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1. 만화 <진격의 거인> 세계관
2. 긴토키(은혼) X 카카시 ← 산지(원피스), and 리바이(진격의 거인, 걍 친구ㅋㅋ)
3. 중2 & 허세 주의
4. 어두움 주의
5. 긴토키 카카시 캐붕.........주의. ............라고 썼었는데 생각해보니 그닥 그렇게 그다지? 캐붕은 아닌 거 같아 앞으론 삭제..<<...
원래 상편으로 올렸던 부분 다시 업로드. 결국 4편이 되었네요. ㅡ,.ㅡ 한편이면 될 줄 알았던게 상하가 되더니 또 더 길어지고 상중하여야 할 것 같아서 그렇게 했는데 결국 4편이 되었다. .......라는 점에서, 눈치 채셨겠지만 굉장히 지루합니다............ 흑...orz.
..............오늘부터 하루 한편씩..... 만약 퇴고가 빨리 끝나면 끝나는대로 전부 업로드...
소설
긴토키X카카시(진격ver.)
너에게는 위로도 되지 못할
written by pathos
너에게는 위로도 되지 못할
written by pathos
한 병사가 통째로 씹어 먹히기 직전이었다. 카카시는 급한대로 손목을 베어 버리고, 거인의 팔을 타고 달려 올라갔다. 반대쪽 손이 쉬익- 육중하게 바람 가르는 소리를 내며 덮쳐 왔지만 금세 어깨를 박차고 점프한 카카시는 단번에 거인의 목을 도려내었다. 피어나는 연기와 병사들이 무사한 것을 보며 카카시가 잠시 안심했을 때였다. 방금 전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병사가 다시 사색이 되어 비명처럼 외쳤다.
“병장님! 뒤……!!”
카카시는 돌아볼 것도 없이 나무에 와이어를 박고 몸을 날렸다. 나무기둥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돌아 거인의 뒷목이 시야에 들어온 순간, 카카시의 움직임을 따라오던 거인의 손이 와이어가 박힌 나무를 박살냈다. 좀 전에 처리한 거인 세 마리의 시체에서 증기가 솟구쳐 다른 부상당한 병사들을 가려주고 있어, 거인은 카카시만을 표적으로 삼고 있는 듯 했다. 그것은 현재로선 가장 좋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카카시는 다행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거인의 손도, 입도, 피와 살찌꺼기로 지저분했기에.
‘이건 앞쪽의 그 세 마리중 하나… 어째서 여기까지……’
순간 밀려오는 불길한 예감에 카카시는 으득 소리가 날 정도로 이를 악 물었다. 날아가던 힘으로 옆 나무에 힘껏 발돋움을 함과 동시에 나무가 부서지자마자 빼냈던 와이어를 거인의 등에 박아 넣었다. 카카시는 쉬식 바람이 귀를 스치는 소리와 와이어가 감기는 느낌에 온 몸을 내맡기며 본능처럼 자세를 잡았다. 거인이 방향을 틀어 뒤로 돌려 했지만 카카시가 더 빨랐다. 순식간에 돌진한 양 칼날이 거인의 목에 깊숙이 박혔다.
“크읏…!”
이미 무뎌진 칼날이 심하게 덜덜거렸다. 단단한 살덩이를 베는 소름끼치는 감각이 칼을 타고 유난히 생생하게 전해졌다. 칼은 이게 마지막이었다. 밑에 있는 병사들에게 남은 것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시간이 지체되는 동안 추가 피해가 생길 것이 분명했다. 지금 잡은 기회를 놓칠 수 없다. 목을 도려내는 것은 찰나의 순간. 그 짧은 순간에도 카카시는 칼이 부러지지 않도록 섬세하게 힘을 조절하며 살덩이를 분리해냈다.
곧 쓰러진 거인에게서 연기가 피어났다.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을 돌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카카시는 대열에 문제가 없는지 한 눈에 살핀 후, 만약을 위해 부상병에게 남은 칼날을 받아들고 즉시 자리를 떴다. 거인이 더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나머지는 성공적으로 죽인 게 분명했다. 하지만 방금 그 거인은…. 말을 부를 정신도 없이 입체기동장치로 나무사이를 종횡해가는 카카시의 입술이 바싹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 정도 녀석들이 다 죽지는 않았을 거야…. 기행종이니 제멋대로 지나쳐 온……!’
카카시는 후방지원을 가기 전 부하 병사들에게 거인 셋을 맡겼던 자리를 발견하고 땅으로 착지했다.
“…….”
주변은 온통 시체 파편과 핏물로 너저분했다. 주인을 알아보기도 힘든 팔과 다리들이 조각난 채 굴러다녔다. 몸에 뒤집어 쓴 피에서 나는 거인의 비린내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살아있었던 소중한 동료들의 피 냄새와 뒤섞여 정신을 뒤흔들었다.
카카시는 비통함에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움직여지지 않는 다리로 그나마 몸통의 형체가 남아있는 병사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무릎을 굽히고 앉아 하반신이 통째로 사라진 반쪽짜리 몸을 안아들자, 아직도 마르지 못한 피가 옷자락에 붉게 번져왔다. 4분의 1은 날아가 버린 얼굴은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한 채였다.
“…아르넬…….”
카카시는 안에서 터지려는 감정을 필사적으로 눌러내고 있었다. 누군가 목을 조르는 것처럼 목울대가 아파왔다. 그때, 살아 있을 리 없는 아르넬의 턱이 경련하듯 움직였다.
“…카카……시…병…장님…….”
“아, 아르넬…!?”
“…왜……, 왜………”
남은 힘으로 처절하리만치 말을 하려는 아르넬을 카카시는 안타까운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 입술을 꾹 깨문 카카시의 표정에는 괴로움이 가득했지만, 눈빛만큼은 먼 풍경을 바라보듯 아득했다.
“…왜 그런…… 명령을… 내리셨습니까……?”
“………뭐…?”
“…그게… 아니었다면……, 우린… 죽지 않았을 텐데.”
“…그건……”
“어…어째서……”
어째서 그런 명령을 내리신 겁니까?
순식간에 힘을 되찾은 목소리가 또렷하게 머릿속을 울렸다.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다른 시체들도 형체를 되찾고 동시에 카카시를 향해 말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돋아난 아르넬의 팔이 카카시의 몸을 붙들었다. 그 팔은 거인의 팔이었다. 크기를 보고 놀란 카카시가 다시 아르넬에게 고개를 돌렸을 때, 그곳엔 흉측한 거인의 얼굴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날카롭고 탐욕스러운 이빨에서 칼을 가는 듯한 소름끼치는 소리가 울려댔다. 튀어나와 희번덕대는 눈알이 원망의 눈초리로 카카시를 노려보았다. 거인의 팔이 움직이고 쩌억 벌어진 입 안의 암흑이 점점 팽창해나갔다. 이대로는 먹힌다. 카카시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몸이 조금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온 몸을 조여오고 있었다.
살았을지도 모르는데.
돌아갈 수 있었는데.
가족들을 만나기로 했는데.
이젠 돌아갈 팔도 다리도, 머리도 없어.
도대체 왜,
이 자리를 떠나셨습니까?
………
…그건……….
…………
………미안…하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카카시는 속으로만 되뇌었다. 이런 비극에 갖다 댈 이유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왜 죽게 만들었냐는 물음에 고작 미안하다는 말 따위 밖에 떠올릴 수 없는 자신이 한심할 뿐이었다. 거인의 손아귀에서 힘없이 고개를 떨군 카카시는 모든 것을 체념한 표정으로 두 눈을 감았다. 악력이 더욱 거세어지고 숨이 막혀왔다. 머리 위로 시커먼 그림자가 드리우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순간,
“카카시!!”
목이 터져라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카카시는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렸다. 이미 장막이 내려오듯 다물어지고 있는 거인의 이빨들 사이로 뿌옇게 익숙한 인영이 보였다. 그리고 그 인영의 주인을 떠올린 찰나. 허파 속으로 한꺼번에 공기가 들어차면서 꽉 막혔던 숨통이 트였다.
.
―허억…!!
심장이 멎는 듯한 느낌과 동시에 카카시는 눈을 떴다. 숨을 몰아쉬며 멍한 정신과 놀란 눈으로 천장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다가, 비로소 꿈이었음을 깨달았다. 커다랗게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어낸다. 기운 없는 손이 이마에 맺혀 있던 땀으로 젖어들었다.
‘또 같은 꿈…….’
카카시는 몸을 일으켜 침대에 기대어 앉았다. 오후 1시가 좀 넘은 시각. 밤을 지나 오전까지 꼬박 새고 겨우 눈을 감았었는데. 한 시간도 안 되어 깨어난 것이었다. 침대 옆 탁자에는 오전에 산지가 주고 간 아침식사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벌써 몇 끼째 그냥 물렸는데……. 챙겨주는 것은 항상 고마워하고 있지만, 미안하게도 여전히 배가 고프지도, 먹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않았다. 카카시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가락으로 이불자락을 하릴 없이 매만졌다. 그 의미 없는 손길과 함께 머릿속이 다시 복잡해졌다.
이곳 카라네스 구로 돌아온 지 벌써 나흘째였다. 약 한달 간의 꽤 긴 여정으로 저장 플랜트에 보급물자를 비축하고 돌아온 것이었다. 새로 짠 진형의 효율성 덕에 피해는 평소의 출정보다는 크지 않았었다. 문제는 돌아오는 길, 카라네스 구와 가장 가까운 숲 속에서 일어났다. 일렬로 숲길에 들어선 진형은 부상자들을 실은 마차를 정 중앙에 위치시켜 보호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었다. 그 앞뒤로 여러 반으로 나뉘어 위치한 병단이 몇 겹으로 거인들을 막을 쿠션을 형성한 상태였다. 카카시까지 포함하여 5명으로 구성된 카카시 반은 마차의 바로 앞에 위치했다. 앞쪽의 마지막 방어선인 셈이었다.
길을 반 정도 통과했을 때 기행종을 알리는 신호가 솟아오르고, 곧 한꺼번에 여섯 마리의 기행종이 들이닥쳤다. 중앙까지 이 정도 숫자면 앞쪽도 피해가 크다는 의미였다. 카카시는 단 하나도 뒤로 보내지 말라는 명령과 함께 말 위에서 뛰어 올랐다. 기행종은 가까이 다가가는 것으로는 주의를 끄는 게 불가능하기에 병사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거인들에게 상처를 내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상황이 일어났다. 세 마리가 카카시 반을 그대로 통과해 간 것이었다. 비교적 덩치가 작은 두 마리는 엄청나게 민첩한 움직임으로 병사 두 명의 칼날을 피해 달아났고, 다른 한 마리는 카카시가 눈알을 베어버렸음에도 반응하지 않고 뒤뚱거리며 카카시를 지나쳐갔다. 뒤쪽은 동행하는 병사들이 있긴 해도 부상병들을 싣고 있는 마차들이 있어 움직임이 빠르지도 자유롭지도 못했다. 게다가 지나친 거인들의 행동이나 속도가 예사롭지 않아 상대하기 버거울 것이 분명했다. 이대로는 기껏 살려온 동료들을 허무하게 다 잃게 될 것이었다.
―저쪽은 내가 쫓는다, 너희들은 그 셋을 맡아!
아직도 선명하게 뇌리에 남아있다. 큰 소리로 결의에 찬 대답을 하던, 네 명의 목소리가.
조각만 남은 시신들을 수습해 숲을 통과한 뒤로는 큰 전투가 없었다. 한나절을 꼬박 달려 도시에 도착했고 그 후로 나흘. 카카시는 제대로 잠에 든 적이 없었다. 밤 늦게까지 회의를 하고 몸을 누이면 뜬 눈으로 아침을 맞고, 그나마도 선잠에 들면 그 날 일을 꿈으로 꾸고 가위에 눌렸다. 결말도 매번 같았다.
반드시 이길 것이라든가, 당연히 살아남을 것이라는 기대만큼 어리석은 건 없었다. 아무리 숙련된 병사라 해도, 언제든 붙잡혀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것이 벽 바깥의 세계였다. 그래도……. 그래도 그 네 명은 다르다는 생각을 스스로도 은연중에 하고 있었음을 그 날 일로 깨달았다. 카카시가 이끄는 병단에서 최정예로 꼽히는 이들이었다. 워낙 사망률이 높아서 구성원이 쉴 새 없이 바뀌는 게 조사병단이지만 그 네 명은 최소 2년 이상 카카시와 함께 하던 이들이었고, 수도 없이 생사의 고비를 넘어온 소중한 동료들이었다. 특히 아르넬은 실력이 좋고 경험도 많아 이번에 돌아오면 진급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 소식에 가족들도 카라네스 구까지 찾아와 있었다. 그런데 도시를 지척에 둔 숲에서 변을 당한 것이다. 카카시는 돌아온 행렬에 아들이 없음을 깨닫고 자신을 붙들고 무너지는 아르넬의 어머니를 그저 무력하게 바라봐야 했다.
카카시는 하얗게 질린 제 두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꿈속에서 아르넬이 하던 말이 떠올랐다. 물론 실제로 그들이 자신에게 그런 원망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카카시가 매번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이었다. 마음 속 깊이 묻어둔 죄책감 같은 것이었다. 순간순간 최선이라고 믿는 판단을 하고 주저 없이 명령을 내린다. 그게 자신이 맡은 역할이었다. 결과는 자신도 모른다. 만약 마차 뒤쪽 반의 원조를 믿고, 남아서 셋을 먼저 처리한 뒤 함께 쫓아갔다면 피해는 더 적었을까. 아니 애당초 남았다고 해도 모두 살았을 것이란 보장이 있는 건가. 가지 않은 길을 두고 고민해봐야 아무런 답도 낼 수 없다.
그렇기에 자신이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면 된다고 리바이는 말하곤 했다. 옳은 말이고 현명한 사고방식이었다. 그러나 카카시는 항상 후회하고 있었다. 언제나 희생자는 있다. 때문에 조사병단의 출정결과는 희생자 수 대비 얻어낸 성과로 평가 받는다. 희생이 적으면 ‘성공적’이었다고 일컬어진다. 0%의 사망률 같은 건 상상할 수도 없어서, 그저 어느 정도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고 여겨지는 게 현실이었다. 하지만 사실 카카시는, 아니 조사병단의 모든 병사들은 그 현실에 대한 짐을 지고 있었다. 사지가 찢기고 갈려 결국엔 토사물로 쏟아져 나오는 죽음. 무언가의 양식이 되거나 생태계와 자연섭리의 일부가 되는 것도 아닌, 영문도 모른 채 소비될 뿐인 죽음. 도대체 왜, 어떤 인간이 그런 죽음을 ‘어쩔 수 없이’ 맞아야 한단 말인가? 인류를 위해서? 실력이 모자라서? 단순히 운이 없어서?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명령을 내려도, 언제나 죽는 병사는 있었다. 있어서는 안 될 ‘어쩔 수 없는 죽음’을 맞는 병사들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 짐을 완전히 떨쳐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카카시는 매번 후회했다. 후회하지 않을 선택 따위는, 애당초 선택지에 준비되어 있지도 않았다.
카카시에게 있어 명령이란 그저, 어떤 후회를 할 것인가를 고르는 일이었다.
‘이 손으로 얼마나 더 많은 죄를 지어야 끝이 날까…….’
천천히 손가락을 오므려 쥔 주먹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이번엔 유독 무겁게 상실감이 드는 선택을 한 꼴이었다. 거인이 한 마리도 남김없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고 한들,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을까.
.
코를 후비적거리며 복도를 걷던 긴토키의 눈에 막 카카시의 방문이 열리는 것이 들어왔다. 반가운 마음에 반사적으로 코 후비던 손을 가열차게 흔들어대려던 찰나, 방에서 나온 이의 모습에 긴토키의 표정이 대번에 찌푸려졌다. 조금 전 점심시간이 끝났는데, 그새 여기로 와 있었나 싶었던 것이다.
“어이, 계집애 같은 양반.”
“…….”
카카시의 방에서 나온 남자는 긴토키 쪽은 돌아보지도 않은 채 반대쪽 복도로 걷기 시작했다.
“이봐, 거기 빛나는 똥색 머리 도련님?”
“…….”
“어이어이, 골초에 성질 더러워 보이는 아가씨, 그래 거기 당신 말이야, 사람 무시하지 말라고?”
“……….”
“야! 요리사!!”
그제야 금발머리를 한 남자가 긴토키를 돌아보았다. 빙글 돌아간 눈썹과 미간은 이미 험상궂게 구겨져 있었다.
“이 빌어먹을 썩은 동태자식아, 왜 바쁜 사람은 불러 세우는 거냐, 앙?!”
“나라고 담배 썩은 내 풍기는 꼬불이 눈썹하고 한시라도 같이 있고 싶은 줄 아냐? 아주 빙글-빙글- 최면에 걸릴 것 같다고?”
긴토키가 뚜벅뚜벅 가까이 다가가며 산지의 눈썹을 향해 삿대질을 했다. 검지손가락 끝을 동글동글 돌려대는 품새가 거인을 상대할 때보다 더한 살의를 불러 일으켰지만 산지는 한 번 더 인내심을 발휘했다.
“그래서 무슨 볼 일이냔 말이다.”
“네가 왜 카카시 방에서 나오냐? 안 그래도 심란한 놈 네 달팽이 눈썹 보고 어지러워 죽으라는 건가?”
“너처럼 하는 일도 없이 옆에서 알짱거리면서 사람 신경이나 긁고 다니는 줄 아냐? 점심때도 식당에 안 보여서 직접 주러 왔다.”
이번엔 필시 멱살이라도 잡힐 줄 알았던 긴토키의 예상과는 달리, 산지는 불쾌하다는 듯 이맛살을 잔뜩 찌푸리며 식판을 눈앞에 들이밀 뿐이었다. 좀 전에 자신을 향한 적의만을 불태우던 눈빛이 카카시 이야기를 꺼내면서 금세 근심이 서린 것을 긴토키도 눈치 채고 있었다. 식판엔 손도 대지 않은 듯 음식이 가득했다.
“그럼 어떻게든 떠먹이고 나왔어야지, 근성도 없이 그대로 들고 나온 거냐?”
“…이건 아침으로 만들었던 거야. 어차피 다 식었으니 점심하고 바꿔주고 나온 거다.”
“………점심은 먹든?”
“…아니, 카카시씨는 방에 없었어.”
“뭐? 방에 없어? 어딜 간 거야?”
긴토키의 물음에 산지는 짐짓 관심 없는 척 어깨를 으쓱였다. 일직선으로 부딪히는 긴토키의 시선을 옆으로 슬쩍 피하는 눈초리가 어딘지 의기소침했다. 필터를 짓씹다가 연기를 한번 뱉어낸 산지는 한풀 꺾인 목소리로 답했다.
“글쎄다. 난 네가 또 끌어내서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는 줄 알았지.”
“…….”
긴토키가 바로 이렇다 할 답을 하지 않고 대화에 공백이 생기자, 산지는 자리를 뜰 마음으로 뒤돌아섰다. 잠시 멍해져 있던 긴토키는 산지가 움직이자 퍼뜩 정신을 차리고 어깨를 붙잡아 돌려세웠다. 산지는 또 왜 그러냐는 듯 눈썹을 치켜 올렸다.
“어이, 너말야…. 유난떠는 요리사 치곤 포기가 너무 빠른 거 아니냐? 그것도 카카시한테?”
어느새 긴토키의 음성은 시비조로 보기엔 어려울 정도로 가라앉아 있었다. 그래서 산지도 목소리를 높이는 대신 어깨에 얹힌 긴토키의 손을 떼어내며 되물었다.
“무슨 말이야?”
“뭐 어쨌거나, 식사는 네 담당이니까. 며칠째 먹는 둥 마는 둥 하는데 빈 방에 그냥 두고만 나오는 건 너무 소극적인 거 아니냐고. 이번만큼은 네가 카카시 옆에 붙어 있는 꼴도 눈감아 줄 의향이 있는데 말이야, 너라면 찾아다가 억지로 입안에 쑤셔 넣을 정도는 되잖아? 완전히 그러고 싶다는 얼굴이거든? 아닌 척 숨겨도 소용없거든? 왜 답지 않게 본분을 게을리 하는 건데? 네가 그러고도 요리사냐.”
“…긴토키.”
“어.”
산지는 쏟아지는 질문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표정 또한 짜증이나 불쾌감마저 깨끗하게 가신 채로 진지할 뿐, 다른 감정은 느끼기 힘들었다.
“요리사의 본분이라는 건, 음식을 필요로 하는 사람한테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주면 그뿐인 거다. 먹고자 하는 의지까지 내가 어떻게 해줄 수는 없어.”
“………어이, 그래도―”
“하지만 이거 하난 분명해.”
“……?”
“카카시씨가 살아있는 인간인 한 배가 고플 거고, 배가 고픈 한 먹게 될 거다. 죽기로 작정한 게 아닌 이상…. 그러니까 내가 할 일은, 카카시씨가 필요로 할 땐 그게 언제든―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해두는 것뿐이다.”
“…….”
“…그럼 간다.”
이미 방향을 돌려 걷는 산지의 뒷모습을 향해, 긴토키의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날아가 박혔다.
“산지 너도, 그걸로 충분한 거냐?”
산지는 무슨 말이냐는 듯, 긴토키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걸음만 멈추었다.
“요리사로서 말고, 그냥 너.”
그제야 산지는 몸을 반쯤 돌려 뒤돌아보았다. 굳은 채로 날이 선 눈매가 긴토키를 잔뜩 경계하고 있었다.
“…………아니라면, 양보 할 거냐?”
“그럴 리가 없잖아? 내 불알이 흙으로 돌아가도 안 해.”
“……….”
“어이, 뭐야 그 경멸에 찬 눈빛은? 너도 달릴 거 달렸으면 이런 델리케이트한 비유정도는 이해하라고. 아니면 정말 없는 거냐? 구슬.”
산지는 긴토키의 말도 안 되는 도발에 빠직, 힘줄이 솟아오르는 걸 느꼈지만 작게 한숨을 쉬는 정도로 참아 넘겼다. 말을 물고 늘어져서는 끝이 없었다.
“어쨌든…! 네 놈이 제대로 못하면, 그땐 바로 그 옆에서 치워버릴 테니까.”
“흥, 꿈 깨시지, 꿈에서도 백년은 일러.”
이젠 더 볼 일 없으니 가라는 듯 손을 팔랑거린 긴토키가 먼저 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귀를 후비적거리며 복도에 난 창을 내다보는 옆모습은, 진지했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어느새 평소의 맹한 눈매로 돌아와 있었다. 제 멋대로 사람 붙들어 놓고 한참동안 속만 뒤집더니 또 제 멋대로 가버리는 것을 보며, 산지는 짙은 담배 연기만 피워냈다.
애당초 이런 일은 아무리 가까운 동료라 해도, 심지어 가족이라 해도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모두가 같은 아픔을 겪고 있고, 누구도 근본적인 해결방법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는 뭘 해도 완전한 위로는 되지 못하는 법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좀 다를지도 모르지.’
산지는 멀어지는 긴토키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매번 지독한 상실감을 겪는 카카시에게 자신은 식사를 핑계로 다가가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위로나 걱정이라는 말을 붙이기도 민망할 정도로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은 적었다. 긴토키의 말처럼 억지로 음식을 우겨넣어 주는 것조차, 강제로 끌어당겨 일으켜 세우는 것조차……. 마음처럼 멋대로 해도 되는 일은 아니다. 본인의 의지에 달린 일은, 고작 요리사라는 핑계마저 없으면 그 이상 다가설 수도 없는 자신으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런 핑계 따위 없이도, 언제나 곁을 지키며 마음대로 카카시를 들고 놓을 수 있는 이가 있으니까.
긴토키는 카카시를 따라 이곳에 왔다. 병단이라는 체계에는 관심도 없고 오직 카카시가 움직이는 동기가 되는 터라, 병장이란 직책도 실력 탓에 떠맡다시피 달았을 뿐. 본인은 탐탁지 않아 했다. 일각의 우려와는 달리 직무유기를 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의욕이 넘치거나 적극적인 것도 아니다. 끝끝내 병단체제에 완전히 녹아드는 일도 없었다. 상황이 허락하는 한, 긴토키의 판단과 행동기준은 언제나 카카시였다. 어디서 어떻게 만나 무슨 방법을 썼는지는 몰라도, 저렇게 들녘에 풀어놓은 늑대 같은 녀석을 한 가지밖에 모르는 순종적인 똥개로 만들었으니……. 산지는 짐작만 할 뿐이었다. 아마도, 카카시에게도 긴토키는 어떤 의미가 있지 않을까. 움직이게 만드는,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를 심어주는…… 이를테면, ‘삶의 이유’ 같은 것… 정도는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몇 끼 굶는 것쯤은 별로 문제도 되지 않는다. 먹고자 하는 의지. 그것은 곧 살고자 하는 의지다. 이유가 있다면, 이 현실의 해결방법 따위 모르더라도……. 사실은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었다.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몇 번이고 일어서는 삶을. 자신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신의 짐작대로 카카시에게 그것이 긴토키라면, 산지로서는 굉장히 억울하고 아니꼽고 재수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차라리 자신의 생각이 맞았으면 좋겠다고, 산지는 생각했다. 적어도 자신보다는 더 의미 있는 누군가가 옆에 있어준다면 그걸로 되었다고.
“………쳇, 건방진 썩은 동태자식….”
유유자적하게 멀어지는 긴토키의 뒷모습을 잠시 노려보던 산지는, 필터를 꾹 깨물어 누르며 반대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to be continued
“병장님! 뒤……!!”
카카시는 돌아볼 것도 없이 나무에 와이어를 박고 몸을 날렸다. 나무기둥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돌아 거인의 뒷목이 시야에 들어온 순간, 카카시의 움직임을 따라오던 거인의 손이 와이어가 박힌 나무를 박살냈다. 좀 전에 처리한 거인 세 마리의 시체에서 증기가 솟구쳐 다른 부상당한 병사들을 가려주고 있어, 거인은 카카시만을 표적으로 삼고 있는 듯 했다. 그것은 현재로선 가장 좋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카카시는 다행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거인의 손도, 입도, 피와 살찌꺼기로 지저분했기에.
‘이건 앞쪽의 그 세 마리중 하나… 어째서 여기까지……’
순간 밀려오는 불길한 예감에 카카시는 으득 소리가 날 정도로 이를 악 물었다. 날아가던 힘으로 옆 나무에 힘껏 발돋움을 함과 동시에 나무가 부서지자마자 빼냈던 와이어를 거인의 등에 박아 넣었다. 카카시는 쉬식 바람이 귀를 스치는 소리와 와이어가 감기는 느낌에 온 몸을 내맡기며 본능처럼 자세를 잡았다. 거인이 방향을 틀어 뒤로 돌려 했지만 카카시가 더 빨랐다. 순식간에 돌진한 양 칼날이 거인의 목에 깊숙이 박혔다.
“크읏…!”
이미 무뎌진 칼날이 심하게 덜덜거렸다. 단단한 살덩이를 베는 소름끼치는 감각이 칼을 타고 유난히 생생하게 전해졌다. 칼은 이게 마지막이었다. 밑에 있는 병사들에게 남은 것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시간이 지체되는 동안 추가 피해가 생길 것이 분명했다. 지금 잡은 기회를 놓칠 수 없다. 목을 도려내는 것은 찰나의 순간. 그 짧은 순간에도 카카시는 칼이 부러지지 않도록 섬세하게 힘을 조절하며 살덩이를 분리해냈다.
곧 쓰러진 거인에게서 연기가 피어났다.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을 돌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카카시는 대열에 문제가 없는지 한 눈에 살핀 후, 만약을 위해 부상병에게 남은 칼날을 받아들고 즉시 자리를 떴다. 거인이 더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나머지는 성공적으로 죽인 게 분명했다. 하지만 방금 그 거인은…. 말을 부를 정신도 없이 입체기동장치로 나무사이를 종횡해가는 카카시의 입술이 바싹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 정도 녀석들이 다 죽지는 않았을 거야…. 기행종이니 제멋대로 지나쳐 온……!’
카카시는 후방지원을 가기 전 부하 병사들에게 거인 셋을 맡겼던 자리를 발견하고 땅으로 착지했다.
“…….”
주변은 온통 시체 파편과 핏물로 너저분했다. 주인을 알아보기도 힘든 팔과 다리들이 조각난 채 굴러다녔다. 몸에 뒤집어 쓴 피에서 나는 거인의 비린내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살아있었던 소중한 동료들의 피 냄새와 뒤섞여 정신을 뒤흔들었다.
카카시는 비통함에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움직여지지 않는 다리로 그나마 몸통의 형체가 남아있는 병사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무릎을 굽히고 앉아 하반신이 통째로 사라진 반쪽짜리 몸을 안아들자, 아직도 마르지 못한 피가 옷자락에 붉게 번져왔다. 4분의 1은 날아가 버린 얼굴은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한 채였다.
“…아르넬…….”
카카시는 안에서 터지려는 감정을 필사적으로 눌러내고 있었다. 누군가 목을 조르는 것처럼 목울대가 아파왔다. 그때, 살아 있을 리 없는 아르넬의 턱이 경련하듯 움직였다.
“…카카……시…병…장님…….”
“아, 아르넬…!?”
“…왜……, 왜………”
남은 힘으로 처절하리만치 말을 하려는 아르넬을 카카시는 안타까운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 입술을 꾹 깨문 카카시의 표정에는 괴로움이 가득했지만, 눈빛만큼은 먼 풍경을 바라보듯 아득했다.
“…왜 그런…… 명령을… 내리셨습니까……?”
“………뭐…?”
“…그게… 아니었다면……, 우린… 죽지 않았을 텐데.”
“…그건……”
“어…어째서……”
어째서 그런 명령을 내리신 겁니까?
순식간에 힘을 되찾은 목소리가 또렷하게 머릿속을 울렸다.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다른 시체들도 형체를 되찾고 동시에 카카시를 향해 말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돋아난 아르넬의 팔이 카카시의 몸을 붙들었다. 그 팔은 거인의 팔이었다. 크기를 보고 놀란 카카시가 다시 아르넬에게 고개를 돌렸을 때, 그곳엔 흉측한 거인의 얼굴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날카롭고 탐욕스러운 이빨에서 칼을 가는 듯한 소름끼치는 소리가 울려댔다. 튀어나와 희번덕대는 눈알이 원망의 눈초리로 카카시를 노려보았다. 거인의 팔이 움직이고 쩌억 벌어진 입 안의 암흑이 점점 팽창해나갔다. 이대로는 먹힌다. 카카시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몸이 조금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온 몸을 조여오고 있었다.
살았을지도 모르는데.
돌아갈 수 있었는데.
가족들을 만나기로 했는데.
이젠 돌아갈 팔도 다리도, 머리도 없어.
도대체 왜,
이 자리를 떠나셨습니까?
………
…그건……….
…………
………미안…하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카카시는 속으로만 되뇌었다. 이런 비극에 갖다 댈 이유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왜 죽게 만들었냐는 물음에 고작 미안하다는 말 따위 밖에 떠올릴 수 없는 자신이 한심할 뿐이었다. 거인의 손아귀에서 힘없이 고개를 떨군 카카시는 모든 것을 체념한 표정으로 두 눈을 감았다. 악력이 더욱 거세어지고 숨이 막혀왔다. 머리 위로 시커먼 그림자가 드리우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순간,
“카카시!!”
목이 터져라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카카시는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렸다. 이미 장막이 내려오듯 다물어지고 있는 거인의 이빨들 사이로 뿌옇게 익숙한 인영이 보였다. 그리고 그 인영의 주인을 떠올린 찰나. 허파 속으로 한꺼번에 공기가 들어차면서 꽉 막혔던 숨통이 트였다.
.
―허억…!!
심장이 멎는 듯한 느낌과 동시에 카카시는 눈을 떴다. 숨을 몰아쉬며 멍한 정신과 놀란 눈으로 천장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다가, 비로소 꿈이었음을 깨달았다. 커다랗게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어낸다. 기운 없는 손이 이마에 맺혀 있던 땀으로 젖어들었다.
‘또 같은 꿈…….’
카카시는 몸을 일으켜 침대에 기대어 앉았다. 오후 1시가 좀 넘은 시각. 밤을 지나 오전까지 꼬박 새고 겨우 눈을 감았었는데. 한 시간도 안 되어 깨어난 것이었다. 침대 옆 탁자에는 오전에 산지가 주고 간 아침식사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벌써 몇 끼째 그냥 물렸는데……. 챙겨주는 것은 항상 고마워하고 있지만, 미안하게도 여전히 배가 고프지도, 먹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않았다. 카카시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가락으로 이불자락을 하릴 없이 매만졌다. 그 의미 없는 손길과 함께 머릿속이 다시 복잡해졌다.
이곳 카라네스 구로 돌아온 지 벌써 나흘째였다. 약 한달 간의 꽤 긴 여정으로 저장 플랜트에 보급물자를 비축하고 돌아온 것이었다. 새로 짠 진형의 효율성 덕에 피해는 평소의 출정보다는 크지 않았었다. 문제는 돌아오는 길, 카라네스 구와 가장 가까운 숲 속에서 일어났다. 일렬로 숲길에 들어선 진형은 부상자들을 실은 마차를 정 중앙에 위치시켜 보호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었다. 그 앞뒤로 여러 반으로 나뉘어 위치한 병단이 몇 겹으로 거인들을 막을 쿠션을 형성한 상태였다. 카카시까지 포함하여 5명으로 구성된 카카시 반은 마차의 바로 앞에 위치했다. 앞쪽의 마지막 방어선인 셈이었다.
길을 반 정도 통과했을 때 기행종을 알리는 신호가 솟아오르고, 곧 한꺼번에 여섯 마리의 기행종이 들이닥쳤다. 중앙까지 이 정도 숫자면 앞쪽도 피해가 크다는 의미였다. 카카시는 단 하나도 뒤로 보내지 말라는 명령과 함께 말 위에서 뛰어 올랐다. 기행종은 가까이 다가가는 것으로는 주의를 끄는 게 불가능하기에 병사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거인들에게 상처를 내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상황이 일어났다. 세 마리가 카카시 반을 그대로 통과해 간 것이었다. 비교적 덩치가 작은 두 마리는 엄청나게 민첩한 움직임으로 병사 두 명의 칼날을 피해 달아났고, 다른 한 마리는 카카시가 눈알을 베어버렸음에도 반응하지 않고 뒤뚱거리며 카카시를 지나쳐갔다. 뒤쪽은 동행하는 병사들이 있긴 해도 부상병들을 싣고 있는 마차들이 있어 움직임이 빠르지도 자유롭지도 못했다. 게다가 지나친 거인들의 행동이나 속도가 예사롭지 않아 상대하기 버거울 것이 분명했다. 이대로는 기껏 살려온 동료들을 허무하게 다 잃게 될 것이었다.
―저쪽은 내가 쫓는다, 너희들은 그 셋을 맡아!
아직도 선명하게 뇌리에 남아있다. 큰 소리로 결의에 찬 대답을 하던, 네 명의 목소리가.
조각만 남은 시신들을 수습해 숲을 통과한 뒤로는 큰 전투가 없었다. 한나절을 꼬박 달려 도시에 도착했고 그 후로 나흘. 카카시는 제대로 잠에 든 적이 없었다. 밤 늦게까지 회의를 하고 몸을 누이면 뜬 눈으로 아침을 맞고, 그나마도 선잠에 들면 그 날 일을 꿈으로 꾸고 가위에 눌렸다. 결말도 매번 같았다.
반드시 이길 것이라든가, 당연히 살아남을 것이라는 기대만큼 어리석은 건 없었다. 아무리 숙련된 병사라 해도, 언제든 붙잡혀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것이 벽 바깥의 세계였다. 그래도……. 그래도 그 네 명은 다르다는 생각을 스스로도 은연중에 하고 있었음을 그 날 일로 깨달았다. 카카시가 이끄는 병단에서 최정예로 꼽히는 이들이었다. 워낙 사망률이 높아서 구성원이 쉴 새 없이 바뀌는 게 조사병단이지만 그 네 명은 최소 2년 이상 카카시와 함께 하던 이들이었고, 수도 없이 생사의 고비를 넘어온 소중한 동료들이었다. 특히 아르넬은 실력이 좋고 경험도 많아 이번에 돌아오면 진급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 소식에 가족들도 카라네스 구까지 찾아와 있었다. 그런데 도시를 지척에 둔 숲에서 변을 당한 것이다. 카카시는 돌아온 행렬에 아들이 없음을 깨닫고 자신을 붙들고 무너지는 아르넬의 어머니를 그저 무력하게 바라봐야 했다.
카카시는 하얗게 질린 제 두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꿈속에서 아르넬이 하던 말이 떠올랐다. 물론 실제로 그들이 자신에게 그런 원망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카카시가 매번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이었다. 마음 속 깊이 묻어둔 죄책감 같은 것이었다. 순간순간 최선이라고 믿는 판단을 하고 주저 없이 명령을 내린다. 그게 자신이 맡은 역할이었다. 결과는 자신도 모른다. 만약 마차 뒤쪽 반의 원조를 믿고, 남아서 셋을 먼저 처리한 뒤 함께 쫓아갔다면 피해는 더 적었을까. 아니 애당초 남았다고 해도 모두 살았을 것이란 보장이 있는 건가. 가지 않은 길을 두고 고민해봐야 아무런 답도 낼 수 없다.
그렇기에 자신이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면 된다고 리바이는 말하곤 했다. 옳은 말이고 현명한 사고방식이었다. 그러나 카카시는 항상 후회하고 있었다. 언제나 희생자는 있다. 때문에 조사병단의 출정결과는 희생자 수 대비 얻어낸 성과로 평가 받는다. 희생이 적으면 ‘성공적’이었다고 일컬어진다. 0%의 사망률 같은 건 상상할 수도 없어서, 그저 어느 정도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고 여겨지는 게 현실이었다. 하지만 사실 카카시는, 아니 조사병단의 모든 병사들은 그 현실에 대한 짐을 지고 있었다. 사지가 찢기고 갈려 결국엔 토사물로 쏟아져 나오는 죽음. 무언가의 양식이 되거나 생태계와 자연섭리의 일부가 되는 것도 아닌, 영문도 모른 채 소비될 뿐인 죽음. 도대체 왜, 어떤 인간이 그런 죽음을 ‘어쩔 수 없이’ 맞아야 한단 말인가? 인류를 위해서? 실력이 모자라서? 단순히 운이 없어서?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명령을 내려도, 언제나 죽는 병사는 있었다. 있어서는 안 될 ‘어쩔 수 없는 죽음’을 맞는 병사들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 짐을 완전히 떨쳐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카카시는 매번 후회했다. 후회하지 않을 선택 따위는, 애당초 선택지에 준비되어 있지도 않았다.
카카시에게 있어 명령이란 그저, 어떤 후회를 할 것인가를 고르는 일이었다.
‘이 손으로 얼마나 더 많은 죄를 지어야 끝이 날까…….’
천천히 손가락을 오므려 쥔 주먹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이번엔 유독 무겁게 상실감이 드는 선택을 한 꼴이었다. 거인이 한 마리도 남김없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고 한들,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을까.
.
코를 후비적거리며 복도를 걷던 긴토키의 눈에 막 카카시의 방문이 열리는 것이 들어왔다. 반가운 마음에 반사적으로 코 후비던 손을 가열차게 흔들어대려던 찰나, 방에서 나온 이의 모습에 긴토키의 표정이 대번에 찌푸려졌다. 조금 전 점심시간이 끝났는데, 그새 여기로 와 있었나 싶었던 것이다.
“어이, 계집애 같은 양반.”
“…….”
카카시의 방에서 나온 남자는 긴토키 쪽은 돌아보지도 않은 채 반대쪽 복도로 걷기 시작했다.
“이봐, 거기 빛나는 똥색 머리 도련님?”
“…….”
“어이어이, 골초에 성질 더러워 보이는 아가씨, 그래 거기 당신 말이야, 사람 무시하지 말라고?”
“……….”
“야! 요리사!!”
그제야 금발머리를 한 남자가 긴토키를 돌아보았다. 빙글 돌아간 눈썹과 미간은 이미 험상궂게 구겨져 있었다.
“이 빌어먹을 썩은 동태자식아, 왜 바쁜 사람은 불러 세우는 거냐, 앙?!”
“나라고 담배 썩은 내 풍기는 꼬불이 눈썹하고 한시라도 같이 있고 싶은 줄 아냐? 아주 빙글-빙글- 최면에 걸릴 것 같다고?”
긴토키가 뚜벅뚜벅 가까이 다가가며 산지의 눈썹을 향해 삿대질을 했다. 검지손가락 끝을 동글동글 돌려대는 품새가 거인을 상대할 때보다 더한 살의를 불러 일으켰지만 산지는 한 번 더 인내심을 발휘했다.
“그래서 무슨 볼 일이냔 말이다.”
“네가 왜 카카시 방에서 나오냐? 안 그래도 심란한 놈 네 달팽이 눈썹 보고 어지러워 죽으라는 건가?”
“너처럼 하는 일도 없이 옆에서 알짱거리면서 사람 신경이나 긁고 다니는 줄 아냐? 점심때도 식당에 안 보여서 직접 주러 왔다.”
이번엔 필시 멱살이라도 잡힐 줄 알았던 긴토키의 예상과는 달리, 산지는 불쾌하다는 듯 이맛살을 잔뜩 찌푸리며 식판을 눈앞에 들이밀 뿐이었다. 좀 전에 자신을 향한 적의만을 불태우던 눈빛이 카카시 이야기를 꺼내면서 금세 근심이 서린 것을 긴토키도 눈치 채고 있었다. 식판엔 손도 대지 않은 듯 음식이 가득했다.
“그럼 어떻게든 떠먹이고 나왔어야지, 근성도 없이 그대로 들고 나온 거냐?”
“…이건 아침으로 만들었던 거야. 어차피 다 식었으니 점심하고 바꿔주고 나온 거다.”
“………점심은 먹든?”
“…아니, 카카시씨는 방에 없었어.”
“뭐? 방에 없어? 어딜 간 거야?”
긴토키의 물음에 산지는 짐짓 관심 없는 척 어깨를 으쓱였다. 일직선으로 부딪히는 긴토키의 시선을 옆으로 슬쩍 피하는 눈초리가 어딘지 의기소침했다. 필터를 짓씹다가 연기를 한번 뱉어낸 산지는 한풀 꺾인 목소리로 답했다.
“글쎄다. 난 네가 또 끌어내서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는 줄 알았지.”
“…….”
긴토키가 바로 이렇다 할 답을 하지 않고 대화에 공백이 생기자, 산지는 자리를 뜰 마음으로 뒤돌아섰다. 잠시 멍해져 있던 긴토키는 산지가 움직이자 퍼뜩 정신을 차리고 어깨를 붙잡아 돌려세웠다. 산지는 또 왜 그러냐는 듯 눈썹을 치켜 올렸다.
“어이, 너말야…. 유난떠는 요리사 치곤 포기가 너무 빠른 거 아니냐? 그것도 카카시한테?”
어느새 긴토키의 음성은 시비조로 보기엔 어려울 정도로 가라앉아 있었다. 그래서 산지도 목소리를 높이는 대신 어깨에 얹힌 긴토키의 손을 떼어내며 되물었다.
“무슨 말이야?”
“뭐 어쨌거나, 식사는 네 담당이니까. 며칠째 먹는 둥 마는 둥 하는데 빈 방에 그냥 두고만 나오는 건 너무 소극적인 거 아니냐고. 이번만큼은 네가 카카시 옆에 붙어 있는 꼴도 눈감아 줄 의향이 있는데 말이야, 너라면 찾아다가 억지로 입안에 쑤셔 넣을 정도는 되잖아? 완전히 그러고 싶다는 얼굴이거든? 아닌 척 숨겨도 소용없거든? 왜 답지 않게 본분을 게을리 하는 건데? 네가 그러고도 요리사냐.”
“…긴토키.”
“어.”
산지는 쏟아지는 질문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표정 또한 짜증이나 불쾌감마저 깨끗하게 가신 채로 진지할 뿐, 다른 감정은 느끼기 힘들었다.
“요리사의 본분이라는 건, 음식을 필요로 하는 사람한테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주면 그뿐인 거다. 먹고자 하는 의지까지 내가 어떻게 해줄 수는 없어.”
“………어이, 그래도―”
“하지만 이거 하난 분명해.”
“……?”
“카카시씨가 살아있는 인간인 한 배가 고플 거고, 배가 고픈 한 먹게 될 거다. 죽기로 작정한 게 아닌 이상…. 그러니까 내가 할 일은, 카카시씨가 필요로 할 땐 그게 언제든―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해두는 것뿐이다.”
“…….”
“…그럼 간다.”
이미 방향을 돌려 걷는 산지의 뒷모습을 향해, 긴토키의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날아가 박혔다.
“산지 너도, 그걸로 충분한 거냐?”
산지는 무슨 말이냐는 듯, 긴토키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걸음만 멈추었다.
“요리사로서 말고, 그냥 너.”
그제야 산지는 몸을 반쯤 돌려 뒤돌아보았다. 굳은 채로 날이 선 눈매가 긴토키를 잔뜩 경계하고 있었다.
“…………아니라면, 양보 할 거냐?”
“그럴 리가 없잖아? 내 불알이 흙으로 돌아가도 안 해.”
“……….”
“어이, 뭐야 그 경멸에 찬 눈빛은? 너도 달릴 거 달렸으면 이런 델리케이트한 비유정도는 이해하라고. 아니면 정말 없는 거냐? 구슬.”
산지는 긴토키의 말도 안 되는 도발에 빠직, 힘줄이 솟아오르는 걸 느꼈지만 작게 한숨을 쉬는 정도로 참아 넘겼다. 말을 물고 늘어져서는 끝이 없었다.
“어쨌든…! 네 놈이 제대로 못하면, 그땐 바로 그 옆에서 치워버릴 테니까.”
“흥, 꿈 깨시지, 꿈에서도 백년은 일러.”
이젠 더 볼 일 없으니 가라는 듯 손을 팔랑거린 긴토키가 먼저 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귀를 후비적거리며 복도에 난 창을 내다보는 옆모습은, 진지했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어느새 평소의 맹한 눈매로 돌아와 있었다. 제 멋대로 사람 붙들어 놓고 한참동안 속만 뒤집더니 또 제 멋대로 가버리는 것을 보며, 산지는 짙은 담배 연기만 피워냈다.
애당초 이런 일은 아무리 가까운 동료라 해도, 심지어 가족이라 해도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모두가 같은 아픔을 겪고 있고, 누구도 근본적인 해결방법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는 뭘 해도 완전한 위로는 되지 못하는 법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좀 다를지도 모르지.’
산지는 멀어지는 긴토키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매번 지독한 상실감을 겪는 카카시에게 자신은 식사를 핑계로 다가가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위로나 걱정이라는 말을 붙이기도 민망할 정도로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은 적었다. 긴토키의 말처럼 억지로 음식을 우겨넣어 주는 것조차, 강제로 끌어당겨 일으켜 세우는 것조차……. 마음처럼 멋대로 해도 되는 일은 아니다. 본인의 의지에 달린 일은, 고작 요리사라는 핑계마저 없으면 그 이상 다가설 수도 없는 자신으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런 핑계 따위 없이도, 언제나 곁을 지키며 마음대로 카카시를 들고 놓을 수 있는 이가 있으니까.
긴토키는 카카시를 따라 이곳에 왔다. 병단이라는 체계에는 관심도 없고 오직 카카시가 움직이는 동기가 되는 터라, 병장이란 직책도 실력 탓에 떠맡다시피 달았을 뿐. 본인은 탐탁지 않아 했다. 일각의 우려와는 달리 직무유기를 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의욕이 넘치거나 적극적인 것도 아니다. 끝끝내 병단체제에 완전히 녹아드는 일도 없었다. 상황이 허락하는 한, 긴토키의 판단과 행동기준은 언제나 카카시였다. 어디서 어떻게 만나 무슨 방법을 썼는지는 몰라도, 저렇게 들녘에 풀어놓은 늑대 같은 녀석을 한 가지밖에 모르는 순종적인 똥개로 만들었으니……. 산지는 짐작만 할 뿐이었다. 아마도, 카카시에게도 긴토키는 어떤 의미가 있지 않을까. 움직이게 만드는,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를 심어주는…… 이를테면, ‘삶의 이유’ 같은 것… 정도는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몇 끼 굶는 것쯤은 별로 문제도 되지 않는다. 먹고자 하는 의지. 그것은 곧 살고자 하는 의지다. 이유가 있다면, 이 현실의 해결방법 따위 모르더라도……. 사실은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었다.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몇 번이고 일어서는 삶을. 자신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신의 짐작대로 카카시에게 그것이 긴토키라면, 산지로서는 굉장히 억울하고 아니꼽고 재수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차라리 자신의 생각이 맞았으면 좋겠다고, 산지는 생각했다. 적어도 자신보다는 더 의미 있는 누군가가 옆에 있어준다면 그걸로 되었다고.
“………쳇, 건방진 썩은 동태자식….”
유유자적하게 멀어지는 긴토키의 뒷모습을 잠시 노려보던 산지는, 필터를 꾹 깨물어 누르며 반대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to be continued
후기
1. 리바이와 카카시는 어렸을 적부터 친구였고. 긴토키는 카카시가 훈련병이 되기 전 어디선가(?) 만났다는 설정. 은혼과 마찬가지로 긴토키는 어디선가 상처받고 버려진 개새끼 같았고.. 어쩌다 카카시가 주워온 격. 즉 은혼에서의 오토세와 비슷.. 뭐, 물론 카카시 경우엔 서로 끈적한 관계가 됐다는 게 다른..... ㅡㅅㅡ;;
2. 카카시, 긴토키, 리바이는 병장. 산지는 그냥 병사고 카카시 병단에 소속, 요리사를 겸하고 있음(이것 때문에 높은 직책까진 못 맡은 경우.) ............그리고 짝사랑 중이네여. 짝사랑하는 산지는 왜 이렇게 이쁘고 멋있는 거죠. 흙.
3. 나머지도 후딱후딱 올리도록 할게요.. 쓰긴 다 썼으나........ 정리가 필요하네여.. 사실 그 정리란 게 손에 안 잡혀서 먼저 올린다고 한다. Aㅏ.. 이노무 조급증..
4. 긴토키가 언급하는 산지 별명은 삼백원님께 도움 받았습니다.... 감사해요.. '-'/
5.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3. 7. 17. 23: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