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날



하얗고 고요하게 가라앉은 세상은 분명히 아름답다. 하지만 순수하게 그 아름다움을 넋 놓고 바라보았던 적은 지금까지 없었다. 깨끗한 눈밭엔 매번 제 것인지 아닌 지도 알 수 없는 새빨간 피들이 수 놓였다. 그리고 그 때마다 누군가를 잃거나, 잃게 만들었다. 어린 아이처럼 마냥 기뻐한 순간이 없었다는 사실은 눈이 내릴 때마다 서글프게 떠오른다. 밤에도 희미한 빛을 내는 하얀 벌판 위에서 한 순간이나마 웃을 수 있다면. 그것은 그저 이번엔 잃지 않았음을 의미할 뿐.

눈이 내린다. 깃털처럼 팔랑이는 송이들이 바닥에 닿는 소리가 들리기라도 할 것 같은 적막한 밤에, 눈이 내리고 있었다. 카카시는 조용히 손을 뻗었다. 이미 차갑게 얼어버린 손가락 끝에 닿은 눈이 한동안 제 모습을 유지하다가 곧 눈물처럼 흘러 떨어졌다. 집 앞 골목을 가득 채운 하얀 빛들은 티끌 하나없이 깨끗하고, 처량했다.

암부의 생리라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한 번 내려진 임무가 예정보다 늦어지고, 결국 추가로 후발대가 출발... 그 중 일부 시체처리반 포함. 그것이 가지는 무거운 함의. 따뜻한 방에서 가만히 창 밖이나 내다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지금의 너는, 잃은 쪽일까 잃게 만든 쪽일까. 하얀 세상을 붉게 물들이는 건 너일까, 다른 누군가일까. 어느 쪽이든 너는, 또 얼마나 혹독한 추위를 느끼고 있을까. 아무리 만나도 적응되지 않는 피비린내 가득한 추위를.

머리 위로 쌓이던 눈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 내렸다. 뺨에 닿는 감촉이 너무 차가워서, 언제나 뜨겁게 닿아오던 손길이 떠오른다. 카카시는 손바닥으로 뺨을 살며시 쓸었다. 물기가 되어 버리는 이 온도가 너의 마지막이 아니기를. 간절한 마음이 카카시가 서 있는 길 위로 하염없이 쌓여갔다.

하늘은 어둡고 땅은 쓸쓸한 빛을 내는 깊어가는 밤. 호흡마저 새하얗게 얼어버린 골목 위로 어느 순간 저벅, 작지만 크게 울리는 소음. 카카시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소리는 띄엄띄엄, 하지만 분명하게 카카시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가까워진 거친 숨소리가 청야를 가득 메울 때 생각한다. 아직은 살아 있음을. 자신의 어깨를 기대듯 잡아오는 손길을 느끼며 실감한다. 이번엔 잃지 않았음을. 자신의 발을 소복이 덮어버린 눈 위로 새빨간 핏물이 투둑 떨어지는 것을 보고서야, 어둠 속 하얀 눈처럼 희미하게 웃는다.

이 서글픈 겨울은 끝나지 않겠지만. 오늘은 웃는다.


"기다렸어, 텐조."









 

2013. 2. 12.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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