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림 - #2





“근데… 누구신지?”

“저예요, 저!!!!”

“……?”

“우웃,, 우왁!!!!!!”


단순히 이름을 물어본 것이었는데 남자는 뭐가 그리 신났는지 자기라고 외치며 서류더미 옆으로 자기 얼굴이 보이게끔 들이 밀다가 결국에는 그 많은 서류를 바닥에 다 쏟고 말았다. 카카시는 그제서야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텐…조? 텐조야?”


텐조라고 불린 그는 바닥에 떨어져 엉망진창으로 뒤섞인 서류들을 내려다 보면서도 뭐가 좋은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네, 저예요! 오랜만이네요, 카카시 선배.”

“뭐야 너, 우리 회사 다녔어?”

“2주 전에 여기로 회사 옮겼어요.”

“아… 어느 부서?”

“마케팅 부서요.”

“아… 거기라면, 가이가 부장으로 있는 곳이네.”


카카시와 텐조는 같이 서류들을 주워 정리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텐조는 카카시의 대학 후배다. 대학 다닐 때 꽤나 자기를 따르며 졸졸 쫓아다니던 착실한 후배. 카카시에게 텐조는 그런 이미지였다. 지금처럼 종종 덜렁대서 일을 만들기는 하지만 언제나 밝고 긍정적이라, 모습을 떠올려도 꼭 웃는 얼굴이 떠오르는 그런 류의 사람이었다.


“네…. 근데 조만간 옮길 수 있을 거예요. 해외 무역쪽… 그러니까, 선배네 부서로요.”

“우리 부서에 마케팅쪽으로 옮기고 싶어하는 사원이 있거든. 대신 그쪽에서 이번에 새로온 경력직 사원을 보낸다더니, 그게 너였군.”

“네, 전공도 그렇고 이전 회사에서 하던 일도 그쪽이니까요.”

“너 이쪽 일 하고 있었어?”


대학 다닐때는 함께 했던 기억도 어느정도 있지만, 졸업한 후로는 전혀 소식을 몰랐다. 따로 연락을 하고 지냈던 것도 아니고ㅡ 연락처 정도야 뒤져보면 어딘가에서는 나오겠지만, 딱히 소식이 궁금할 정도로 신경 쓴적이 없었다.


“이거 섭섭한데요? 뭐 작은 회사였으니 어쩔 수 없지만… 전 다른 회사 있을 때에도 선배 소식은 종종 접했어요. 이쪽 업계에선 꽤나 유명하기도 하시고.”

“별 것도 아닌 걸로 너무 띄우지마.”

“하하. 성격도 여전하시네요. 사실 좀 아까도 복도에서 뵈어서 인사하려는데 어딜 가시…”


텐조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허리를 숙이고 주섬주섬 서류를 주워 모으는 카카시를 보며 말하다가 무심코 셔츠 안쪽으로 시선이 박혔다. 붉은 자국들이 텐조를 자극했다.

언제나 엘리트였던 카카시와는 달리 너무 좋지도, 너무 나쁘지도 않게 대학을 졸업하고 적당하게 전공은 살리는 쪽으로 취직을 했던 텐조는 그때서야 자신과 카카시의 격차를 제대로 느끼게 되었다. 학교를 다니면서는 카카시가 대단하다는 걸 알아도 일단은 같은 학교이고 마음만 먹으면 수업도 얼마든지 같이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한번도 ‘차이’를 심각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존경하고 동경했지만 언제까지고 대학생인 것처럼 함께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하고 근거없이 낙천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부딪혀 보니 현실은 전혀 달랐다.

텐조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깨달은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카카시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존경도 동경도 아닌 사랑이었다는 것.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ㅡ 자신의 처지가 카카시에게 당당하게 다가갈 수 조차 없을 정도로 볼품없단 점이었다.

같은 업계에서 일하면서 텐조는 원하든 원치 않든 카카시에 대한 기본적인 소식들은 알 수 밖에 없었다. 언제나 멀고 높은 곳에 있는 카카시를 계속 생각하면서 얼마나 수많은 날을 노력해 왔는지… 카카시 본인은 절대 알리가 없을 것이다. 처음부터 꼭 같은 회사를 다니기 위해서란 목표를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대학에 다닐 때처럼 카카시를 직접 만나고 같이 공부하고 할 수는 없었지만, 카카시를 따랐던 그 마음 그대로 지내왔다. 노력하고, 그리워하고, 공부하고, 보고싶어 하면서. 언제 우연히라도 만나게 된다면, 당당할 수 있도록. 상대방은 알지도 못하는데 그 상대방을 생각하며 노력한다는 건…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얼마나 외롭고 얼마나 힘든 과정인지.

그런데 그렇게 몇년이 흐르고 난 어느 날, 텐조에게 정말로 카카시와 같은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던 것이다.

드디어 다가갈 수 있다, 똑같은 위치는 아니어도 적어도 당당할 수 있다, 라고 생각하고ㅡ 다른 경우의 수는 아무것도 계산에 넣치 않은 채 다시 만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던 텐조에게, 절망은 너무도 빠르게 다가왔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데, 만나자마자 알게된 것이다. 카카시에게 이미 애인이 있다는 것을. 텐조는 순간 머릿속이 텅 비어 버렸다.


“왜 말을 하다 말아?”


텐조가 갑자기 말끝을 흐리자, 카카시는 서류를 정리하던 손을 멈추고 텐조를 쳐다보았다. 곧 텐조의 시선이 자신의 쇄골께에 고정되어 있는 것을 깨닫고는 머쓱하게 얼른 옷을 추스렸다. 텐조도 얼른 시선을 수습하여 다시 바닥에 흩어진 서류들로 방향을 옮겼다.


“아무튼 이렇게 보니 반갑네. 부서 옮기면 그때 제대로 환영회 해줄게.”

“네. 그 날만 기다리고 있을게요!!”


텐조는 방금 카카시의 몸에서 본 것을 떨쳐버리려고 일부러 더 크고 밝게 대답했다. 카카시는 속으로 여전하네,라고 가볍게 생각하고는 다시 사무실로 걸음을 옮겼다. 텐조는 가지런히 정리된 서류더미를 들어올려 단단히 안고는 카카시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이제 이렇게 가까이 있을 수 있는데… 어째서 여전히 멀게만 느껴지는 걸까. 텐조는 막연하게 카카시를 영원히 잡을 수 없을 것만 같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 텐조는 하루종일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처음엔 단순히 애인이 있나보다,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이상했다. 보통 그런 건, 남자가 여자 몸에 남기지 않나? 물론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고 그것 또한 이상한 일도 아니지만, 텐조는 그건 아닐거라는 막연한 직감이 들었다. 근거는 없었다. 하지만 ‘설마 선배가 게이인 걸까?’ 라고 생각하자, 텐조는 처음에 여자가 있나보다고 생각했을 때보다 더 심한 질투심이 일었다. 동시에 한편으론 자신에게도 희망이 생긴 것이었다. 만약 게이가 맞다면, 아무래도 이야기가 더 빠를테니까. 남자든 여자든 이미 연적이 있는 것임이 틀림없다는 게 좀 절망적이긴 하지만….

텐조는 하루빨리 진실을 알아내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이미 마음으로는 멋대로 결론을 내리고 싱글벙글이다. 카카시가 게이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자신이 카카시와 사귀게 되는 것으로 직결되는 것도 아닌데 텐조는 특유의 낙천적인 마음으로 은연중에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직접적으로 묻는건 아무래도 실례겠지?’ 텐조는 이제 어떻게 알아내느냐에 골몰하기 시작했다.

카카시는 자신이 좋아하는 상대가 아닌 이상은 굳이 게이임을 밝히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분위기도 아니고, 말해봐야 손해를 보면 봤지 좋을 일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아주 오래된 친구들 몇몇과 연애를 했던 사람들 말고는 카카시가 게이임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애석하지만 텐조 역시 카카시에겐 굳이 게이임을 밝힐 필요가 없는 사람중 하나였다.




.



카카시는 퇴근 후 곧장 아스마의 맨션으로 향했다. 항상 차로 가던 곳이지만 걸어갈 수도 있는 거리라 오랜만에 좀 걸어볼 요량으로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우연히 텐조를 만나는 바람에 잠시 잊어버리고 있었던 아스마와의 일이 다시 떠오른다. 한걸음, 한걸음, 맨션에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무거워져 간다. 기분이 이상하다.

ㅡ내가 왜, 뭐하러, 거기까지 가야 하는 거지?

간혹 정말 신경을 안쓰다 보면, 자신의 집에 가야하는 데도 차는 아스마의 맨션으로 향하고 있는 일도 있었다. 그만큼 이런 생활이 자연스러워졌기도 했고, 그만큼… 정신이 팔려 있었다. 아스마의 모든 것에.

지금도 마찬가지다. 카카시는 이 관계의 끝을 이미 알고 있다. 시작도 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걸음을 멈출 수가 없다. 이 끔찍하고 짜증나는 상황에서도, 여기까지 왔는데도, …그립다. 아스마와 나눠왔던 열기, 체취, 호흡과 손길까지 모두 다.

카카시는 결국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른 채 맨션에 도착해 버렸다. 능숙하게 도어락에 비밀번호를 누른다. 안에 아스마가 있든 없든, 언제나 이렇게 들어가고는 했었다. 짧게 삑-하는 소리와 함께 들어올 수 있다는 신호로 불이 반짝인다. 카카시는 손잡이를 돌렸다.

집은 비어 있다. 오라고 한 건 아스마 본인이면서도 늦는다. ‘그래봬도 사장으로서 일을 하긴 하나보네.’ 카카시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재킷을 벗고 침대에 걸터 앉았다.

자기 집처럼 드나들던 곳인데 새삼스럽게 낯선 느낌이 든다. 아스마의 흔적이 이곳저곳 묻어 있는데도 익숙하지가 않다. 카카시는 가만히 앉아서 이것저것 생각했다. 아스마는 정말이지 곰처럼 둔한 남자다.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 그 점을 두리뭉실하게 감싸줄 생각은 추호도 없다. 때로는 그 둔함이 카카시를 갈기갈기 찢어 놓기도 했다. 하지만 본인은 그것조차 모른다. 게다가 아주 무책임한 남자이기도 했다. 일이든 연애든 뭐든 간에…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카카시는 이제 신경질이 날 지경이 되었다.

띠릭- 하는 소리와 함께 문 밖에서 비밀번호가 눌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스마다. 카카시는 가만히 앉아서 그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어? 벌써 와 있었어?”


의자에 재킷을 대충 집어던지면서 침실로 들어오던 아스마가 침대에 앉아 있는 카카시를 보고 예상 밖이라는 듯 물었다.


“일도 안하면서 바쁜척 하지마.”

“일이 아니고, 사실 오늘 다른 약속이-”

“됐으니까, ”

ㅡ이대로 제발, 아무 말도 하지마.


카카시는 아스마의 말을 끊으며 동시의 아스마의 넥타이를 잡아채 자기 쪽으로 끌어 당겼다. 예상치 못한 움직임에 아스마는 카카시가 잡아 당기는 대로 이끌려 허리를 굽혔다. 눈앞까지 아스마를 끌어당긴 카카시는 그대로 깊숙하게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음… 하…”


카카시가 입술 사이로 옅은 숨을 내뱉으며 머리 뒤로 손을 감아오자, 아스마는 그에 맞추어 카카시를 밀어 침대에 눕혔다. 둘의 손길이 무언가에 쫓기기라도 하듯 점점 급해지기 시작했다.







-To be continued






2011. 11. 26. 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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