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썼던 감상 참고용. > https://delusionalworld.tistory.com/728

1. 이게 얼마만에 제대로 된(?) 덕질 포스팅인지 모르겠다. 사실 지금 은혼보다는 주술회전에 대해서 쓰고 싶은데ㅜㅜ. 이걸 털지 않으면 계속 찝찝할 것 같아 그냥 편해지려고 간단히 씀. 은혼에 대해서는 뭐 이랬다더라 저랬다더라를 엄청 단편적으로만 들었었다. 그리고 예전에 썼던 감상글을 마지막으로 웬만큼 시간 남는 거 아니면 뒤는 안 보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웬만큼 시간 남는 일'이 어쩌다 생겨서 보게 됨. 사실 처음엔 정말 뭘 해도 아무것도 즐겁지 않아서 기억나는 웃겼던 화들이나 찾아보자가 되었다가,, 어쩌다보니 거의 처음부터 정주행.

예전에 쓴 감상은 애니로 장군암살편까지 본 것 + 쇼요의 정체에 대해서만 대강 아는 상태로 쓴 것이었음.

이번에 정주행하면서 사라바 신센구미 ~ 마지막 극장판 더 파이널까지 이어서 봄. 세미 파이널로 나왔다는 영상은 못봤고 만화책으로 76권 내용이길래 76, 77(완결)권은 극장판까지 본 후 따로 봤다. +극장판은 작화도 다르고 퀄이 그냥 그랬는데 음악은 다 좋았다... 음악이 다 한듯.


2. 결론부터 말하자면, 예전 감상이랑 달라진 거 없다.
그놈의 사무라이론 이상의 메시지를 이 만화에서는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던 내 느낌을 확인한 것으로 끝.


3. 전에 썼던 감상을 대강 훑어봤는데(와 뭘 그렇게 길게 주절거려둠;;), 보다 느낀 게 난 초반부터 답을 알고 있었는데 뭘 더 기대한 거지? 싶어졌음. '일본 작가한테 그런 거 바라지 않는다.'라고 했던 부분.

내가 긴토키의 성장에 관해 이야기 했던 것과, 일본 작가에게 바라지 않는 것에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세계에서 타인과 공유하는 법칙/규칙 안에서의 가치 선택, 이라는.

만화의 배경이 그렇지만 않았어도 양상은 달라졌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치나 국가론이 섞여버리는 이상 이런 문제는 은혼뿐 아니라 대부분의 일본 콘텐츠에서 보이는 양상이 된다. 지들이 가해자라서인지는 몰라도. 당장 지브리만 생각해도 반전주의까진 가지만, 전쟁의 과오를 인정하고 바로잡으려는 노력이나 그것을 새로운 가치로 삼는 데까진 가지 않는다. 자연주의로 퇴행해버리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일본에선 유명한 좌파라고 일컬어지니 말 다 했지. '사소설'로 대표되는 문학사조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은혼의 배경상 긴토키라는 인물은 반드시 그 '가치 선택'이 전제되어야 성장할 수 있었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소라치는 끝끝내 그 선택에서 도망쳤다.


4. 은혼에서 천인은 에도에 패배를 안겨준 폭력적 지배자다. 그리고 그것을 '너무나도 폭력적으로' 상징하는 것이 바로 '터미널'이다. 만화 내에서도 자주 나오는 성기에 관한 비유가 그렇듯, 터미널은 그야말로 이곳의 규칙을 부수고 강제로 박힌 남근이다. 세세한 내용을 떠나 단순한 상징과 이미지로만 말하더라도, 긴토키가 해야할 일은 간단했다.

그 거대한 터미널을 때려 부수는 것.

그리고 자신만의(에도만의) 것을 다시 세우는 것. 이전의 그 긴 주저리 감상글을 요약하면 사실 그것이다. 그 터미널을 긴토키가 제 손으로 때려부수어 앞으로 나아가게 해야한다고. 하지만 쇼요의 정체와 우츠로의 야망, 혼란한 에도/우주의 정세로 인해 이야기가 급변해가고, 상징적 차원은 뒤바뀌어 버린다.

긴토키가 싸워야 할 대상은 만화가 종반에 치달으며 완전히 치환된다. 지구를 빼앗아간 천인들이 아니라, 지구에서 태어난 존재로. 하늘에서 쳐들어온 적이 아니라, 발 딛고 살던 대지가 낳은 괴물로. 터미널은 긴토키들이 천인을 몰아내기 위해 부숴지는 게 아니라, 우츠로의 자기파괴 목적으로 삼켜진다.

강제된 법칙과 싸우던 이야기가, 내가 태어나 살아가던 터전과 공멸하지 않기 위해 싸우는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더 단순하고 간단히 말하면 이거다. 남근이 아니라 자궁과 싸우게 된 이야기.


5. 뭐 그 자체로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단순 논리나 스토리만 보면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도 아니고. 그 또한 나름의 성장이기도 하니까. 단지 내가 기대한 방향이 전혀 아닐 뿐더러, 작가와 만화, 나아가 일본 작품들의 일면을 재차 확인하게 된 게 씁쓸할 뿐.

여하간 이야기가 여기까지 오면 가치 선택이고 뭐고 그딴 게 문제가 아니게 된다.
단순한 생존 문제. 위를 향해 싸우던 중인데 당연했던 발밑이 꺼진단다. 만화 종반엔 모든 게 단순히 살아남아야 하는 문제가 되어서 아무것도 고민할 수 없고, 고민할 필요도 없어진다. 생존은 개인성이나 집단적 가치 이전의 기본전제니까.

2년 후, 긴토키는 이번엔 쇼요를 구하겠다고 방랑한다. 하지만 솔직히 그게 나라를 위해서든(사회적 가치) 그저 스승을 위해서든(개인) 다 무슨 의미가 있는지? 어쨌거나 우츠로가 지구랑 자살하고 싶어하는 이상 '살려면' 길은 하나 뿐인데. 그 위에 어떤 허울을 덧씌우든 똑같다. 그마저도 만화는 강박적으로 개인성만을 역설한다.

그 후부터는 그냥 끝이 뻔한 감동 버무리 신파극.


6. 장군암살편에서 긴토키-타카스기가 싸우던 부분을 대표적으로(내가 은혼을 놓게 된 계기가 되었던), 이 둘의 발버둥을 보고 있자면 항상 엄마 잃고 앙앙 우는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들의 고통이란 그런 류라고 생각한다. 이 만화가 다룬 건, 그렇게 끝도 없이 울기만 하던 아이들이 그나마 헤어짐을 인정하고 과거보다는 잘 받아들여서 울지 않게 되었다- 정도. 물론 이것 자체만으로도 의미는 있겠지.


7. 즈라 너무 불쌍함. 캐릭터로서. 즈라는 내가 좋아할 만한 캐는 아니었지만 쇼요 제자 3인방 중 제일 멀쩡한 인물이었다. 과거를 보면 그럴만도 한 게, 즈라는 쇼요 학당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미 어느 정도 중심이 잡혀 있었다. '어떻게 살아야 한다'라는 걸 이미 습득한 상태여서, 쇼요가 스승으로서 아무것도 주지 못했어도 세상을 향한 자신만의 기치를 내걸고 끊임없이 나아가던 인물.

그런 즈라마저 '난 그저 쇼요 제자일 뿐이며, 2년 간의 모든 것-총리 대신 역할까지도-은 그를 구원하고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서'란 말을 스스로 뱉게 하다니. 덕질로서의 애정이 없는 상태로 봐도 너무나도 모욕적이고 불쾌했다. 즈라가 최애인 사람들은 얼마나 화가 났을까. 진짜 상상도 못하겠다.

세상의 법칙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가치 선택이라는 성장 과제. 이에 대해 소라치가 만화의 방향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저 '도망친 것'이라 보는 근거가 바로 소라치가 즈라를 다룬 방식이다. 즈라는 긴토키의 성장 과제를 이미 끝낸 인물이었다. 그런데 만화 대부분에서 개그 엑스트라로만 쓰다가, 마지막엔 급기야 캐릭터의 정신적 포지션마저 뒤엎고, 긴토키와 같은 수준으로 퇴행시켜 버렸다.

이런 상황이니 즈라-쇼요의 마지막이 그 모양이다. 이번엔 제 손으로 끝을 낸 타카스기, '지금은 이런 가족들과 지내고 있어-'라며 안부를 전한 긴토키와 다르게. 화면 속에 쇼요는 그나마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다. 막판의 급격한 퇴행에도 불구하고, 소라치조차 그 정도밖에 할 수 없었던 거다. 그간의 즈라는 쇼요를 뒤돌아봐야 할 이유가 없는 캐릭터였으니까.

한마디로 소라치는 작가로서 '카츠라 코타로'라는 인물을 감당할 능력이 없었다.
스스로 가치 모델을 선택하지 못하고 도망치고 있기 때문에. 작가가 감당 못하는 캐릭터의 말로가 멀쩡할 리 없다.

결말상 에도에 양이지사는 필요없어졌는데, 암살 위장으로 정치적 생명까지 잃었다. 즈라는 그 세계에서 더 이상 해야할 일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그러니 얼굴을 제대로 내밀 수조차 없다..... 가면 상태로 여기저기 '쓸데없이' 등장한단 느낌으로, 다른 인물들에게 무시 당한다.

그래도 주인공 중 한명이었는데, 너무한 처사 아닌지.
 

8. 사라바 신센구미 편 보다가 최애가 히지카타로 바뀔 뻔했다;; 물론 뭐... 현재로선 긴토키가 최애라고 말하기도 애매하지만. 히지카타의 내적 갈등과 고민, 선택과 싸움을 더 자세하게 잘 그려냈다면 진짜 애정캐 됐을 듯.

항상 입장이 분명하고 망설임이 없었던 히지카타가 곤도 처형이라는 위기 앞에서 고민하는 모습은 정말 마음 아팠다. 만화 후반부 전체에서 어떤 인물이 보여준 모습보다도. 히지카타가 곤도를 얼마나 존경하고 따랐는지를 생각하면 더더욱.

곤도만 있으면 진선조는 진선조로 있을 수 있다고 믿었지만, 정말 그런가? 진선조를 지킨다는 건 뭔가? 개죽음일 걸 알면서도 모두 철옹성으로 처들어가는 것인가? 어떤 굴욕을 당해도 그저 각 대원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게 더 맞는가? 자신에게 진선조란 뭔가? 진선조에 있어 부국장 히지카타 토시로는 무슨 의미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히지카타는 지금까지의 모든 의미가 해체된 상황에서, 그걸 다시 재조합해야만 했다. (소년만화 주연급 캐로서 해야할 선택은 정해져 있었지만) 그 시점 이후 히지카타는 성장했고, 진선조의 의미는 달라졌다.

히지카타 서사뿐 아니라 장군암살편 ~ 완결까지 중 가장 울면서 본 에피소드가 이 부분이었다. 최종장으로 가기 전 주인공들이 가장 큰 불안과 위기 속에서 발버둥치는 내용. 말 그대로 하늘도, 딛고 살던 땅도 모두 다 잃고 갈갈이 찢어진 채. 그 상태로나마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 뭐라도 움켜쥐려 발악하는 처절함.

낙양결전편부터는 그냥 아.. 그러냐... 하는 심정으로 봄.
카무이의 전형적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도 그냥 그랬고.


9. 8번에 이어. 이렇게 별로다~별로다~ 하면서도 감상까지 쓰고 있는 데에는 그래도 은혼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분명해서인 게 크다. 정주행을 하지 않고 장군암살편 이후부터 봤으면 좀 괜찮았으려나 싶지만. 처음부터 보다보니 그래도 후폭풍은 좀 있다.

가장 큰 건 온갖 개그코드에도 불구하고 은혼이 가지고 있는 전반적인 우울함 때문이다.
한참을 웃다가도 새파란 하늘을 달리고 또 달리는 엔딩을 보고 있자면 아득히 드는 애상을 어쩔 수가 없다.
사라바 신센구미 편이 그토록 아팠던 것도 이런 모습이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내용이라서일 것이다.
사실 난 소년만화를 보면서 이런 감상을 자주 느끼는데, 은혼은 유독 그게 큰 것 같다.

내가 긴토키에게 성장을 요구하던 것은 이게 점프 소년만화이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가 아니다. 그것만 아니라면, 굳이 성장스토리가 아니어도 상관은 없다. 그런 관점에서는... 그래. 그냥 그런 삶도 있는 거지...가 된다.

마지막이 대 우츠로 전으로만 수렴해버린 건 이러나 저러나 내 취향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바랐던 한 인물로서의 긴토키의 서사와는 별개로, 은혼은 내게 작품으로서 충분히 의미 있다.

모두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결핍된 세계.
원형을 알 수 없이 찢겨 흩날리는 거리에 우두커니 서서
그 조각들이나마 버릴 수 없어 주워 안고 사는 삶..

난 긴토키의 그런 모습과 우울 자체를 매우 사랑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젠 보내줄 때인듯.
사라바 긴토키, 사라바 은혼.




2022. 4. 17.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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