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림 - #5.



텐조는 가만히 카카시를 안은 채 들썩이는 움직임을 고스란히 다 느끼고 있었다. 숨이 끊어질 듯 울음을 뱉지도 못하고 삼킬때는 좀 진정하라고, 내가 다 마음이 아프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생각만큼 쉽게 입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그저 마른 어깨가 끝도 없이 떨리는 것을 느끼면서, 등을 토닥이며 계속 쓸어내려 주었다.

텐조는 자신마저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알 권리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데다가, 괴로워하는 카카시를 위해 해 줄수 있는 것도 없었다. 무슨 일인지 알수만 있다면, 그래서 어떤 말이라도 해줄 수 있다면 좋을텐데. 텐조는 자신의 무력함에 화가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누가 카카시를 이렇게 만든건지, 알 수 없는 그 누군가를 향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카카시는 그 특유의 나른한 표정때문에라도 모든 것에 무관심한 듯 보이고,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없어 어떤 일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 갈 것 같지만ㅡ 사실은 누구보다 섬세하고 때로는 감성적이며, 의외로 작은 일에도 상처받기 쉬운 사람이라는 걸 텐조는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자신이라면 좀 더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텐데… 다른 누군가때문에 이토록 괴로워하는 카카시를 보게 될줄은 상상도 못했다. 텐조는 같은 회사를 다니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하늘을 날 듯이 신나했던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자신이 항상 마음 속으로 생각해왔던 카카시는 언제나 빈틈없고 완벽했고, 당당하고 행복했다. 하지만 실은 태평하게 그런 모습만 보길 바랄 때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동안 그려왔던 카카시는 지금 여기 없으니까.

지쳐서 더이상 울 수가 없는 건지, 가지고 있는 눈물은 다 쏟아내 버린건지 끝날 것 같지 않던 카카시의 떨림이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 텐조는 간헐적으로 어깨를 움찔이며 한숨을 내쉬는 카카시를 한동안 그대로 안고 있었다. 이제 돌아가야 하지 않겠냐고 먼저 말을 꺼내도 될지 아니면 더 진정하길 기다려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데 카카시가 먼저 고개를 들며 말을 꺼냈다. 한참을 울고 나서인지 목소리는 더욱 가라앉아 있었다.


“……미안하다, 먼저 갈게. 너도 집에 가야지. …미안.”


카카시는 언제 그렇게 괴롭게 울었냐는 듯 순식간에 몸을 일으켜 텐조에게서 벗어났다. 텐조는 잡을 새도 없이 비틀거리며 운전석에 올라타려는 카카시를 잠깐 멍하니 보다가, 재빨리 팔을 낚아채 겨우 붙잡았다. 


“이 상태로 운전하시게요?”

“…이제 괜찮아.”


카카시는 텐조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은 채 대답했다. 냉정하기까지 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카카시에겐 우연히 만난 사람을 붙잡고 한참동안 눈물을 쏟아낸 꼴이었으니 미안함과 민망한 마음이 들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생각에, 텐조는 갑자기 다소 차가워진 카카시의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괜찮긴요, 제대로 걷지도 못하시면서!”

“………”

“제가 운전할게요, 보조석에 앉아요.”

“괜찮다니까.”

“혹시 저한테 미안해서 그러는 거면 전 괜찮으니까 신경쓰지 마세요. 이대로 선배 그냥 보내면 그때야말로 선배 걱정돼서 잠도 못 잘테니까, 제가 운전하게 해줘요.”

“………”

“선배…”


끝에 ‘제발요’라고 애원하는 소리가 따라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들정도로, 친절을 베풀고 있으면서 오히려 간절하게 부탁하듯 말하는 텐조를 카카시는 더이상 거절할 수가 없었다.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할 수 없다는 듯 터벅터벅 차 반대편으로 걸음을 옮기자 텐조가 어느새 먼저 가서는 차 문을 열어준다. 카카시는 ‘고마워’라고 작게 말하고는 차 키를 넘겨주며 자리에 앉았다.

멋쩍은 듯 집이 어디냐고 묻는 텐조에게 대답대신 네비게이션을 슬쩍 가리킨 카카시는 약간의 두통이 느껴져 미간을 찌푸린채 눈을 감았다. 곧 부릉 하고 시동걸리는 소리가 들렸다. 주차장 바닥보다는 훨씬 편안하고 푹신한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있으니 몸이 나른해져왔다.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여러 생각들이, 엔진이 돌아가고 바퀴가 굴러가는 익숙한 소음 속에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



카카시의 집은 걸어서 다닐 거리는 아니었지만, 차로 오래 걸릴만큼 먼 곳도 아니었다. 운전대를 잡은지 20분정도 지났을까, 텐조는 카카시가 살고 있는 오피스텔에 도착했다. 주차장의 적당한 자리에 차를 세워두고는 도착했음을 알리기 위해 옆자리에 앉아있는 카카시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피곤했는지 어느새 깰 기미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잠들어 있었다.

텐조는 카카시를 곧 바로 깨우지 않고 한동안 바라보았다.

눈물자국이 아직도 얼룩져 있는, 웃을 때 예쁘게 휘어지는게 훨씬 더 보기 좋은 눈과 창백해 보일 정도의 하얀 피부. 가라앉아 있는 은빛 머리카락은 차안의 어둠 속에서도 그 빛을 잃지 않고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날카로운 콧날이 떨어진 곳엔 붉고 작은 입술이 갈증을 느끼는 듯 마른 채로 새근거리는 숨을 내뱉는다. 입술은 남자다우면서도 부드러운 선을 가진 턱으로 이어지고, 그 아래로 길고 가는 목선이 드러나 있었다. 새하얀 피부가 어둠 속에서 다소 푸릇하게 보인다. 제멋대로 흐트러진 셔츠 사이로 보이는 쇄골과 가슴께가 카카시가 숨을 쉴때마다 그에 맞춰 작게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었다. 몸에 꼭 맞는 검은 수트는 피부색과 너무도 잘 어울렸으며, 훤칠하고 호리호리한 체격의 그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몸도 못 가눌정도로 취해서 괴롭게 우는 모습까지 보고 난 상황인데도ㅡ 텐조는 잠들어 있는 카카시를 보고 있으니 심장이 뛰었다. 카카시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여전히 텐조에겐 가슴이 떨리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대학생일 때에는 정확히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은 채 그저 카카시를 좇기에 바빴다. 확실히 그때는 동경도 사랑도 아닌, 그 사이 어디쯤엔가 자리잡은 애매한 감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졸업하고 카카시를 보기 힘들어진 후에도 언제나 카카시를 생각하며 지내왔고 그걸 사랑이라 믿었지만, 텐조는 그 시간들 조차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던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뎌지고도 남을만큼 시간이 흐른 것도 사실이고, 존경이 아니라 사랑이었나 싶었던 것처럼ㅡ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착각일 수도 있었다.

모든 것은 이제와서야 확실해졌다. 텐조는 카카시를 옆에 두고 직접 보게되자ㅡ 이렇게나 마음이 두근거림을, 말 한마디 붙이기 위해 수십번은 고민하게 됨을, 카카시에 관한 것이라면 작은 것 하나 빠짐없이 알고 싶어짐을, 비로소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고ㅡ 오히려 예전보다 더욱 분명한 형태로 그를 원하고 있음을. 이런 것들을 제대로 알기 전까지의 그 길고 긴 준비의 시간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껴질만큼의, 뚜렷하고 놀라운 감정. 이걸 달리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사실은 위로를 해준답시고 말없이 카카시를 안고있을 때에도 걱정스럽고 속상한 마음 한켠으론 얼마나 설레고 좋았었는지. 텐조는 만약 자신이 처음부터 카카시를 몰랐다고 해도, 이제 처음 만난 것이라고 해도, 이렇게 그를 좋아하게 됐을거라는 확신마저 들었다. 막연하게 이상을 좇듯 꿈꿔왔던 카카시가 이젠 손으로 잡고, 만질 수 있는 현실이 되었다. 그 현실속의 텐조는,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강하게 카카시를 원하고 있었고ㅡ 그 현실속의 카카시는 상상보다 아름답고 매력적이었다. 언제나 꿈꿔왔던 것보다 더 설레고 흥분되는 현실.

그리고,
꿈꿔왔던 것과는 달리 무겁고 괴로운 현실.

이 떨리는 마음 그대로, 카카시에게 가볍게 입맞추며 집에 다 왔다고 다정하게 말해 줄 수 있는 사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다른 일 때문에 술을 마시고 속상해 울었던게 아니라,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 하고 웃음짓는 저녁을 보낸 후라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래서 지금이 카카시의 집에서 있을 데이트의 마지막 코스를 앞둔 순간이라면 얼마나 황홀할까.

속이 쓰린건지 마음이 아픈건지 낮게 끄응- 하는 소리를 내는 카카시를 보며, 텐조는 여전히 딱히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자신의 처지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할 수만 있다면 밤새도록 곁을 지키면서 울지않게, 아프지 않게 보듬어줄텐데. 지금은 그저, 그를 집까지 데려다 주고 부디 모든 걸 잊고 편하게 잠들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선배, 다 왔어요.”

“으음..”

“들어가서 주무세요, 선배.”


어깨를 잡고 조금 흔들자 갑작스런 압력에 눈살을 찌푸리며 정신을 차리는가 싶더니, 곧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들려는지 고개가 힘없이 꺾였다. 텐조의 기억으론 카카시는 술을 그렇게 좋아하지도, 주량이 많지도 않았다. 그런 사람이 이렇게 술을 마신데다가 펑펑 울어댔으니 일어날 기운도 없을만큼 지쳐있는게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텐조는 안되겠다 싶어 차에서 내려 보조석의 문을 열었다.


“걸을 수 있겠어요?”

“으응… 고마워…”

“인사는 나중에 해도 되니까, 일어나 봐요. 일단 집에 가야죠.”


텐조는 허리를 숙여 카카시의 팔을 등뒤로 두르고 한 손으로는 허리를 안아 들어올렸다. 잠든 것도 깬 것도 아닌듯한 카카시는 몸이 들려올려지는 대로 끌려나오다가 순간 중심이 지나치게 앞으로 쏠렸다. 텐조가 얼른 자신의 다리를 축삼아 카카시의 무게를 지탱해 주어서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그 와중에 아무렇게나 넣어져 있던 청첩장이 카카시 품에서 나와 바닥에 떨어졌다.


“잠깐만요, 선배. 뭐 떨어졌어요.”


텐조는 카카시를 잠시 다시 보조석에 앉혀두고는 떨어진 종이를 집어 들었다. 딱 봐도 이렇게 접혀져 있을만한 물건은 아니었다. 재질이 두꺼워 주머니에서 나오자마자 다시 펼쳐지기 시작한 카드사이에 얼핏 비치는 wedding이란 글씨를 보고 텐조는 청첩장임을 알았다. 왜 청첩장 같은걸 구기다시피 접어 놓았을까, 란 의문은 지금의 카카시를 보면 쉽게 예상이 가능했다. 텐조는 다리는 이미 밖으로 꺼내진 상태로 앉아서 지친 표정으로 등받이에 옆얼굴을 기대고 있는 카카시를 슬쩍 바라보며 잠시 망설이다가 청첩장을 열어보았다.

사루토비 아스마와 유우히 쿠레나이.

아스마라면 회사 사장이니 당연히 알고 있다. 아스마가 카카시와 절친한 사이라는 것도 회사를 옮기고 나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친한 사이라면 이런 소식에는 기뻐해야 보통인데, 카카시는 아무리 봐도 기뻐서 술을 마신 것 같진 않으니ㅡ 이것때문에 카카시가 이렇게 슬퍼하는 거라면, 둘 중에 누구때문일까? 카카시가 게이일지도 모른다고 짐작하고 있는 상태이지만 아직 확실한 사실을 몰랐기에 텐조는 쉽게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텐조는 궁금함에 이것 저것 끼워맞춰 보려고 기억속에서 단서를 더 뒤적거리다가, 문득 다시 잠에 빠져들고 있는 카카시를 보고 청첩장을 원래대로 접으며 생각도 한켠으로 같이 접어 놓았다. 지금 급한건 그게 아니었다.

텐조는 주머니에 청첩장을 되돌려 놓고는 다시 카카시를 부축해 일으켰다. 완전히 잠들어버린 건 아니었는지 카카시도 조금씩이나마 다리에 힘을 주며 텐조가 부축해 주는대로 보조를 맞추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눈은 꼭 필요한 순간에만 본능적으로 떠질 뿐, 계속 자고 싶다는 듯이 감겨 있었다. 텐조의 귓가로 카카시의 뜨거운 숨결이 흘러들었다. 회사 주차장에서도 느꼈지만, 한 품안에 들어오는 카카시는 보기보다 말랐으면서, 흰 피부때문에 약해 보이기만 하던 몸은 생각보다 단단했다.  

텐조는 카카시의 긴 다리가 서툴게 땅을 내딛는 것을 놓치지 않고 지켜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카카시는 완전히 텐조에게 몸을 맡긴채 눈까지 감고 있으면서도 집을 찾느라 이것저것 물어오는 텐조의 말에는 다 대답을 해주고 있었다. 드디어 현관 앞에 도착한 텐조는 이제 됐다는 듯 후- 하고 숨을 한번 내쉬었다.


“선배, 비밀번호가 뭐예요…? 아님 이건 선배가 직접…”

“…생일.”


집 비밀번호를 대놓고 물어도 될까하는 마음에 머뭇거리던 텐조는 의외로 쉽게 알려주는 카카시의 말을 듣고 말없이 도어락의 버튼을 눌렀다. 숫자를 누르고 확인 버튼을 누르자 오류음과 함께 버튼에 들어와 있던 불이 힘없이 꺼져버렸다. 두어번을 더 시도해도 같은 결과가 나오자 텐조는 자신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낮은 숨을 쉬고 있는 카카시를 바라보았다. 빨리 제대로 잘 수 있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먼저, 그리고 의아한 마음이 두번째로 든다.


“선배 생일 9월 15일 아니예요?”

“맞아…”

“문이 안 열리는데요.”

“………미안, 내가 할게.”


여전히 어깨에 얼굴을 기댄채로 말을 하는 카카시때문에 텐조는 목이 간질거렸다. 그런 텐조를 아는지 모르는지 카카시는 고개를 돌리더니 조금씩 비틀거리면서도 능숙하게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1-0-1-8 이란 숫자를 따라가는 눈이 금방이라도 다시 감겨 잠에 빠질 듯 하면서도ㅡ 눈물이라도 나올 것처럼 유난히 슬퍼보였다. 곧 띠릭- 하는 기계음과 함께 걸쇠가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카카시는 도어락을 연 김에 직접 문까지 열었고, 텐조는 다시 자세를 고쳐잡으며 카카시와 함께 집 안으로 들어 섰다. 그리고는 적응되지 않는 어둠속에서도 얼른 벽을 더듬어 불을 켰다. 혼자 살기엔 조금 넓어보이는 오피스텔은 원래 사무실도 겸하는 용도인데다가, 카카시의 심플한 가구들때문에 다소 썰렁한 느낌까지 들었다. 침실용으로 작은 방이 하나 딸려 있는 것 같았지만 침실로 쓰고 있지는 않은지, 침대는 현관에서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바로 보였다. 카카시는 쏟아지는 잠을 참는게 이젠 한계에 다다른 듯 허리에 감겨있던 텐조의 손이 풀리자마자 털썩하고 침대에 몸을 맡겼다.

텐조는 점점 숨이 고르게 변해가는 카카시를 잠시 내려다보다가 심호흡을 하듯이 깊게 한숨을 후- 하고 내쉬었다. 울다 지쳐 잠든 카카시가 너무 안타깝고 속상하다가도 자꾸 만지고, 쓰다듬고, 마른 입술을 자신의 입술로 적셔보고 싶었다. 그런 자신이 한심해서 스스로를 질책하며 애써 마음을 가다듬고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침착하게 수트재킷과 넥타이를 벗겨냈다. 마음같아선 옷도 다 갈아입히고 더 편하게 잘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지만, 카카시는 이미 조금도 움직일 여력이 없는 것 같았다.

텐조는 카카시의 다친 손가락에 쓸 연고와 밴드를 찾기 위해 집안을 두리번거렸다. 가구들이 몇개 놓여져있지 않아서 추측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 곧 옷장 옆쪽에 놓인 서랍에서 약품상자를 발견한 텐조는 다시 카카시에게로 돌아와 침대맡에 앉았다.

카카시는 새근거리는 고른 숨을 쉬면서도, 무슨 안 좋은 꿈이라도 꾸는 건지 간혹 미간을 찌푸리며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무언가 말할 듯이 입술을 달싹이다가도 이내 다시 다물어버렸다. 그 모습에 텐조는 속이 쓰려왔다. 현실에서든 꿈에서든 무언가 원치않는 악몽을 꾸고 있는 그를 깨워 그 곳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어졌다. 벗어나서 자신에게 오도록. 하지만 실제론 할 수 있는게 별로 없었다. 텐조는 분하기까지 한 마음에 자기도 모르게 약품상자를 들고 있는 손에 꾸욱, 하고 힘이 들어갔다.

결국 마음과는 다르게 텐조는 카카시를 깨우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손가락의 상처를 소독하고 약을 발라준 뒤 밴드를 깔끔하게 감아주었다. 대충 할일이 마무리 되자, 텐조는 그제서야 갈증을 느꼈다. 아무리 몸집이 있는 편은 아니라지만 자신만한 남자를 들쳐매다시피 하고 데려왔으니 목이 타는 것도 당연했다. 텐조는 텅텅 비어있는 냉장고 안에서 물을 꺼내 마시고는, 갈증때문에 새벽에 깨어날 수도 있을 카카시를 위해 컵에 물을 담아 침대옆 탁자에 놓아두었다.

부디 꿈조차 꾸지 않는 깊고 편한 잠을 자길 바라면서 텐조는 조심스럽게 카카시의 은빛 머리칼을 쓸어올렸다. 예쁘고 단정한 얼굴이 뭐가 그리 괴로운지 자꾸 울상을 짓는 것이 쳐다보기 힘들정도로 안타까웠다. 텐조는 짧게 한숨을 쉬고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지막 확인차 집안을 한번 쭉 둘러보고는 현관으로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카카시의 잠긴 목소리가ㅡ 잠겨 있으면서도 우는 듯한 목소리가 텐조를 붙잡았다.


“…가지마 제발….”

“………”

“아스마…”


텐조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마치 절대로 들어서는 안되는 걸 들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몰랐던, 궁금했던, 어떻게 알 수 있을지 방법조차 알지 못했던, 많은 의문들이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곳에서 한꺼번에 풀려버렸다. 그래서 더더욱, 자신은 알 권리도 없었던 카카시의 비밀을 건드려 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차마 뒤돌아볼 생각도 못하고 가만히 굳은채로 서있던 텐조는, 꿈을 꾸는 것이었는지 다시 잠드는 듯한 카카시의 기척을 느끼고는 최대한 소음을 줄이며 카카시의 집을 나왔다. 찰칵, 하고 문이 완전히 닫히자마자 텐조는 벽에 기대어 후우- 하고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되는 걸까. 머릿속이 복잡해져간다.





-To be continued







 

2012. 1. 25.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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