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림 - #1.



“카카시 부장님, 사장님이 찾으세요. 아무튼 사이도 좋으시다니까~”

“아아. 고마워.”


여직원들은 생긋 웃으며 대답하는 카카시를 힐끗힐끗 훔쳐보며 감탄에 젖어 각자 소리없는 몸부림을 친다. 그런 시선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카카시는 나른한 표정으로 꼭 방금 자다 일어난 사람처럼 자신의 뒷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회사에서 이렇게 대놓고 불러대는 건 자제 좀 하지, 철없는 도련님 티를 이런 데서 낸다니까.’


막 점심을 먹고 다시 부서로 들어가는 길이었던 터라, 카카시는 다시 걸음을 반대로 돌렸다. 복도를 지날 때면 사람들이ㅡ스스로 의식하지 않더라도ㅡ 한번씩은 무심코 카카시를 쳐다보고는 했다. 흔치않은 은발머리에 훤칠한 키, 새하얀 피부, 수려한 외모에 회사내에서도 소문난 유능함. 하타케 카카시는 이 회사에서 남자 여자를 불문하고 누구나 이름정도는 알고 있으며, 누구나 한번쯤은 함께 일을 해보고 싶어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고ㅡ

사장과는 그들의 아버지 대에서부터 인연이 이어진 오래된 친구.

이 사실 또한 회사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오래전에 돌아가셨지만 카카시의 아버지인 사쿠모씨는 회사가 생긴 초창기때부터 함께한 간부였고, 그 인연이 지금의 카카시와 사장에게까지 이어졌다. 물론 카카시나 그의 아버지의 직위가 그 친분때문은 아니다. 사쿠모씨는 회사가 완전히 자리 잡는 데에 혁혁한 공을 세워 지금의 대기업이 될 기틀을 마련한 장본인이었고, 카카시 또한 아버지의 능력을 그대로 빼닮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능력있는 직원이다. 때문에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장직에 오른 것이고ㅡ 이것은 회사내의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렇게 개인적인 일로 사장실을 찾는 것도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제약도 없다. 그저 다들 정말 친한 친구로 알고 있으니까.

사장실 앞에서 비서와 간단한 눈인사를 주고 받는다. 아주 익숙한 일인 듯 비서도 용건을 물어보지도, 인터폰으로 사장실에 알리지도 않는다. 카카시도 당연하다는 듯 데스크를 지나쳐 어두운 고동색의 사장실 문을 가볍게 두번 두드렸다.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카카시는 안에 앉아있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얼굴을 보자마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럴때 만큼은 정말 싫다. 쓸데없이 눈치 빠른 자신이….


“왜 부르셨습니까, 사루토비 사장님.”


일부러 심드렁한 표정으로 딱딱하게 말한다. 푹신한 의자에 깊숙하게 몸을 맡기고 앉아서 담배에 불을 붙이던 남자는 카카시의 인사를 듣자, 동작을 멈추었다.


“갑자기 왜 이래? 평소대로 해, 평소대로. 이제와서 호칭같은거 누가 신경쓴다고.”

“사내에서 흡연은 금지되어 있을텐데요.”


이름이 아닌 성으로 자신을 부르고, 존대말을 쓰는 것도 모자라서 담배 피우는 것까지 참견하자 남자는 더욱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 있어? 왜 이렇게 까칠해.”


ㅡ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니라, 무슨 일이 있을 테니까.


“그럴리가. 그냥 장난친 거야, 아스마.”

“싱겁기는.”


일부러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싱긋 웃어보이는 카카시를 보자, 아스마는 그제서야 평소의 그답다는 생각이 들어 안심했다. 잠시 멈춰있던 손을 다시 부지런히 움직여 담배에 불을 붙인다. 가볍게 한 모금 빨아들이고 나서 아스마는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은 특별히 전할 말이 있어서 불렀어. 음…”

“잠깐만.”


카카시는 아스마가 뭐라고 하든 신경도 안쓸 것처럼 그의 책상위에 놓여있는 담배갑만 멍하니 보고 있다가, 아스마가 운을 떼자 말을 가로막았다. 그리고는 성큼 책상으로 다가가서 아스마의 담배를 집어들었다. 아스마는 갑작스러운 카카시의 행동에 잠시 잠자코 보고만 있었다.

카카시는 담배 한개비를 꺼내 입에 물고는, 허리를 깊숙이 숙여 자신의 담배를 아스마의 담배 끝에 갖다 대었다. 뒤쪽에서 보면 흡사 키스라도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아스마에게 잠시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상체가 숙여지자 아래로 처진 셔츠사이로 카카시의 하얀 목덜미와 쇄골이 드러났고, 미처 사라지지 못한 몇개의 키스마크도 보였다. 아스마는 가만히 그 곳에 시선을 고정했다.


“지금 유혹하는 거냐?”

“유혹? 그렇게 생각하면 좀 마음이 편해지나?”

“무슨 소리야.”


이윽고 자신의 담배에서도 연기가 피어오르자 카카시는 몸을 일으켰다. 피울 줄은 알아도 실제로 피우는 일은 거의 없는 그였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예외. 네가 나한테 갖는 욕정을 그저 내가 유혹했기 때문이라고 치부해 버리면 그걸로 끝인 걸까, 너와 나는. 카카시는 느긋하게 담배를 입술에서 떼어 내고는 감정없는 표정으로 아스마를 내려다 보았다.


“맞아, 유혹하는 거.”


럭비공처럼 이리저리 튀어대는 카카시의 화법에 아스마는 잠시 어떻게 장단을 맞춰야 할지 고민했다.


“여기서?”

“상관없는데.”

“너처럼 공사구분 철저한 녀석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닌데?”


ㅡ지금은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거든, 네 입만 막을 수 있다면…


“가끔은 예외도 있는 법이지. 넌 어떤데? 아스마.”


아스마는 담배를 물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카카시를 불러낸 원래의 목적과 눈 앞의 유혹. 지금까지 회사에서 카카시를 안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때마다 카카시가 적절하게 자신을 제어하고 선을 지켰기 때문에 실제로 관계를 가진 적은 없었다. 카카시는 학교 다닐때나 회사에서나 전형적인 모범생, 모범사원이었다. 그래서 사고의 유연함과 독창성도 뛰어나긴 하지만 의외로 어떤 면에선 굉장히 보수적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이렇게 먼저 요구를 하다니. 막상 이런 상황이 되니 아스마는 이제서야 사장으로서의 본분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담배가 끝까지 타 들어가는 동안, 아스마는 장기라도 두듯이 신중하게 판단을 내렸다.


“저녁에 집으로 와. 생각해보니 내 용건도 여기서 하긴 좀 그렇고.”

“……그래, 그럼.”


카카시는 짧게 대답하고 담배를 비벼 끄고는 뒤돌아서 나왔다. 카카시의 등에 대고 ‘이따 봐.’ 하고 한층 다정한 목소리로 인사하는 아스마에게 대답대신 손만 슬쩍 올려 보였다. 그리고 다시 만난 비서와 한번 더 눈인사를 한다.

카카시와 아스마. 다들 정말 친한 친구로만 알고 있다.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보통의 친구사이와 다른 게 있다면, 관계를 가진다는 점이다. 아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ㅡ 카카시는 게이고, 아스마를 좋아한다.

ㅡ이대로라도 상관없다고, 먼저 시작하자고 한 건 나 자신이었어….

아스마는 남자엔 관심이 없었다. 어쩌다보니 카카시만큼은 예외가 되어 있었을 뿐. 서로 좋아하거나, 사귀는 사이가 아니다. 이건ㅡ 연애가 아니라 합의 하에 서로의 육체를 즐기는, 단지 그것 뿐인 관계였다. 그것도 카카시에 의해 시작된 관계. 아스마도 카카시의 마음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시작했지만, 처음부터 연애를 할 마음도 없고 남자를 좋아할 수도 없다고 못 박았었다.  

카카시는 사무실로 돌아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뇌였다.

ㅡ뭘 기대한 거지? 잠 좀 잤다고 착각하지마. 좋아하는 건 너 혼자뿐이잖아. 변함없이…. 


“………………님,”

“………님,”

“부장님!!”

“어…… 어?”

“안 내리세요?”


생각에 잠겨있던 카카시는 꿈에서 깨듯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엘리베이터에 탈때는 분명 혼자였는데 언제 한명이 더 늘었는지, 그 한명은 카카시가 내려야 하는 층에서 먼저 내려 움직일 생각을 안 하고 있는 카카시를 부른 것이었다. 한 손으로는 열림버튼을 계속 누르고 있고ㅡ 한 손은 잔뜩 쌓인 서류들을 위태롭게 들고 있다. 서류들 때문에 얼굴은 가려서 보이지도 않는다. 분명 두 손으로 겨우겨우 한아름 안고 있었을텐데, 자신때문에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느라 불안하고 우스꽝스럽게 서 있는 것이었다. 카카시는 미안한 마음에 얼른 엘리베이터를 빠져 나왔다.


“아아, 죄송합니다.”

“아니예요.”


카카시가 내리자, 그 사람은 버튼에서 손을 떼고 힘겹게 다시 자세를 잡느라고 이리저리 기우뚱거렸다. 카카시에게는 허리 위로는 서류더미로 만들어진 인형이 불안하게 휘청이는 것처럼 보였다. 목소리가 들어본 듯도 하지만 낯설고 누군지를 모르겠다. 분명 카카시부서에 있는 사람은 아니다. 자신을 부장님이라고 부르긴 했지만, 카카시의 직위같은 건 회사 사람들 대부분이 알고 있으니 카카시가 모르는 사람이 부장님이라고 하는 것도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카카시는 얼굴을 보고 고맙다고 제대로 인사를 하려고 잠시 기다렸지만, 좀처럼 중심잡기가 끝나지를 않아 이름이라도 알아두려고 입을 열었다.


“근데… 누구신지?”







-To be continued






 

2011. 11. 21.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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