 행성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래, 난 저렇게나 차가우니까.


「잘 봐, 아무도 깨어있지 않은데도ㅡ 이렇게나 세상을 아름답게 비추잖아.」

「………」

「난 너무 강해서 쳐다볼 수 조차 없는 빛보다ㅡ 어떤 시선도 거부하지 않는 달빛이, 사실은 더 따뜻한 거라고 생각해.」


여전히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시던 그가 하는 말은, 너무 포근해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얼핏 미약하고 차가운 듯 보이기도 하지만, 알고보면 태양조차 외면한 어둠을 감싸줄 정도로 강하고 상냥하지.」

「………」

「은백색으로 빛나는 만월은 너와 닮았어ㅡ 카카시.」

「………」

「아름다워.」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 머리칼을 헝클었다가, 다시 빗어내렸다 하면서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있었다. 달에서부터 불어오는 듯한 은색의 바람이 그의 금발을 가볍게 흐트리며 지나갔다. 단지 그에게서 몇마디의 말을 들었을 뿐이었는데, 달빛이 조금은 따뜻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바보같아.」


그에게 투정부리듯 뱉은 말은, 괜히 들뜨듯 뛰던 내 심장을 향한 것이기도 했다.

밤 중에 홀로 빛나는 만월을 보면서, 한번도 그가 말한 것처럼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안그래도 어두운 밤을 더욱 창백해 보이게 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흰 피부를 핏기조차 없어 보이게 만드는 내 머리카락처럼. 곁에서 수많은 별들이 함께 빛나고 있음에도 혼자만 튈 수 밖에 없는 달은 언제나 쓸쓸해 보였다. 그 외로움 속에서 점점 더 차갑게 얼어가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가? 선생님은 카카시도 같은 생각인줄 알았는데.」


돌이켜보면, 그는 그런 내 마음속을 훤히 다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 같다. 달을 보며 태양을 그리워한다는 것을, 내 자신의 무기력함을 달에 빗대어 탓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날 밤 내게 와서ㅡ 그런 내 생각을 한순간에 전부 바꾸어 놓았다. 봄날의 나른한 햇살처럼 가슴 속에 자리잡던 다정한 말 한마디로. 내 머리를 쉼없이 쓰다듬던, 한바탕 소나기를 뿌린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미는 햇빛같던 그 손길 하나로.


「…맞아요.」


고개를 떨구며 반대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귓가로 흐뭇하게 웃는 그의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내 두근거림도 그가 들을 수 있을정도로 커져버린 것 같아서 자꾸만 양뺨이 화끈거렸다. 어떤 눈빛을 해야할지 고민하는 사이, 때마침 불어오던 밤바람이 긴장해 있는 나를 부드럽게 진정시켰다. 다시 올려다본 하늘엔 파란 달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평화롭게 잠든 마을엔 푸른은빛이 온통 내려 앉아 일렁이고ㅡ 별들이 이야기하며 꺄르르 웃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깨끗한 숲 공기에 마음까지도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은빛 달이 빛나던 그 까만 밤….

그의 말이 맞았다. 그날 밤, 만월과 그 빛이 내려다보던 세상은 정말 아름다웠다.

적당히 선선하고 맑은 숲내음 베인 공기도, 바람에 사각거리는 나뭇잎들의 소리도, 아기의 눈처럼 반짝이던 별들도, 깊은 꿈을 꾸던 마을도, 어느 것 하나 빼놓지 않고 눈에 아련하게 들어왔다. 은은한 달빛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그 풍경. 그가 오기 전까진 전혀 깨닫지 못했던 그 모든 광경에 취할 것 같았다.   


하지만…

하지만,

그거 알아요?
달이 아름다운 건 태양이 있기 때문이라는 걸.
내 차가운 시선조차 따뜻하게 바꿔버리는 당신이
내겐 절실하다는 것을.


나는 말하고 싶었다. 내가 어떻게 숨쉬고 있는지를. 내가 어떻게 저 달처럼 빛나고 있는지를. 여전히 그는 미리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내 입으로 직접 전하고 싶었다. 조금 용기를 내어 돌아본 그의 얼굴엔 미소가 한가득 번져 있었다. 하늘에 향해있던 새파란 눈동자에 비친 달빛은 얼마나 부드럽고 따뜻했는지.


「선생님.」 // 「카카시.」


예상치 못하게 동시에 서로를 불러버려서, 나는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도 큰 눈을 더욱 크게 뜨며 나를 돌아보더니, 이내 다시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그 모습에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응-?」

「아, 그게… 아니예요, 아무것도.」

「말해봐ㅡ 듣고 싶어.」


정면으로 부딪혀오는 눈빛에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기도 하고 죽은 듯 멈춰버릴 것 같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간에 그 상태로는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기껏 용기내어 그를 불러본 것이 조금 허무해졌다.


「다음에… 다음 달에, 또 여기 오면… 그때 말할게요.」

「응. 그럼 그때 꼭 말해줘, 카카시.」

「선생님은 왜…」

「음ㅡ 나도 다음 번에.」


그렇게 말하면서 활짝 웃는 얼굴에 나도 똑같이 미소지었다. 선선하고 청명한 숲 공기에, 마음은 더할나위 없이 포근했던, 은빛의 만월이 빛나던 밤이었다.

짧게나마 이렇게 매달 그와 시간을 보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큰 선물을 받은 것처럼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그러나 아름답고 따뜻했던 밤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내게는 그 이상의 시간은 허락되지 않았다. 


.
.
.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니?”

“아아ㅡ 그냥… 에, 에엣??”

“카카시는 보름달 뜨는 날이면 항상 여기 있더라.”

“서, 선생님…?”


놀라울 정도로 그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웃는 그의 얼굴에 어안이 벙벙해진다. -처음부터 궁금했던 거지만- 왜 나는 천국도 지옥도 아닌 이 곳에 있는거고, 어째서 당신은 또 여기 있는 건가요? 내 의문이 가득 담긴 시선에도 그저 웃기만 하는 그의 표정에선 장난기마저 묻어난다.


“훌쩍 커버렸네. 옛날엔 조그마해서 귀여운 카카시였는데.”


‘하하’하며 천진하게 웃어버리는 그때문에, 나는 그에게 무언가를 물어보는 것은 그만두고 채념의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아니, 사실 질문같은 건 필요가 없다. 죽음을 맞닥뜨린 순간에 이 곳에서 눈을 뜨고, 그때를 추억하던 내 눈앞에 그가 다시 나타난 것 만으로도ㅡ 이 시간이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으니까.


“그때 그대로네요… 미나토 선생님은.”

“음, 나는 죽었으니까.”


죽었다고 말하면서도 뭐가 그리 좋은지 얼굴에 미소는 가시지 않은 채로, 깨끗한 공기를 몸속에 가득 채우려는 듯 눈을 감고 크게 숨을 들이쉰다. 그 모습이 너무도 아련하게 그려오던 것이어서인지 가슴 한쪽이 아릿하게 저려 오면서도, 여전히 눈부시게 빛나는 그 미소에는 마음이 따뜻해진다. 태양은 죽어서도 태양이다.


“여전하네, 이 곳은.”

“그러네요…”

“그러네요- 라니, 그 뒤로 한 번도 안 와본거야?”

“그게… 어쩌다보니.”


풋- 하고 작게 웃어버리는 그는, 분명히 알고 있다. 마지막인줄 알았더라면 그렇게 안일하게 ‘다음’을 기약하진 않았을 거라며ㅡ 지금까지도 그 시간을 아쉬워하고 있었음을, 그래서 다시는 이 곳에 찾아 올 수 있을리가 없었다는 것을. 하지만 언제나 그 따뜻했던 은빛의 밤을 잊지 않고 있었다는 것까지도…

야경을 내려다보는 그의 눈빛은 아스라히 멀어져버린 과거를 추억하는 듯 아련해져 있다. 당신의 기억 속에서도 그 시간은 내가 느꼈던 것만큼이나 따뜻할지. 이 만월처럼 빛나고 있는지.


“카카시도 여전하네. 여전히 빛나고 있어, 저 달처럼.”


바람에 흔들리는 그의 금발이 변함없이 눈부시다고 생각할 무렵, 그의 손이 내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너무나도 오랜만에 느끼는 감촉에 다시 어린 아이가 된 것처럼 심장이 박동한다. 이렇게 뛰는 심장도, 온통 열이 오른 것 같은 얼굴도 그 때와 다를 게 없다.

당신 앞에서 난 언제나 작아져 버리고 당신은 태양처럼 빛나. 너무 따뜻해서 가만히 두면 자꾸 차가워져 가는 나를 녹여 와. 지금도, 여전히.


“뭐… 선생님 덕분이죠.”


단 하나뿐이었던 태양조차 내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내곁에서 사라져 버렸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 짧은 시간이나마 느꼈던 눈부신 빛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있을리 없다는 것을. 때문에 더욱 그토록 따뜻했고 그토록 빛났고, 그래서 더 안타까운 그 시간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오랜만인데, 무슨 일로 왔는지도 안묻는 거야?”


또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 한없이 다정한 목소리.


“그러게- 여긴 왜 왔습니까? 나루토한테나 가보시지.”

“사실 그럴 예정이어서 나왔는데, 누구 덕분에 내가 나설 필요가 없어졌어.”


짓궂게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는 나에게 ‘누구 덕분에’라고 말하며 맞춰오는 눈길을 왠지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다. 괜시리 하늘로 눈을 돌리자 은빛 달이 따뜻하게 빛난다.


“그리고ㅡ 우리 여기서 다시 만나기로 했었으니까.”

“아아…”

“슬슬 시간이 다 되어가네.”


나란히 앉아있던 그가 일어남에 따라 나도 몸을 일으키자 그가 조용히 내 어깨를 잡고 몸을 돌린다. 마주 본 얼굴이 따스하고, 푸른 눈빛이 깨끗하고, 미소는 눈부시다. 그의 손이 닿은 어깨가 떨리고 있는 것 같아서 그를 똑바로 바라보기가 망설여진다. 따뜻하고 밝은 태양이 그때처럼 날 비춘다.


“카카시는 아직 함께 가긴 이르니까- 마을로 돌아가. 모두 기다리고 있을거야.”

“…알고 있어요.”


그는 다시 한번 태양처럼 웃었다. 끊임없이 뛰던 심장이 멎어버릴 듯, 쉬지않고 흐르는 시간이 멈춰버린 듯, 바로 눈 앞에 있는 그가 너무도 아련하다.


“카카시.”


내 어깨를 잡은 그의 손에 지그시 힘이 실렸다. 숨도 쉴 수 없을 정도로 한없이 부드럽고 다정한 눈빛이 나를 응시한다.


“…이제 들려줘. 그때 하지 못했던 말.”

 

*
*
*

 

깨질 듯한 두통과 함께 힘겹게 눈을 떴지만 이내 열려있는 동공으로 잔뜩 들어오는 빛때문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동시에 온 몸으로 엄습해 오는 욱신거림에 나도 모르게 ‘으읏’하고 고통을 호소했다. 그러자 곧바로 낯익은 목소리가 호들갑스럽게 귓가를 파고 든다.


“선생님! 카카시 선생님!! 정신이 들어요?”  


그를 똑 닮은 금발에 파란 눈을 한 소년의 얼굴이 뿌연 상태로 시야에 들어온다. 초점을 맞추자 걱정이 가득 담겨 있는 푸른 눈동자가 보인다. 그 눈동자 속에 아직 괴롭고 지친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내 모습도 비친다.


“…몸은 괜찮니, 나루토.”

“전 멀쩡하다구요! 저보다는…”

“제자 걱정할 여유를 부리고 싶으면 이런 꼴로 실려 오지마!”

“…면목 없습니다. 츠나데님.”


‘으이그’ 라고 혀를 차면서도, 안심했다는 표정을 보이는 츠나데님를 보고 나루토의 얼굴도 한층 밝아진다. 이렇게 살아있으니 아직은 네가 커가는 걸 더 지켜볼 수 있겠지. 넌 네 아버지만큼이나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으니까. 


“죄송해요, 선생님… 저때문에… 나 다시는, 정말 다시는! 그럴 일 없을테니까ㅡ”

“괜찮다, 나루토. 그건 내 역할이니까. 그리고 네가 언제나 노력하고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어.”


미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 듯 계속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는 나루토를 향해 할 수 있는 한 상냥하게 미소지어 보인다. 그 옛날 언젠가 보았던 눈부신 미소를 떠올리며. 내가 짓는 이 웃음이 태양만큼 밝고 따뜻하진 않겠지만ㅡ 그래도 태양에게서 받았던 그 빛을 조금이나마 전해주고 싶으니까.

 

*
*
*

 

“…미나토 선생님.”

“응.”


그 순간, 그가 내는 태양빛에 차라리 녹아내려 버리고 싶었다. 이런 나의 마음마저도 모두 들여다 보고 있을 그이기에.


“잊지 말아요. 달이 빛나는 이유를.”


기억해줘요.
달빛은 태양에서 온 것이라는 것을.
태양이 달을 비추지 않으면 달은 빛을 잃는다는 것을.


그는 조용히 날 바라보았다. 말없이 바라보는 눈빛 속에 미처 나누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들과 아쉬움이 모두 들어 있는 것 같아서, 그리고 나 또한 그런 모습인 것 같아서ㅡ 뚜렷하게 정의내릴 수 없는 감정이 금방이라도 눈가를 비집고 흘러내릴 듯 했다. 당신이 없었다면 난 빛이라곤 낼 수 없는 죽어버린 별이 되었을거라고, 이런 날 잊지 말아달라고, 그 옛날 하지 못했던 말을 이제야 겨우 전하게 된 나는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그때의 당신은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나만큼이나 떨리고 있는 그의 눈빛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카카시.”


내 어깨를 잡은 그의 손이 다시 한번 꽉 쥐어지는 감촉에 무언가 대답을 하려던 내 목소가 다시 죄여 들어갔다. 곧 그의 한 손이 천천히 내 복면을 끌어내리기 시작했다. 그의 손가락에 걸려 스륵 미끄러져 내려가는 느낌에 몸이 움츠러들었다. 더이상 표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빠르게 뛰는 심장이 뿜어올리는 피가 내 얼굴을 온통 붉게 물들이고 있음을 어둠과 복면에 기대어 감추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달빛에 내가 모두 드러나 버렸다.

화끈거리던 뺨과는 달리 아마 조금은 하얗게 질려 있었을 내 입술에 그의 입술이 부드럽게 닿아왔다. 미끌어지며 들어오는 혀가 태양처럼 뜨겁고 포근했다. 만월은 시간조차 은빛으로 산란시켜버리는 것인지 나는 그 짧은 순간이 내가 살아온 인생보다 길게 느껴졌다. 바라보면 너무 눈부셔 눈이 멀 것 같았는데. 닿으면 너무 뜨거워 타버릴 것 같았는데. 원래의 내가 차가웠기 때문이었을까, 그는 여전히 한없이 따뜻했다.

처음 닿을때 만큼이나 살며시 떨어진 그의 입술이 이번엔 내 귓가로 다가와 작게 달싹였다. 그 따뜻한 목소리가 우리의 진정한 마지막이었다. 가득 차오른 만월이 우릴 비추던 까만 밤에.


“잊지 않아. 저 달이 빛나는 한.”

 

 


-Fin.




2011. 10. 12. 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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