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냄새를 가득 머금은 스산한 바람. 싱그럽고 푸르른 잎사귀들을 무력하게 만드는 검붉은 죽음의 냄새. 그 속에서 언제나 살아남아, 시체를 밟고 피비린내를 가득 들이마시며 하늘을 올려다보는 은발의 남자. 죽은 사람보다 더 창백한 표정에 슬픔을 담고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서 있는 남자.

그는 언제나 누구보다 열심히 싸우고, 몸을 아낄 줄도 모른다. 그의 싸움에는 이상한 ‘간절함’이 묻어난다. 그는 죽을 힘을 다해 무언가를 얻으려는 욕망에 사로잡힌 것처럼 보이다가도, 그저 아무런 희망도, 바라는 것도 없는 공허한 빈 껍데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텐조는 궁금했다.


ㅡ당신은 낭떠러지 끝에 서서 뭘 위해 살아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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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 上.
written by path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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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상황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는 거다.」


텐조는 달리고 또 달렸다. 카카시가 말한 최악의 상황이 일어났다. 불의 성질을 가진 상성 안맞는 적을 겨우 처리하고, 마지막으로 카카시의 차크라가 느껴졌던 곳으로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다리에 깊은 부상이 걸림돌로 작용한다. 겨우 지혈해서 멈춘 피가 다시 흐르기 시작했고, 많은 출혈량때문에 어질어질한 시야로 좁은 숲길을 헤쳐나가야 했으며, 엎친데 덮친격으로 질서없이 뻗은 가지들이 상처를 건드려 통증이 배가되었다. 걸을 수도 없어야 정상이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좋다. 아무것도 텐조의 의지를 방해하지는 못했다.

달리고 달려도 카카시가 어디쯤에 있는 건지, 단서가 나타나지 않는다. 떨어져 싸우면서도 계속 신경쓰고 있던 그의 차크라가 점점 약해지다가 어느 순간 사라졌다. 텐조는 머릿속에 두 가지 경우의 수를 떠올렸다. 하나는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거리가 아주 멀어져버린 경우. 또 하나는…

텐조는 달리면서도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오늘따라 햇빛을 가릴 정도로 짙게 드리워진 나무들이 음습하고 칙칙해 보인다. 생명감이 넘쳐 보여야 할 초록색의 잎들이 저승사자처럼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 같다.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다리때문에 제대로 넘어져 버린 텐조는, 헐렁해진 압박 붕대를 대충 바로잡았다. 시야를 물들이는 자신의 붉은 피와, 고막을 메우는 자신의 거친 숨소리 사이로 몇달 전 카카시와 나눴던 대화가 떠오른다.


「우선은 고맙다고 해야하나.」

「아뇨, 그런 말은 안해도 돼요.」

「미안해.」

「이유를… 물어봐도 돼요?」

「지금까지 살아온 이유를 헛되게 하고 싶지 않아.」


그때는 묻지 못했었다. 도대체 뭘 위해 살아가는 거냐고. 어째서 누군가와 맺어지고, 사랑하는 것이 살아온 이유를 헛되게 하는 것이 되느냐고. 그때의 카카시의 표정이 너무도 슬프고 안타까워서 물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카카시의 그 표정을 보며 텐조는 한가지 이미지를 떠올렸다. ‘살아온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답안지처럼 떠오른 이미지. 그것은 죽은 시체들 위에서 피가 잔뜩 튄 가면을 벗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카카시의 모습이었다. 죽은 사람보다 더 창백하고 패배한 자보다 더 비참해 보이는ㅡ 임무의 성공이나 살아 남은 것에 대한 기쁨은 모래알만큼도 찾아 볼수 없는 그의 이미지.


‘그래… 바로 지금처럼…’


어느새 처음보다는 훨씬 약해진 카카시의 차크라가 느껴지기 시작하고, 곧 두사람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습관적으로 서 있는 사람의 실루엣을 카카시라고 생각한 텐조는 순간 몸이 굳어 버렸다. 자세히 보니 서 있는 것은 카카시가 아니었다.


‘카카시 선.......배?’


한번도 본 적없는 광경임에도 텐조의 눈엔 무언가가 굉장히 익숙하게 느껴졌다. 적의 발 밑에 쓰러져 있는 카카시는 그 곳이 원래 자리라도 되는 듯 전혀 위화감이 없고 자연스러웠다. 어두침침하고 기분나쁜 장면임에도 마치 명화같다. 영광과 광명을 잃은 채 음지에 오랫동안 처박혀 습기를 먹고 쭈글쭈글해진, 그 어느 누구도 영원히 꺼내보지 말아야 할, 그러나 눈물이 날정도로 아름답고 슬픈… 그런 명화.


“천하의 하타케 카카시도 별 거 아니구만. 큭큭큭.”

“크읏………”


적이 카카시의 복부에 난 상처를 발로 짓이기며 비웃는다. 의기양양한 적의 모습과는 다르게 카카시는 힘없이 늘어져 있다. 가면은 싸우다 깨졌는지 흔적도 없다. 이 와중에도 카카시는 그 특유의 멍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서 졸릴 지경이라는 듯 나른한 표정.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할 말은 없나? 꼭 이루고 싶었던 소원이라든지. 큭큭”


얼른 카카시를 구하기 위해 인을 맺으려던 텐조는 적의 말을 듣고 멈칫거렸다. 임무때가 아니면 말 수도 적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자기 얘기라면 더더욱 입을 다물어 버리는 카카시가 죽기 직전에 말하는 ‘소원’이란 건 뭘까. 아주 황당하게도 텐조는 이 상황에서 그게 궁금해졌다.

그리고 ‘소원’이란 말을 들었을 때 순간 변하는 카카시의 눈빛이 너무 안타깝고 무언가 간절해 보여서 그를 위해 해 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무력한 기분도 들었다. 텐조는 ‘내가 지금 뭐하는 거야.’라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이미 귀는 온통 그 대화에 쏠려 있다. 다리의 통증마저 느껴지지 않는다.


“소원…?”

“하나쯤은 있을 거 아냐? 사양 말라구.”

“그래… 분명 있기는 하지. 하지만 네 놈한테 말해봐야… 들어주지도 못할 것 같은데.”


발 밑에 쓰러져 있으면서도 살살 약을 올리는 듯한 카카시의 말투에, 적은 더욱 흥분해서 카카시를 내리 찍을 기세로 짓밟고 있던 발을 높이 들었다. 아뿔사를 속으로 외치며 다시 인을 맺으려던 텐조는 또 한번 얼어붙은 듯 동작을 멈춰야 했다. 카카시가 적이 흥분해서 긴장이 풀린 틈을 타 동술을 걸고, 그대로 멍해진 적의 심장을 치도리로 꿰뚫었기 때문이었다.

그 광경을 넋놓고 지켜보던 텐조의 귀에 나른한 목소리가 능청스럽게 흘러든다.


“그만 숨어 있어도 돼, 텐조.”

“별로, 숨어 있던게 아니에요.”


‘숨어 있었다’라는 말에 발끈하며 카카시에게 모습을 드러낸 텐조는 순간 자기가 얼마나 바보같아 보일지를 깨닫고 속으로 짧게 한숨을 쉬었다. 지금 ‘숨어 있었는지 아닌지’가 중요한 게 아닌데, 카카시의 이런 시시콜콜한 말장난에 너무도 손쉽게 넘어가 버리곤 하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런 것 하나하나를 민감하게 생각하는 자신과는 다르게, 카카시는 너무도 태평하고 느릿느릿한 손짓으로 얼굴에 튄 피를 닦아 내고 있었다.

카카시는 겉보기에는 전과 다름이 없다. 워낙 속을 모르는 사람이니 혹시 마음 속은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들기도 하지만, 텐조는 헛된 희망일거라고 마음을 달래며 고개를 흔들었다.


“다친거야? 칠칠치 못하게.”

“선배한테 그런 소리 듣고 싶지 않거든요?”


이렇게 임무가 끝나면 장난으로 시비를 걸어오는 것도 전과 다름이 없다. 그러니 전과 다름없이 반응해 주어야 한다.

카카시는 텐조의 말엔 더이상 대꾸하지 않고, 쓰러진 적을 무표정하게 내려다 보다가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리곤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눈을 감았다. 바람이 그의 머리칼을 흔들고 지나간다. 이렇게 임무가 끝나고 하늘을 올려다 보는 버릇도 전과 다름이 없다. 그 행동이 자신보다 먼저 떠난 사람을 떠올리는 것이란 것을 텐조는 어느 순간부턴가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카카시가 여느때보다 더 슬퍼 보이는 건 기분탓일거라고 텐조는 생각했다.


“부축해 줄게, 손 많이 가는 후배님.”


텐조는 순간 ‘어째서요?’라고 바로 반문이 튀어 나오려는 것을 겨우 삼켰다. 이 것만큼은 평소와 다른 카카시다. 원래대로라면 따라오든 뒤쳐지든 알아서 하라며 사정봐주지 않고 먼저 출발할 그였다. 말은 그렇게 해 놓고 제 속도는 내지 않는 사람이지만, 그런식의 친절이 아니라 대놓고 도와주겠다고 하는 카카시는 조금 낯설다. 그리고… 자꾸 기대하게 된다.

텐조의 생각이야 어떻든 상관없다는 듯, 카카시가 어느새 다가와서 텐조의 팔을 자신의 어깨뒤로 두른다. 평소와 다른 쪽 팔을 사용하는게 이상해서 자세히 보니, 카카시의 오른쪽 팔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결코 가볍지 않은 상처다.


“선배, 팔도 다쳤어요? 애당초 무슨 싸움을 어떻게 한거예요? 죽기 직전까지 가다니.”

“하아… 죽기 직전은 무슨. 내가 지금 죽기 직전으로 보이냐.”

“그럼 아까 그 광경은 뭐냐구요~”

“차크라고 냄새고 다 없애고 멀리 숨어서 소환수만 부리잖아. 한두마리도 아니고. 파쿤들은 저번 임무에서 많이 다쳐 부를 수도 없지, 애 좀 먹긴했지.”

“그래서 어떻게 한건데요?”

“공격패턴이나 소환수 성격을 보니 화려하고 남한테 보이기 좋아하는 것 같길래, 일부러 좀 맞아주고 쓰러졌지. 아니나 다를까 마지막은 직접 처리하고 싶었는지 기어나오던데? 신이나서 네가 온 것도 모를정도로 흥분한 상태로.”


텐조는 기가막혀서 큰 소리로 한숨을 쉬었다.


“정말 선배도 못말리겠네요. 그렇다고 자기를 미끼로 쓰는 사람이 어딨어요?”

“내 몸을 내가 미끼로 쓰든 무기로 쓰든. 아무튼, 복부는 스친 것뿐이고 실제론 초반에 당한 팔이 제일 심하긴 한데 별 거 아냐.”


얼핏봐도 텐조의 다리만큼이나 깊은 것 같은 상처를 두고 카카시는 별거 아니라고 말한다. 텐조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카카시가 어째서 그렇게나 필사적인지. 물론 닌자라면 누구나 싸울때에는 필사적이다.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으니까. 임무가 어떤 것이든, 싸우는 순간순간에는 단순한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카카시의 ‘필사’는 보통의 것과는 분명 달랐다. 그의 싸움엔 살려고 하는 의지가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너무 열심히다 못해 무모하게 싸운다. 딱히 피에 굶주려 싸움에 미친 것도, 그렇다고 마조히즘도 아닌데도. 그는 마치 불행해지기 위해 싸우는 것처럼 보인다. 수많은 위기와 시련을 딛고 살아남아 그 이름은 이미 전설이 되었지만, 정작 본인은 빈 껍데기 같다.

도대체 뭘 위해서?

텐조는 조금 전 카카시가 싸우던 장면을 다시 한번 머릿속에 떠올렸다. 오랫동안 어두운 곳에서 축축하게 습기가 찬 것같은 그 기분나쁜 장면을…

유인하기 위해 연출된 상황이라고는 해도, 간접적으로 자신은 카카시가 죽게 되는 순간을 본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소원’을 말해보라고 하자, 순간적으로 변하던 카카시의 그 눈빛… 그 장면을 다시 생각하니 텐조는 숲공기가 자신의 목을 조여오는 것처럼 무겁게 느껴진다.

동료의 죽음을 지켜본다는 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지켜봐야 한다는 건 어떤 걸까? 그는 지금까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ㅡ

무엇을 견뎌왔던 걸까.


“선배.”

“왜.”

“전에도 한 번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오늘은 말해주고 싶어서요.”

“뭔데?”

“선배가 죽을 땐, 제가 옆에 있어 줄게요.”

“…………”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지내자고 했던 카카시의 말을 딱히 거스르려고 한 것은 아니다.

‘동료니까. 동료라면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잖아요. 게다가 손수 부축까지 해주는 카카시 선배도 분명 ‘평소’같지는 않으니까.‘ 하고, 텐조는 나름 편한대로 생각해 버렸다. 마음같아선 절대로 죽게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지켜주겠다고 하고 싶었지만 그건 카카시가 원하는 것도, 카카시를 위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카카시는 아무 대답없이 텐조의 무게를 지탱하며 천천히 걸을 뿐이었다. 다시 텐조가 먼저 침묵을 깼다.


“카카시 선배.”

“왜 또.”

“근데 정말, 소원이 뭐예요?”

“휴… 너 그것때문에 아까 가만히 있었지?”

“죄송해요. 저도 궁금해져 버려서…”


멋쩍게 웃으며 사과하는 텐조에게 카카시는 대답은 하지 않고 되려 질문을 던진다.


“넌 어떻게 날 찾아온 거냐? 기척도 안느껴지는 거리에서.”

“음… 마지막으로 차크라를 느꼈던 방향으로 오긴 했는데. 딱히 ‘어떻게’라고는… 그냥 찾아야겠단 생각밖에 안하니까요. 너무 단순한가요? 하하.”


카카시는 천진하게 웃는 얼굴로 대답하는 텐조를 힐끗 쳐다보았다.


“소원, 다음에 말해 줄게.”

“다음이요?”

“응. 공짜론 안되지. 아무한테도 말한 적 없는 기밀이라고.”


‘기밀은 무슨…’하고 꿍얼거리면서도 텐조는 금방 수긍하고 다시 질문을 던졌다.


“뭘 어떻게 해야 되는데요?”

“글쎄?”


그런게 어딨냐고 불평하는 소리를 하려던 텐조는 문득 카카시의 표정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 표정은 여느때도 순간순간 포착되는 그런 슬픈 표정이면서도, 또 그것과는 뭔가 달랐다. 오늘의 카카시는 평소같으면서도 평소와 다르다고, 텐조는 생각했다. 그래서 자꾸만 바래서는 안될 ‘기대감’이 피어오르는 거라고.



.



마을에 도착하면 평소같지 않은 이 친절도 끝날거란 텐조의 예상과는 달리, 카카시는 마을 안에 들어선 다음에도 텐조를 부축한 채 병원으로 향했다. 텐조는 먼길을 불편한 걸음걸이로 오느라 힘들게 분명한데다가, 본인도 팔에 큰 부상을 입었으면서 계속 무리하는 카카시가 마음에 걸린다. 그리고ㅡ

이런 친절함이 불러 일으키는 착각. 기대.

그것을 떼어내기 위해서 텐조가 결국 먼저 입을 열었다.


“그만해요, 선배. 여기부턴 혼자서 갈 수 있어요.”

“어차피 나도 병원 신세인건 똑같아. 가는 김에 같이 가.”


한 번 고집부리기 시작하면 꺾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텐조는 더 대꾸하지 않았다. 오늘의 카카시는 분명 어딘가가 다르다는 것만 더 뚜렷하게 느껴질 뿐이다. 오늘의 카카시에게는, 다시 한번 후배 이상의 감정을 드러내도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결국 카카시는 병실의 침대까지 텐조를 부축해 왔다. 응급처치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뛰어다닌 덕분에 텐조의 다리는 지지대 없이는 한발 내딛기도 힘든 상태였다. 텐조는 카카시가 해주는 대로 침대에 몸을 뉘였다.

이윽고 몇시간동안 두르고 있던 카카시의 팔이 몸에서 풀리자, 금세 그 감촉이 그리워진다. 순간이지만 몸을 뉘이면서 자신의 다리를 안쓰럽게 쳐다보는 카카시를 보자, 텐조는 견딜 수가 없어졌다. 그래, 어쩔 수 없는거다. 이런 감정은.


“으윽!! 갑자기 왜 이래?”


텐조는 일순간 카카시의 부상당한 팔을 잡아 당겼다. 아픔때문에 카카시는 손쉽게 누워있는 텐조의 몸 위로 무너졌다. 상처때문인지 팔로 몸을 지탱하지도 못해서 카카시의 무게가 텐조의 상체에 그대로 전해진다. 텐조는 팔을 둘러 카카시를 안고, 마른 등을 달래듯이 쓰다듬었다. 그리고 행동과는 다르게 부탁하듯 말한다.


“잠깐만, 이대로 있어줘요, 선배. 오늘만… 저 잠들때까지만…”

“………응.”


몇초의 텀을 두고 카카시는 느릿한 대답을 내뱉었다. 대답을 듣자 안심이라는 듯 텐조는 눈을 감았다. 불편하고 어정쩡한 자세인데도 카카시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텐조의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잦아들자, 카카시는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이불을 덮어주고는 곧 병실을 나갔다.

텐조는 병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자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안되는 줄 알면서도, 그저 더 같이 있고 싶다는 생각에 붙잡은건데 정말로 그렇게 있어 줄지는 몰랐던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품에 안고 그냥 태평하게 잠들 수 있을만큼 무신경하지 않기에, 잠든 척하는 것만이 텐조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결국 부풀어 오른 기대감이, 산산조각 나서 부숴져 버려야 맞을 그 착각이 수습도 되지 않은채 그대로 남아 있게 되었다. 분명 한 번 거절당했던 마음이, 다시 커져 버렸다.


‘오늘 선배는, 정말 이상하네요. 사람을 바보로 만들어.’



.



이틀 뒤, 텐조는 한 소식을 접하고 황망해질 수 밖에 없었다. 카카시가 그런 부상을 입은 채로 자발적으로 지원하여 임무를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카카시가 ‘변한 것 같다’고 느낀건 자신의 착각이었다. 아니, 정말 변했었다 할지라도 그건 이틀 전, 그 임무에서 뿐이었던 것이다. 쓸데없는 기대였고, 쓸데없는 착각이었다.

카카시는 전과 다름이 없었다. 무모하고 위태로우며 일부러 벼랑끝을 내달리는 사람이었다. 여전히. 여전히 그랬다.


‘죽으러 가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대체 뭐가 선배를 그렇게 만드는 겁니까?’


텐조는 절망했다. 그 어떤 것도 카카시의 마음 속엔 들어갈 수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잠시나마, 자신이 그런 시도를 했다는 게 우스워졌다.






-to be continued



 

2011. 9. 16. 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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