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1. 만화 <진격의 거인> 세계관
2. 긴토키(은혼) X 카카시 ← 산지(원피스), and 리바이(진격의 거인, 걍 친구ㅋㅋ)
3. 중2 & 허세 주의
4. 어두움 주의
3,4 편은 보호글로 올라올 예정.
여기까지가 전에 올렸던 부분이네요. 원래 다른 데서 끊을 생각이었지만.. 쓰다보니 그냥 이게 나아서 원래대로 올려요. 잘하면 나머지는 한꺼번에 바로 올릴 수 있겠네요.. 생각보다 정리가 잘 되고 있다... 웬일이래.. <<..
덥고 습기차서 가만히만 있어도 짜증이 솟네요..ㅜ
소설
너에게는 위로도 되지 못할
written by pathos
의욕 없어 보이면서도 묘하게 힘이 들어간 걸음걸이가 터벅터벅, 계단을 올랐다. 아직 한낮이긴 하지만 카카시가 회의나 훈련 스케줄도 없는데 방을 비우고 갈 만한 장소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옥상이었다. 보통은 해질녘에 올라가 석양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이 카카시의 습관이었다. 자신들이 태어나기도 전 언젠가― 인류는 드넓게 펼쳐진 대지를 잃었다. 그리고 지평선 너머로 뜨고 지는 태양을 잃었다. 그런 광경이 있었다는 사실만 기억할 뿐. 삭막한 벽 끝에 걸린 답답한 태양이 뭐가 그리 볼만한 건지, 긴토키는 이해할 수 없었다.
카카시를 가장 대하기 어려운 때가 바로 지금과 같은 때였다. 섣불리 다가서기가 힘들었다. 구차한 이유를 대자면 이런 것이었다. 주변에서 알짱대며 실없는 장난이나 치는 게 거의 전부인 자신으로서는, 이런 때엔 말 한 번 거는 것조차 망설이게 되는 것이다. 자칫 더 아프게 할까봐, 그냥 혼자 두는 게 오히려 더 나을까봐… 혹은 뭐가 더 좋을지 고민만 하다가 결국 방치하는 꼴이 되기 십상이었다. 그러다 급기야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멍청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차라리 산지처럼 식사 핑계라도 대며 다가설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하는.
정확히는 산지라도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산지의 말을 들으며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은, 그 따위 의미나 격 따위, 똥구멍에나 처박아 버리라는 것이었다. 안 먹으면 억지로라도 먹이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게 ‘요리사’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역할이라면, 양보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리고 그런 일이라면 요리사라는 핑계거리는 처음부터 필요하지도 않았다. 애당초 자신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봐 멀찍이서 가만히 있었다는 게 변명일 뿐이었다. 아무리 상대가 카카시라 하더라도, 복잡하게 이것저것 재는 짓은 성미에 맞지 않는다. 남한테 무언가를 맡겨 둔다는 것도 죽어도 하기 싫은 짓 중 하나였다. 결국 할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는데도 미루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왜……?
계단을 올라가던 긴토키의 눈에 옥상으로 통하는 출입문이 보였다. 문을 열지 않아도 그 뒤편의 모습이 눈에 보이듯 떠올랐다. 그리고 불현듯 치솟는 감정에, 그 이유를 새삼 깨닫는다. 이런 때의 카카시는 어딘지 신경에 거슬리고 화가 나서였다. 위로를 해주기는커녕 화를 내게 될 것 같아서였다.
긴토키는 옥상 문을 밀어 젖혔다. 병단 건물 한쪽에 탑처럼 치솟아 있는 이곳은 마을에서도 가장 높은 축에 속했다. 덕분에 사위의 벽에 있는 주둔병단과 교신하고 상황을 총괄하는 사령탑 역할을 하는지라 언제나 보초를 서는 병사들이 있었고, 그 외에도 들락거리는 사람이 많은 편이었다. 긴토키는 재빨리 옥상을 훑었다. 곧 한쪽 구석에 마련된 탁자에 턱을 괴고 앉아있는 카카시가 눈에 들어왔다.
카카시는 손에 서류를 쥔 채 해가 지는 방향의 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해질녘도 아닌데 꼭 석양을 볼 때와 같은 모습이다. 금방이라도 모든 걸 다 놔버리고 바스라질 것처럼 아득해서, 혼자만 다른 세계에 있는 것처럼 희미하고 멀어서, 긴토키는 이 모습을 좋아하지 않았다. 죽은 것도 아닌데 어째서 유령보다 더 유령 같을까.
“여어, 카카시. 여기서 뭐해?”
“아……. 긴토키.”
카카시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인사를 받았다. 평소라면 살풋 미소라도 지었을 상황인데, 어설프게 늘어진 눈꼬리는 결국 완전한 웃음이 되지는 못했다. 역시나 예상에서 한 치도 빗나가지 않는 모습에 긴토키는 불쾌한 감정이 배가되었다. 성큼성큼 곁으로 다가가 뚱한 표정으로 카카시를 내려다보았다. 한눈에 봐도 창백한 얼굴이었다. 벽 밖으로 나가면 섭생이 좋지 않아 몸이 마르는 게 보통이다. 무사히 돌아와서 시일이 어느 정도 지나고 나서야, 다들 살이 붙고 혈색도 훨씬 건강해지고는 했다. 그러나 카카시한테는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카카시는 돌아와서도 더 마르고 수척해지기 일쑤였다. 긴토키는 속에서 무언가 울컥 솟아올랐다.
“가서 식사나 하지 그러냐. 꼬불이가 방에 가져다 놓던데?”
“…나중에 먹을게. 지금은 별로 생각이 없어.”
긴토키는 시무룩하게 내리까는 카카시의 시선을 따라갔다. 그 끝엔 카카시가 손에 들고 있던 서류가 있었다. 사라 K. 데빈, 질 프란츠, 아르넬 G. 레이먼드……. 길게 이어지는 인명록은 이번 출정 때 발생한 전체 사망자 명단이었다. 순간 인상을 확 찌푸린 긴토키가 카카시의 팔을 덥썩 잡았다.
“그냥 하는 말 아니라고. 이딴 건 이제 쓰레기통에 처박든지 하고 밥이나 먹으라니까.”
긴토키가 진심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은, 붙잡힌 팔에 느껴지는 거센 악력 때문에라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언사가 불쾌한 것도 사실이라 카카시는 미간을 좁히며 긴토키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가만히 긴토키의 팔을 잡아 떼어내었다. 쓸데없이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는 않았다.
“……알았어. 우선 훈련장에 좀 갔다가. 그럼 됐지?”
긴토키는 황당함에 잠시 머릿속이 텅 비어 버렸다. 결국 나중에 먹겠다는 걸 말만 바꿔 반복하고 있으면서, 선심 쓰듯 이야기 하는 게 너무 어이가 없어서였다. 게다가 오늘 훈련을 맡은 것은 리바이였다. 카카시가 굳이 훈련장에 찾아갈 이유는 없다. 그저 자리를 피하고 싶을 뿐인 마음을 역력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었다. 주변 사람 걱정만 잔뜩 시키는 주제에, 어쩌다 한 번 부리는 고집은 보통 지독한 게 아니다. 그게 저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고집이면 못 이기는 척 들어주기라도 하지.
화가 나서 더 따지려는데 카카시가 서류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일어난 순간, 현기증이 인 듯 잠시 비틀거렸다. 긴토키는 얼른 카카시를 붙잡았다. 인내심은 이미 한계에 다다라 있었다.
“너 지금 진짜 한심하다, 카카시.”
“……이제 괜찮으니까 놔줘.”
카카시는 긴토키의 말은 못들은 척, 자신을 붙잡은 손을 떨쳐내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긴토키의 악력은 더욱 세지기만 할 뿐이었다.
“반찬 투정하는 애처럼 굴 거면 안 먹어도 보란 듯이 팔팔하기라도 하든가. 주변에서 걱정하는 거 안 보여? 아니면 걱정하다 못해 어이구 힘들었지, 엉덩이라도 팡팡거리며 입 안에 떠 먹여 주길 바라고 있었던 건가?”
“무슨 말이 그래?”
“그럼 뭔데? 뭘 하고 있는 거냐고!”
갑자기 다툼처럼 변하는 말소리에, 보초를 서던 다른 병사들의 이목까지 두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긴토키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놀란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을 보던 카카시가, 곧 짧은 한숨과 함께 원래의 표정을 되찾는 것만 뚫어져라 볼 뿐이었다. 기운이란 건 죄다 빠져버린 표정. 기저에 죄의식을 원죄처럼 깔고 있는 표정. 의욕 없는 걸로는 세상 둘째가라면 서러운 자신이어도 이런 카카시에게는 이길 수가 없었다. 그리고 깨닫는다. 이런 때의 카카시가 싫은 것은, 바로 이 표정 때문이었다.
긴토키는 서류를 구기듯 빼앗아 든 뒤, 카카시의 팔을 거칠게 끌어 당겼다.
“따라와.”
“…긴토키……!”
병사들은 긴토키가 이렇게 화를 내는 것도 처음 보는데다 그 대상이 카카시라, 섣불리 말리지도 못하고 걱정 어린 시선만 보내고 있었다. 순식간에 끌려가는 통에 카카시는 빠져 나가지도 못하고 뛰다시피 긴토키를 뒤따랐다. 쾅 소리가 나도록 문을 열어젖힌 긴토키가 계단을 내려가면서 조금 속도가 줄어들자 카카시는 빠져 나가려 팔을 비틀었다.
“일단 이건 좀 놓고……!”
긴토키는 어림도 없다는 듯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카카시가 이런 얼굴을 하고 있을 때마다 불안하고 짜증이 치밀어서 미칠 것만 같았다. 따지고 보면 평소라고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카카시의 다른 표정들은 이 표정을 지운 게 아니라 감춘 것일 뿐이었다. 세상 모든 걸 적으로 두고 으르렁대는 짐승한테도 손을 내밀었던 녀석이, 살기도 싫은 듯 구는 게 진심일 리도 없으면서. 왜 아무렇지 않은 척 웃는 것도 제대로 못하는지. 왜 바보처럼 혼자 다 짊어지고 살려는지.
“구슬 달린 계집애나 하는 요리 따위 내 전문도 아니고. 먹기 싫다는 놈 억지로 퍼먹이진 않을 테니까 걱정 마. 굶어 죽고 싶으면 그렇게 하든지.”
“그럼 이렇게 끌고 갈 이유도 없잖아?”
“대신에,”
먹지 않으면 죽는다. 그런데 긴토키는 이 순간만큼은 죽는다는 사실조차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어차피 이렇게 살면 언젠가는 거인한테 먹혀 죽거나, 다쳐 죽거나, 운 좋으면 늙어 죽는다. 물론 카카시한테나 자신이나 늙어 죽는 것 외에 다른 죽음을 맞게 할 생각은 코딱지만큼도 없지만.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사는 것도 정말 중요한 목표 중 하나지만. 그냥 오래 살기만 해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긴토키는 꼭 보고 싶은 게 있었다. 그게 카카시를 따라 조사병단에 들어온 이유였다.
“다른 쪽은 제대로 먹을 각오하라고.”
“그게 무슨……”
“벌써 잊어 버렸으면 곤란한데? 안 달린 놈들 상대하느라 오랫동안 안 썼다고 장식으로 달고 있는 건 아니거든? 이래봬도 그쪽은 나름 전문이라고.”
보고 싶은 것을 당장은 뭘 어떻게 해도 볼 수 없겠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가능할지도 몰랐다. ……단 한 순간일지라도.
.
리바이는 그 뒤를 따르는 몇 명의 병사들과 복도를 걷고 있었다. 복도 전체가 묘하게 술렁이는 것 같아 들여다보고 있던 몇 장의 서류에서 눈을 떼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이 지나가면 병사들이 멈춰서 길을 비켜주거나 인사를 하는 게 보통인데, 다들 어디에 정신이 팔려 있는 듯한 분위기였다. 리바이는 오른쪽으로 꺾인 복도의 모퉁이에서 막 튀어나온 병사가 자신이 온 쪽을 자꾸 돌아보는 것을 발견하고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이지?”
“아… 리바이 병장님, 그게…….”
“그게 뭐, 빨리 말해.”
그때 질문에 답이라도 하듯, 병사가 지나온 복도에서 잔뜩 인상을 쓰고 있는 긴토키가 나타났다. 그리고 카카시가 당황한 얼굴로 긴토키에게 붙잡힌 채 끌려가고 있었다. 두 사람은 리바이의 눈앞을 가로질러 그대로 十자형 복도의 왼쪽으로 사라졌다.
“저 짐승 새끼가…….”
리바이가 그늘진 눈으로 중얼거렸다. 함께 걷던 병사들이 병장님…? 하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리바이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보고 있던 서류를 뒷사람에게 넘기며 말했다.
“훈련장 가서 거기 적힌 진형대로 대열정리 시키고 있어. 곧 따라갈 테니까.”
리바이는 주저 없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왼쪽 복도엔 자신과 카카시의 방, 그리고 잘 쓰지 않는 창고 두어 개만 있을 뿐이라 카카시가 끌려 간 곳은 뻔했다.
무신경하고 더럽고 저질스럽고 시끄러워서 리바이는 긴토키를 좋아하지 않았다. 긴토키는 흡사 제 몸을 지키려고 누구한테나 이빨을 드러내는 들개 같았다. 감당하는 쪽에선 불안한 폭탄을 안고 있는 형국이었지만 그럼에도 안심할 수 있는 건 카카시가 있기 때문이었다. 카카시만큼은 잘 따르니까.
둘의 관계가 카카시와 자신처럼 단순히 오래된 친구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대놓고 연애질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둘 다 병장이고 각자의 병사들이 있는지라, 사실 작전도 병단 내에서의 생활도 서로 떨어져 있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붙어 있더라도 겉으론 그냥 좀 친한 동료로 보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조사병단에서 지내다 보면 누구든지, 자연히 카카시와 긴토키는 묶어서 생각하게 되는 분위기 같은 것이 있었다. 매번 무리하다가 도움 받는 건 카카시 쪽이었고, 긴토키는 위험으로부터 주인을 지키는 파수견 같았다. 그러나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더 기대고 의지하고 있는 건 오히려 긴토키 같아 보이기도 했다.
물론 리바이 자신에게 긴토키는 언젠가 없어져야 할 해충일 뿐이었다. 하지만 자신이야 어찌 되었건, 카카시한테 해가 되는 것만 아니라면 깊게 관여할 이유는 없었기에 그 둘에 대해선 방관하고 있는 편이었다. 아니, 지금 같은 때에는 오히려…… 자신조차 기다려주는 것밖에 해줄 수 없는 힘든 때에는, 긴토키의 특별함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게 되었다.
그런데 기껏 눈앞에 보이는 게 방금 그 광경이었던 것이다. 한 번도 카카시를 향해 날을 세우는 건 본 적이 없었는데. 이런 때에 제 역할은 못 할망정……. 데려가서 흠씬 두들겨 패기라도 할 기세였기에, 리바이는 명치끝에서부터 분노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정말 손이라도 댄다면―카카시가 맞고만 있을 위인은 아니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오늘이야 말로 벼르고 벼르던 해충 박멸의 날이라 생각하며 리바이는 카카시의 방으로 향했다.
.
방에 들어온 뒤에도 긴토키는 아무 말이 없었다. 카카시를 떠밀다시피 침대에 앉히더니, 그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천천히 부츠를 벗겨내기 시작했다. 카카시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긴토키가 하는 양을 잠시 지켜보았다. 무겁게 굳어 있는 얼굴이, 좀 전에 잡아먹을 듯 으르렁대던 말들과는 매치가 되지 않을 정도로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비장하고 경건해 보이기까지 해서 긴토키가 하려는 행동이 실감조차 나지 않았다. 사실 카카시는 긴토키의 이 얼굴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누군가’를 지키고자 할 때.
긴토키는 언제나 이런 얼굴을 했다.
어느새 재킷도, 허벅지의 벨트도 바닥에 떨어졌다. 긴토키의 분위기에 눌려 섣불리 말리지 못하고 있던 카카시는, 손이 허리에까지 닿자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잠깐, 긴토키, …너 진심이야?”
“어이, 그럼 이 상황에 너랑 농담 따먹기라도 하는 줄 알았냐? 이런 걸 농담으로만 치고 말 정도로 내 물건은 시시하지 않다고, 그러니까 좀 가만히 있어.”
카카시가 저지하자 긴토키의 손길도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아예 카카시를 침대로 밀어 눕힌 후 어지럽게 방해하는 팔을 잡아 아무렇게나 누르고 벨트와 버클을 풀어내었다. 며칠을 제대로 먹지 못해 힘도 들어가지 않는 몸으로 버티는 게 우습다는 듯 긴토키는 바지를 주욱 끌어내렸고, 발버둥 치다시피 하던 카카시는 얼른 긴토키의 팔을 붙잡았다.
“그만! 난 지금 이러고 싶은 기분이……!”
순간, 사나운 짐승이 먹잇감을 덮치듯 긴토키가 카카시의 어깨를 밀어 눌렀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긴토키의 표정에, 카카시는 숨을 멈추었다.
처음엔 별 기척이 없어 리바이는 괜한 기우였다고 생각하며 걸음을 돌리려 했었다. 그러나 곧 들리기 시작한 제복 곳곳에 달린 쇳덩이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와, 둘이 엎치락뒤치락하며 내는 기척, 희미하게 새어나오는 말소리에 거의 이성을 상실하기 직전이었다. 이건 주먹다짐하며 싸우는 것보다도 더 최악이었다. 깊게 생각할 것도 없이 문고리를 걷어차려는 찰나, 안에서 긴토키의 목소리가 유독 또렷하게 들려왔다.
제발 이렇게라도,
단 한 순간만이라도……!
…………잊어버려.
“…….”
분명 잔뜩 화가 난 외침임에도, 긴토키의 목소리는 어딘지 간절한 울부짖음처럼 들렸다. 리바이는 표정에 더욱 짙게 그늘을 드리웠다.
카카시가 곁에서 지켜보기엔 답답한 구석이 있긴 했다. 현실인식은 누구보다 냉철하고 이성적이면서도, 뒤로 보내버린 것들을 잠시 묻어둔 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좀처럼 하지 못했다. 그저 그것들을 죄다 질질 끌고 힘겹게 한발 한발 내딛을 뿐. 같은 일을 겪어도 자신과 카카시의 태도가 다른 것은 그런 성격 차이 때문이었다. 보는 사람이 다 피곤해지는 건 사실이지만 리바이는 카카시가 틀렸다고 말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긴토키의 입장에서는, 화가 날 수도 있는 건가…….
리바이는 긴토키의 마음이 이해가 가면서도 동시에 우스웠다. 아마 본인들은 자각하지 못하겠지만, 리바이가 보기에 혼자 다 떠안으려 하는 습성은 두 사람 모두 똑같기 때문이었다. 다른 점이라면 카카시는 모든 걸 짊어지려 하고, 긴토키는 그런 카카시를 끌어안으려 한다는 것 정도였다. 비슷한 것들끼리 서로 물어뜯는 건지 물고 빠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든 결말은 같을 것이었다. 더러운 똥개에 손 댈 필요는 없어졌으니 차라리 잘된 일이다. 리바이는 굳은 얼굴로 문 앞에서 돌아서 걷기 시작했다.
“주인을 물어도 충견은 충견이란 건가. 진짜 개새끼군…….”
.
“…긴토키…….”
카카시는 얼어붙은 채 쥐어짜내듯 말했다. 이렇게라도, 잊어버리라고? 나는…, 나는……. 무언가 할 말이 가득 떠오르는 것 같다가도, 내리누르듯 떨어지는 눈빛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긴토키가 너무 괘씸하기도 했지만, 안타깝기도 했다. 카카시는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더 이상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카카시가 기운 없이 축 처지는 것을 느낀 긴토키는 남은 옷을 마저 벗겨내기 시작했다. 오히려 상처를 주는 꼴이라는 것은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게 평소처럼 대하고 장난이나 치는 것이, 정말 위로가 되는지 아닌지 정도도 판단 못할 만큼 눈치 없지도 않았다. 주변의 그런 반응은 그저 더 깊이 숨겨 버리게 만드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그런 게 아니었다.
정말로 그늘 없이 웃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 평소의 그 부서질 것 같은 미소 말고, 숨겨둔 아픔까지 모두 떨쳐버리고 행복하기만 한 웃음이. 지금은 제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그 해사한 웃음이. 인류의 승리? 그따위 거창한 대의를 위해서가 아니다. 마음에 담은 사람 하나 지켜내기에도 자신은 힘들고 벅찼다. 다만 거인들이 사라지고 인류가 재기하는 것을 카카시가 원한다면, 그때서야 비로소 제대로 웃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할 뿐이었다. 자신의 심장은 오직 거기에 걸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제 옷도 대충 벗어젖힌 긴토키는 어느새 나신이 된 카카시를 내려다보았다. 곳곳에 산재한 베이고 찢긴 흉터들과 밴드에 쓸린 자국이 카카시의 마음 속 상태까지 대변하는 듯 했다. 이걸 다 낫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도대체 할 수 있는 게 뭐지…? 문득 드는 비참한 기분을 떨치기 위해 긴토키는 카카시의 허벅지를 잡아 벌리고 그 사이로 파고들었다. 다 포기한 듯 굴면서도 부끄러움에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얼굴에는, 여전히 그늘이 져 있었다. 숨 쉬고 있는 것 자체가 죄 짓는 일이라는 듯 깊이 깔려 있는 미안함. 긴토키는 언제나 이 표정이 왠지 화가 나고, 견딜 수 없이 불안했다.
“진짜 개망나니처럼 날뛰어 줄 테니까―”
“…….”
“이 참에 이걸 핑계로 그냥,”
“…….”
“…울어버려.”
“……….”
웃으라고는 하지 않을 테니까.
못 본 척 해줄 테니까……
잠깐이라도 잊고, 차라리 그냥 울어버리라고.
긴토키는 카카시의 손목을 잡아 누른 손에 꾸욱 힘을 주었다. 잔뜩 찡그린 채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눈이, 화가 난 것인지 슬퍼하고 있는 것인지 잘 분간이 되지 않았다. 오기처럼 으득, 이를 문 긴토키는 카카시에게 입술을 묻었다. 자신을 피해 달아나는 고개짓에 억세게 턱을 잡아 벌렸다. 긴토키는 카카시에게 용서 받지 못한다 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순간, 자신이 원하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어느 날 제 앞에 홀연히 나타난 것처럼,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 같은 모습. 언제든, 뭘 하고 있든, 깊은 상처와 죄책감을 벗어내지 못하는 표정. 그것을 이 서글프기만 한 얼굴에서 지워주고 싶었다. 지금의 자신은… 웃게 해줄 수는 없으니까. 그저 지워주기라도 하고 싶었다. 단 한 순간만이라도.
-to be continued
후기
1. 글에도 어느정도는 설정이 나오지만 이해를 위해 좀 더 설명을.. 덧붙이자면.. 서로 좋아하는 것도 맞고 어쩌다 보니 진도 다 뺀 것도 맞지만*-_-* 딱히 오 우리 오늘 부터 1일! 이따위 짓을 하며 사귀거나..... 우리 게이임^^ 하고 대놓고 연애질을 하거나..., 자주 응응하는 상황은 아닌 그런 상태입니다.(거의 안한다고 봐도 무방;) 이유는 당연히 현실적 암울함 때문. 하루가 멀다하고 주변사람 상치르는데 햄볶으며 연애할 정신이 있는 인간이 몇이나 있겠어요....^.T 특히 카카시나 긴토키나, 둘다 그럴 성격은 아닌 듯. 그래서 평소엔 대형견 + 주인님, 보디가드 + 병장님, 코딱지성애자 + 코딱지 묻히는 곳(?) 정도의 관계가 훨씬 뚜렷하게 나타남. 그리고 긴토키는 사실, 이것보다는 훨씬 다정하고 병신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 상황은....... 그냥 쌓이고 쌓였다가 폭발. 한거라고 봐주세요..... 여러가지 의미로... 쌓인 게 폭발........ <<....
2. 그래서 나머지는 죄다 씬이라는 게 참트루요 으사양반?! .....................그래서 존나게 지루하다는 게 진짜요??
네... 진짜요...... 어쩌다 이런식으로 쓰게 되었지. 이거 말고 나루카카도 이런 식이라.. 머리가 터질 거 같고 속도도 안나고.. 다시는 이런 식으로 안 써 제길..orz....
3. 사실 씬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미리 우겨본다. 씬을 쓰고 싶었던 건.. 아니 그것도 맞긴 맞지만 아니에요. 아니었어요. 진짜로 쓰고 싶었던 건................
4.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