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스카카 - 무제

생명에 지장은 없다고 했다. 처음부터 별로 놀라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그 말을 들으니 사스케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을 뻔 했다. 깨달음이란 말은 언제나 늦어버린 자각에 해당하는 것임을 이런 때에 알게 된다. 얼마나 걱정하고 있었던가. 이렇게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하는 느낌이 드는 것은, 그 동안 얼마나 차갑게 식어 있었다는 것인가. 이제야 숨을 쉬고 있다고 인식하게 되는 것은, 한숨 한번 내쉬는 것에도 얼마나 겁을 먹고 있었다는 것인가. 적막한 병원 복도에 어느새 새벽이 찾아와 빛이 들고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아채게 된 것은, 얼마나 어두웠다는 걸까. 카카시가 없는 세상은.

사스케는 입술을 꾸욱 깨물었다. 깨어나기 전까지는 절대 안정이 필요해서 병실에 들어가보는 것조차 불가능 했다. 돌아가서 조금은 쉬라고 부추기는 모든 권유를 뿌리친 채, 사스케는 고집스럽게 병실 앞에 앉아 있었다. 그렇게 하염없이, 끊임없이, 깨달아가고 있었다. 아스라히 날이 밝아오고 있음을.

몇번은 울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기뻐서 웃었는지도 모른다. 눈가는 계속 마른 채였지만, 입가는 내내 굳어 있었지만 사스케는 자신이 몇번인가는 울고, 웃었다고 느꼈다. 딱 그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였다. 상태 변화를 알리는 기계음이 울리고 카카시가 움직이고 의료 닌자들이 분주하게 왔다갔다 하기 시작했다. 사스케는 그것을 바깥에서 지켜보도록 되어 있는 커다란 창으로 멍하게 바라보았다. 경황이 없어 자신이 들어갔어도 누구도 막지 못했겠지만, 이상하게 사스케는 쉬이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윽고 기본적인 진찰과 처방이 끝난 후 모두가 물러갔다. 한 의료닌자가 조용히 사스케에게 다가와 들어가도 좋다고 언질을 주었다. 그런 것쯤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스케는 창을 통해 안을 한번 더 들여다 보았다. 카카시는 몸을 일으켜 앉아 바깥으로 난 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비스듬하게 보이는 등이 유독 지쳐보였다. 그리고, 깨달음은 언제나 늦다.

자신의 앞을 가로 막고 서 있던, 어떤 것으로도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그 등을 좋아했었다. 칼날같은 살기를 뿜으면서도 상냥하게 웃는 얼굴을 좋아했었다. 지고 있는 죄책감을 숨기려고 어설픈 척 연기하는 서투름을 사랑했었다. 관심 없어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자신의 마음 속을 들여다 보듯 쥐어 흔들던 말들도, 사실은 사랑했었다.

잃을 뻔하고 나서야 알게되는 자신은 한없이 어리석고 나약할 뿐인 것을. 당신은 어디까지 감싸고 싶었던 걸까. 언제까지 기다릴 셈이었을까.

사스케는 다시 입술을 깨물었다. 창밖을 내다보던 카카시의 고개가 천천히 움직였다. 이번엔 반대쪽 창으로, 사스케가 서 있는 쪽으로. 파리하고 창백한 피부와 옅은 기색의 머리칼이 먼 곳에 핀 신기루처럼 하늘거렸다. 그리고 딱 그만큼 하늘한 미소가 사스케를 향했다. 처음부터 거기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는 것처럼.

눈물이 나는 것과 웃는 것이 같을 때가 있다. 사스케는 지금 자신이 그렇다고 느꼈다. 카카시에게 보인 것은 흥, 하는 숨과 함께 비틀어 올린 입술이지만. 그래도 카카시에겐 이미 들켰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니까, 표정은 굳이 솔직하지 않아도 된다.

사스케는 병실 안으로 한발 내딛었다.

날이 완전히 밝아 있었다.








2013. 2. 6. 18:0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