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을 읽는 밤
meron***

들어봐
밤이, 봄 밤이
오래된 애인들과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꽃들이, 등 아래 핀 벚꽃들이
서늘한 봄 비에 지면서도 얼마나 빛나는지
백석을 읽는 밤
내일을 돌보지 않아도
푸근하고 아린
이런 봄날, 봄밤
발치에 조으는 짐승의 착한 눈꺼풀과
이불 아래 방바닥의 온기와
주전자서 끓는 구수한 보리차 냄새
가지들 마른 울음 그치고
저리던 뿌리들도 축축히 잠드는
이런 봄,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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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에서 한글날 기념으로 공모한 시 중 대상 선정작.


몇줄 되지도 않는 글이
어쩜 이렇게 나긋하고 맑을까
수 십 수 백 줄을 써도 흉내도 못 내겠지만
지금 쓰는 내 글도 봄날이니까
거칠고 험악한 짜증이 치솟을 때마다
읽어보고 가라 앉혀야지.. 하.....

시를 읽은 게 얼마만인가
좋은 시를 읽은 건 얼마만일까
명색이 전공인데
고등학교 문제집에서 말고는 백석을 본 일이 없다
그리하여 부끄럽게도
이 시가 백석과 얼마나 어울리는가
얼마나 그 느낌을 잘 나타내고 있는 걸까
잘 모르겠다

어쨌든 어떤 글 하나 잘못 읽었다가
하루종일 뭔가 씻겨지지도 않는 불쾌감에 시달렸는데
좋은 글 보니 또 거짓말처럼 사그라드네
역시 사람은 좋은 걸 보고 살아야 하는 듯

뭔가 더 할 말은 많으나
부질 없으니 참는다
시나 한 번 더 보자.






2013. 11. 9.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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