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의지 下.

Dedicated to 시란 in 카카총수연합
Written by pathos.





“우오오옷!! 야마토 대장님! 이건 그럼 첫 데이트 성사! 아니냐니깐요?! 와, 여태 그렇게 애쓰더니-읍!!”

“자,잠깐! 나루토! 데이트라니, 그런거 아니야!”


흥분해서 소리치는 나루토의 입을 다급하게 막은 야마토는, 누가 듣기라도 했을지 조바심을 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입이 막혔음에도 상관하지 않고 나루토는 계속해서 무언가 말하느라고 웅얼웅얼 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런 나루토를 향해 야마토는 검지 손가락을 세워 조용히 하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이미 얼굴은 새빨게져 있는 채로.

첫 데이트라니…. 미처 그런 단어까지는 떠올리지 못한 야마토였다. 야마토의 머릿속은 이미 뇌세포마다 과부하가 걸린 상태가 되었다. 카카시선배가 데이트 승낙을 해준 것이구나. 버둥거리는 나루토를 앞에 두고도 야마토는 금세 좀 전에 카카시와 나눈 대화상황을 다시 떠올렸다.

.

「선배, 저녁 대접 한번 해드리고 싶다니까요.」

「글쎄, 딱히 대접받을 이유가-」

「제 생일때도 그렇고, 선배 생일날도 계속 거절하셔서 결국 못했잖아요.」

「네 생일날 왜 나한테 저녁대접을 해. 내 생일은 굳이 안챙겨도 되고.」

「그냥 제가 맛있는거 해드리고 싶어서 그래요-, 내일이면 저는 장기임무라 언제 돌아올지도 모른다구요.」


카카시는 책을 들고 있는 자신의 손에 흘끗, 눈길을 주었다. 잔뜩 딱지가 앉아서 움직일 때마다 기분 나쁜 통증과 당기는 느낌이 들던 손등이 어느새 한층 가라앉아 있었다. 과연 그 약이 효과가 있긴 있나보군. 물끄러미 시선을 야마토에게로 옮겨가자, 야마토는 때를 놓치지 않고 좋아하는 가지무침과 꽁치구이를 준비하겠다는 말을 덧붙인다. 슬슬 이 저녁식사 초대가 귀찮아지던 카카시는, ‘네에-??’하고 답을 조르는 야마토의 목소리에 그냥 들어주는 편이 훨씬 속 편하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하… 뭐, 정 그렇다면.」

「네? 선배 방금 뭐라고…」

「저녁, 먹으러 가겠다고.」

「선배!! 그거 정말이죠?! 7시예요!」

.

“지금 누구보다도 데이트라고 생각하고 있는건 야마토 대장님 아니냐니깐요?”


어느새 자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시퉁한 표정으로 말하는 나루토 덕에 회상을 멈춘 야마토는, 다시 한번 주변을 살펴보았다. 당황스러움에 얼굴은 여전히 화끈거리고 있었다.


“쉿! 글쎄, 그런거 아니라니까.”

“아니기는요.”

“그나저나 어째서 그런식으로 생각하는 거냐, 나루토! 내가 카카시 선배를 좋아하… 아니아니, 아무튼! 우린 그런 관계가…”

“별로 숨길만한 일도 아니라니깐요. 야마토 대장님이 카카시 선생님 좋아하는 거 마을 사람들도 다 안다구요!”

“그럴리가! 아무한테도 말한 적 없는데…! 나루토… 너한텐 이미 늦은 것 같지만… 아무튼 이건 비밀이야.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돼! 특히 카카시 선배한테는….” 

“…알았다니깐요.”


다른 대답으로는 결코 만족하지 못할 야마토임을 아는 나루토는 귀찮지만 대충 대답하고 야마토에게서 벗어났다. 그래도 ‘처음부터 비밀도 아니었는데 왜 당사자들이 제일 둔하냐니깐!’ 하고 꿍얼거리는 것을 잊지 않았지만, 야마토는 더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야마토의 머릿속은 이미 ‘첫 데이트’라는 네 글자와 함께 카카시에게 어떻게 둘도 없는 근사한 저녁식사를 대접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

“…이 꽁치, 진짜 갓 잡아온 거 맞는거죠?”

“아아, 그렇다니까. 야마토 총각, 오늘은 유난히 까다롭구먼. 무슨 일 있수?”

“사실 그게, 오늘 저녁에 아주아주 중요한 손님이 오기로 되어 있거든요. 하하하.”


얼굴이 붉게 상기된 채 어딘가 붕 떠있는 모습으로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야마토를 보며, 마을 사람들이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야마토가 이렇게 신나서 돌아다닐만한 일은, 그것도 중요한 손님을 대접한다며 장을 볼 일은, 단 한가지 경우밖에 없었다. 짤막하게나마 이야기를 나눈 상점 주인들은 야마토의 두리뭉실한 대답에도 모두, ‘카카시로군, 이거 뉴스인데?’ 라고 생각했다. 저도 모르게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는 야마토를 보며 모두들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다. 야마토만 보면 완전히 데이트라도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도대체 어떤 과정으로 ‘그 카카시’와 일이 잘 풀리게 된 것인지?! 대사건이라면 대사건인 이 일은 삽시간에 온 마을로 퍼져나갔다. 

야마토의 모습을 직접 보지 못한 사람들은 처음엔 쉽게 그 소문을 믿지 않았다. 보나마나 카카시의 의미없는 행동에 혼자서 무언가 착각한 것 아니겠냐는 반응들이었다. 하지만 다음날, 그 둘이 저녁을 어떻게 보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소문은 강력한 증거를 얻은 ‘진실’로 변모해 갔다.


*
*


이른 아침, 장기임무를 떠나기 위해 가면을 쓴 암부 닌자들이 마을 입구 집합장소에 도착했다. 가까스로 늦지는 않았지만, 가장 마지막으로 도착한 고양이 가면의 닌자가 불안한 듯 자꾸만 마을쪽으로 시선을 두자 보고 있던 다른 닌자가 말을 걸었다.


“텐조, 왜 그래? 무슨 문제 있어?”

“아… 아니. 카카시 선배가 어제 우리 집에서 자서, 그냥 나오긴 했는데 역시 깨우고 나올 걸 그랬나 하고…”

“뭐? 카카시씨가 지.금. 너희 집에서 자.고. 있다고?? 내가 아는 그 하타케 카카시 이야기하는 거 맞지??”

“역시 깨우고 나올 걸 그랬나? 평소엔 이 시간이면 일어나시는 것 같긴 한데… 어젯 밤부터 피곤했는지 너무 곤히 자고 계셔서… 배도 고프실텐데….”

“어젯 밤? 피, 피곤??”


야마토가 뱉어내는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 엄청난 내용이라 이 암부닌자가 경악하고 있는 것인데도, 야마토는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계속 ‘깨우고 나왔어야 하는가-’라는 초점이 엇나간 문제에만 신경쓰고 있었다. 게다가 정작 야마토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는지 가면을 고쳐쓰는 얼굴이 유달리 퀭해 보였다. 어제 저녁, 소문을 듣기는 했으나 믿지 않았던 사람들 중에 속해 있던 야마토의 동료들은, 임무를 떠나기 직전임에도 이 엄청난 소식을 담은 전령을 지인들에게 보내 놓는 것을 잊지 않았다. 덕분에 ‘어젯밤 카카시가 야마토의 집에서 잤다.’라는 사실은 ―소문이란 것이 으레 그렇듯이― 사람들의 상상력으로 살이 붙고 기승전결을 갖춘 형태로 발전하여 온 마을을 떠돌아 다니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이 소식은 곧 나루토와 사쿠라의 귀에도 들어갔다. 어딘가 남사스럽기까지 한 이야기로 변질되어 버린 그 이야기를, 나뭇잎 마을에서 가장 믿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이 둘이었다. 두 사람은 이야기를 듣자마자 무언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알고 있는 카카시와 야마토는 절대로 그럴만한 위인들이 아니었다. 생각이나 행동을 파악하기 힘든 카카시쪽은 그렇다 치더라도, 야마토에게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루토와 사쿠라는 직접 확인을 하기 위해 카카시를 찾아나섰다. 카카시는 마을 변두리 한적한 곳에서 큰 나무기둥에 기대 누워 독서를 즐기고 있었다. 이 난리통의 주인공이면서도 마을에서 누구보다 태평한 모습으로.


“카카시 선생님!!”

“여어- 좋은 아침.”


평소처럼 태연자약하게 웃어 보이는 카카시는 지금 마을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돌아다니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세상 일에 무관심한 것에도 이제 정도란게 있어주면 안될까, 이번만큼은 제 스승의 살가운 미소에도 터져나오는 한숨을 삼킬 수가 없어서 사쿠라는 잔뜩 인상을 구겼다. 그 모습을 본 카카시가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기도 전에, 나루토가 앞도 뒤도 잘라내버린 본론을 툭, 집어 던졌다.


“선생님! 어제 야마토 대장님 집에서 잤다는게 정말이냐니깐요?”

“음? 너희들도 보자마자 그 질문이야?”

“또 누가 물어봤어요?”

“에- 오늘 마주친 마을 사람들 전부.”

“그, 그래서 대답은요??”

“뭐, 일단은 ‘그렇다’ 인데…”

“뭐라구요오오오오오옷???????”


잠자코 대화를 듣고만 있던 사쿠라까지 나루토와 동시에 놀라움을 표하자, 대체 왜 그런 반응들이냐는 듯 카카시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오늘따라 왜들 이럴까. 물론 누군가의 집에 초대되어 저녁을 먹는다는 것도, 거기다 처음 간 곳에서 그렇게 잠들어 버리는 것도 일반적인 일은 아니었지만― 아무리 평소같지 않았다 한들, 어째서 모두 그걸 알고 있는지. 왜 이렇게 관심을 가지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카카시였다.

고랭크 임무를 받았을 때만큼이나 두 눈을 빛내며 들뜬 목소리로 질문을 쏟아내는 나루토에게 카카시는 단답형으로 대꾸했다. 사쿠라와 나루토가 이미 짐작했던 대로, 카카시가 야마토의 집에서 자게 된 경위는 마을에서 떠돌고 있는 이야기와는 전혀 닮은 구석이 없었다.

간단히 저녁이나 같이 먹는 걸로 생각했는데, 야마토의 집에 도착하니 도대체 어떻게 준비한 건지 테이블을 가득 채운 진수성찬이 펼쳐져 있었다. 왠지 미안해지기까지 한 카카시는 마지막으로 완성된 전골요리를 식탁으로 옮기는 야마토를 향해 ‘고마워, 잘 먹을게.’ 라고 웃어 보였다. 그 인사를 받은 야마토는 순간 무언가 얻어 맞은 듯, 이상하게 울기라도 할 것같은 표정을 짓더니 급기야 손에 든 것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카카시는 과하게 들떠있다 싶더니 결국 일을 치는구나 싶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침착하게 주변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야마토는 거의 패닉상태에 빠져 있었다. 다행히 심하게 데이지는 않았지만 야마토의 옷 또한 엉망이 된 상태였다.

사실 꽁치구이라든가 가지무침같은 좋아하는 음식들은 이미 식탁 위에 멀쩡하게 자리잡고 있었기에 카카시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지만, 카카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야마토는 미안하다고, 다시 만들어 주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카카시는 딱히 못기다릴 정도로 배가 고픈 것도 아니고, 거절하면 두고두고 미안해 할 것 같아 야마토의 이야기를 승낙했다. 야마토가 간단히 샤워를 하고― 다시 음식을 만드는 동안, 카카시는 소파에 누워 책을 읽고 있었다. 그리고 따뜻한 방안 공기와 푹신한 소파 때문인지 그대로 잠이 들었던 것이다. 야마토가 나간 직후에 깨어난 카카시는 자신을 위해 그대로 남겨진 음식들을 최대한 맛있게 먹어주고, 뒷정리도 마친 다음 빈 집을 빠져 나온 참이었다.


“뭐, 그런고로 원래 계획이었던 저녁식사는 결국 못했다만.”


어느새 묻는 말에 대답해 주는 것조차도 귀찮아졌는지 카카시는 말 끝에 한숨을 덧붙였다. 이제 더이상 질문은 없겠지,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분명히 전해지는 무언의 압박에도 나루토는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쏟아냈다. 그렇다면 지금 아주 큰일이 났다고, 마을에서 무슨 소문이 돌고 있는지 아시냐고 소란을 떨었다. 책으로 시선을 돌리려던 카카시는 다시 한번 의뭉스러운 표정을 나루토에게 보냈다. 무슨 소문?


“그러니까요, 지금 마을 사람들은 선생님이이이익!!!”


잠자코 두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사쿠라가 갑자기 나루토의 볼을 찌익 잡아 당겼다. 동시에 멋쩍게 헤헷- 하고 웃으며 눈빛을 맞춰오는 사쿠라에게 카카시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이제 책 좀 봐도 되겠지? 읽다가 중단된 문장을 찾아 마저 읽으려는데, 이번엔 ‘근데요, 카카시 선생님.’, 사쿠라의 목소리가 카카시를 방해했다. 이젠 네 차례냐, 시선을 옮기자 사쿠라는 계속 헤실거리며 답지않게 카카시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나루토는 벌게진 볼을 문지르며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으로 사쿠라에게 꿍얼거리는 중이었다. 카카시는 얼른 이야기 하라는 눈짓을 보냈다.


“야마토 대장은 선생님을 잘 따르잖아요, 챙기기도 잘 챙겨주시고. 그러니까 제 말은― 좀 유별나게.”

“뭐, 좀 별난 구석이 있긴 하지.”

“카카시 선생님은 어때요?”

“아?” 

“에이, 그러니까 카카시 선생님은 그런 야마토 대장님이 어떻냐구요.”

“하아… 왠지 옛날에도 이런 비슷한 질문을 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사쿠라.”

“헤헤, 그랬었나요? 저는 잘…”


사쿠라는 혀를 쏘옥 내밀고 시선을 돌리며 시치미를 뗐다. 대체 왜 이런게 궁금한 걸까. 이유는 모르겠으나 아이들을 따돌리고 책 읽을 장소를 옮기느니 대강이라도 대답해 주는 쪽이 덜 귀찮을 거라고 판단한 카카시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그냥, 귀찮으시려나?”

“뭐, 별로. 이렇게 어른의 독서를 방해하는 눈치없는 제자들에 비하면 훨씬 귀여운 축에 속하지.”


대답을 기다리지 못하고 그새 답을 재촉하던 사쿠라에게 카카시는 뼈 있는 말로 대답했다. 이제 제발 책 좀 읽게 해주지 않겠니?란 마음을 담아 웃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그런가요? 저희도 이쯤에서 그만 가보는게 좋겠네요. 헤헷…”

“그래.”


‘에? 그냥 이렇게 가는 거냐니깐?’ 나루토가 아직도 할 말이 있는 듯 주춤거리고 있자, 사쿠라는 잔말말고 따라오라고 읊조리면서 나루토의 뒷덜미를 질질 끌고 자리를 떠났다. 카카시는 이제야 제대로 독서를 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안도감마저 들었다. 아이들의 이야기나 반응이 어딘지 찜찜하기는 했으나 책을 읽기 시작하자 금방 잊혀졌다. 카카시에겐 나루토보다는 눈치가 있는 사쿠라가 일부러 자리를 비켜준 것이라고 생각되었지만, 사쿠라에게는 한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친절하게 마을 사람들의 오해를 전해주려던 나루토를 막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으으 사쿠라, 왜 그냥 마을로 와버린 거냐니깐!”

“나루토, 잘 들어. 이건 기회야!”

“기회?”

“그래. 두 사람을 이어줄 수 있는 기회! 그러니까 사람들이 그냥 오해하게 놔두자구. 게다가 100% 오해도 아닌거 같으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아직도 물음표를 잔뜩 띄우고 있는 나루토에게 사쿠라는 입가에 만연히 웃음을 띄우며 자세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물론 둘의 예상대로 카카시가 야마토의 집에서 자게 된 것은 소문과는 전혀 다른 이유때문이었다. 하지만 사쿠라가 듣기에 카카시가 말하는 ‘진짜 이유’도 굉장히 이상했다. 아무리 나름 친하다는 관계라지만 처음 찾아간 다른 사람의 집에서 잠이 들고, 날이 다 밝아서야 일어날만큼 긴장이 풀리다니. 하타케 카카시란 이름이 울고 갈 일이었다.   

이게 얼마나 특별한 일인지는, 사쿠라 자신의 경우만 대입해 봐도 쉽게 알 수 있었다. 자신과 나루토도 벌써 몇년동안을 매일같이 카카시와 한팀으로 지냈지만, 카카시는 결코 일정선 이상의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가끔씩은 나무 밑에서 낮잠 자는 모습이야 보기도 했지만… 자신들이 야마토와 똑같은 상황을 연출했다면? 카카시는 그렇게까지 경계심을 늦추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혼자 낮잠이 든 것을 지나가다 발견하는 것과는 분명히 경우가 다른 일이었다. 맨 처음 야마토를 알게 되었을 때의 둘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어제도 나루토와 이야기 했듯이― 지금의 카카시는 확실히 변한 점이 있었다. ‘같은’ 질문에 대한 답도 달라졌다.


“나루토, 너도 들었지? 카카시 선생님 대답!”

“응. 틀림없이 들었다니깐!”

“그 둔탱이 선생님한테서 그정도 말이면 사랑고백이나 다름 없다구!”


어느새 나루토는 사쿠라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열심히 동조하고 있었다. 곧 둘은 내버려두면 백년동안 제자리 걸음만 할 두 사람의 관계를 이번 기회를 빌어 발전시켜주자는 의견일치를 보았고, 동시에 좋은 생각이 난 듯이 서로 눈을 빛내며 개구지게 키득거렸다.

이 날 오후부터는, 카카시가 ‘야마토를 좋아한다’고 말했다는 소식이 원래의 소문에 더해져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 소식의 출처는 ‘최측근’으로 전해졌다.


*
*


야마토가 장기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약 2주가 지난 뒤였다. 돌아오자마자 느껴지는 사람들의 이상야릇한 시선에 야마토는 꺼림직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을 보며 수근거리기도 하고, 넉살 좋게 웃으며 밑도 끝도 없이 ‘축하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몇명 있었다. 임무를 하는 동안에도 모처럼의 저녁식사를 제대로 대접하지 못한게 계속 마음에 걸렸던 야마토는, 피곤한 몸을 뉘일 틈도 없이 카카시부터 찾아나서 보려고 했다. 하지만 우선 그 전에 이 이상한 공기의 정체부터 밝히기로 생각을 고쳐 먹었다. 결국 자신에게 말을 걸듯 말듯 망설이며 지나가던, 언젠가 임무를 같이 했었던 닌자 한명을 잡아 세웠다.

그 닌자에 따르면 야마토와 카카시는 이미 연인이 되어 있었다. 여기까지 들었을 땐 무언가 단단히 오해한 거라며 부인하려고 했지만, 그 다음 말을 들었을 때 야마토는 도저히 자신의 귀를 믿지 못했다. 도대체 그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이제 확인 할 수 있는 방법은 카카시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 뿐이었다. 야마토는 더 기다릴 것도 없이 카카시를 찾아 달리기 시작했다. 아닐거라고, 그럴리가 없다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려고 자꾸 고개를 젓는 야마토였지만 점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하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설마설마 하면서도 입가에 자꾸 웃음이 비집고 올라왔다. 갑자기 어쩌다가 이렇게 일이 진행되어 버린 것인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부끄럽게도 왜 온 마을이 다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물론 의심할만한 인물은 나루토밖에 없었다―, 일단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그 카카시 선배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선언’했다니!


“서,선배!! 카카시 선배!!”

“여어- 야마토, 오랜만.”


카카시는 반가움을 표하며 여느 때와 다름없는 눈웃음을 지었다. 평소같으면 못 본 기간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다른 임무에서 다치지거나 제자들이 말썽을 피우진 않았는지 등의 안부를 물어야 할 타이밍이었지만 야마토는 바로 질문을 던졌다. 카카시를 본 순간부터 이미 심장은 터질 것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선배! 그, 그게 진짜예요?”

“에? 뭐가?”

“그러니까요, 그… 소문말이에요. 선배가 저에 대해서 이야기 한….”


카카시는 여전히 오랜만에 만나자마자 알 수 없는 소리를 하고 있냐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야마토는 자신이 들은 것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려고 생각하니 민망해서 온 몸에 온통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얼굴은 이미 너무 뜨거워서 터져 나가기라도 할 것처럼 화끈거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제가 귀, 귀엽고… 믿음직스럽고… 다정…하기도 하고, 든든해서 의지도 되고 그래서 좋, 좋다고…”

“아아? …뭐, 그 비슷하게 말한 적은 있지만…”

“서,선배!!♡”


야마토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카카시를 와락 끌어 안았다. 저기… 그러니까, 난 첫 부분말고는 딱히 말한 기억이… 카카시는 뒤이어 하려던 말을 그냥 속으로 삼킬 수 밖에 없었다. 이미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 같은데다― 별 말도 아닌데, 이렇게나 좋아하는 야마토를 보니 찬물 끼얹듯이 말리기가 힘들어진 탓이다. 야마토는 안은 것도 모자라 ‘저도예요, 선배!’하고 외치며 카카시의 허리를 안은 채로 번쩍 들어올려 빙글- 돌기까지 하고 있었다.


“저기… 야마토, 알았으니까 그만 하고 내려줘…”

“헛! 아아, 넵, 선배! 죄송해요!”


카카시의 말에 이제서야 자신이 뭘 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는지 야마토는 빨개진 얼굴을 한 채 카카시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머릿 속에는 카카시가 방금 ‘알았으니까’라고 말한 목소리만 온통 떠다니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역시 이건 받아주시는 거구나!란 생각에 야마토는 마을 한복판에서 춤이라도 추고 싶어졌다.

카카시는 마을 사람들이 자신들을 두고 하는 이야기들이―정확한 내용은 모르지만― 신경 쓰이던 중이었는데, 이렇게 기뻐하는 걸 보니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나 싶어 안심했다. 소문 속에서 자신이 야마토를 두고 했다는 말은 무언가 엄청나게 불어나 있지만…


‘뭐, 좀 귀여운 건 사실이니까… 상관 없으려나.’


카카시가 자신의 눈치를 살피느라 어쩔줄 몰라하고 있는 야마토에게 생긋 웃어 보였다. 이번엔 선심 좀 써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덕분에 상처도 빨리 나았던데다가 식사 대접한다고 저녁내내 고생했었으니까, 이유는 충분했다. 


“야마토, 오늘은 우리 집에서 저녁 먹는게 어때?”

“정말이요, 선배?! 무,물론이죠! 이번엔 제가 꼭! 실수 안하고 저번보다 더 맛있게! 만들어 드릴게요!!”

“아-? 내 말은… ”

“안그래도 기회를 한번 더 달라고 할 참이었는데, 선배 고마워요!”

“어어, 뭐… 그럼, 또 부탁해.”


‘이번엔 내가 만들어 주겠단 의미였는데….’ 어쩐지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결론이 났지만 야마토는 준비를 하겠다며 벌써 달려가 버린 뒤였다. 카카시는 자신의 차례는 다음으로 미뤄야겠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산허리에 붉은 흔적을 남기며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가 저녁때가 거의 다 되었음 알려주고 있었다.






-Fin.





 

2012. 1. 28.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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