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0915 카카시 생일 기념 소설 릴레이

자세한 건 이 글을 참조하세요! http://delusionalworld.tistory.com/705


※ 이것은 2편입니다. 1편을 보셔야 이해 가능합니다.

1편. 쵸로쵸로님 http://blog.naver.com/hyobin1201/220790108295








<카카시 생일 기념 릴레이 소설 2.>


天敵(천적)

-파토스            




#1.



“이놈은 정말이지… 잘도 아무렇지 않은 척 끝도 없이 까탈스럽게 구는군.”



연결이 끊긴 수화기를 거칠게 내려놓은 아스마는 질렸다는 얼굴로 쯧, 혀를 찼다. 



“뭐라는데? 역시 거절인가.”


“그래, 제대로 말도 꺼내기 전부터. 눈치는 더럽게 빨라서는.”



아무리 자신이 먼저 떠보기는 했다지만, 불과 말 몇 마디 나눈 것으로 상대의 저의를 꿰뚫는 예리함. 역시 대단하다고는 생각한다. 실력도 실력이거니와, 결국 그런 면 때문에 의뢰란 허울을 씌운 ‘도움 요청’을 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스마에게 있어 카카시의 날카로움과, 그것을 십분 활용하여 상대와의 거리를 적당히 좁혔다 늘렸다 하는 식의 처세수완은 대하기 여간 껄끄러운 게 아니었다. 대단하긴 한데, 그만큼 이쪽의 상황을 간파해놓고도 단칼에 거절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니. 이번엔 특별히 더 짜증이 난다. 귀여운 구석이라고는 없는 놈.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아스마는 신경질적으로 담뱃불을 지폈다. 희뿌연 연기 너머로, 자칭 ‘나뭇잎의 푸른 맹수’는 속없이 ‘역시 나의 영원한 라이벌- 아직 청춘이군!’ 따위를 외치고 있었다. 자신처럼 경찰서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은 그 역시 일단은 정체를 숨기고 있다는 것. 그런데도 제 입으로 ‘나뭇잎’의 푸른 어쩌고 하며 옛 이름이나 들먹이는 황당함엔 애저녁에 두 손 두 발 다 든 아스마였다. 도대체 이 단순한 놈이 그 복잡한 놈과 어떻게 저런 이해하기 힘든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 볼수록 미스테- 아, 오히려 단순해서 가능한 것일까.



“가이, 요 몇 년 간 카카시랑 만난 적도, 연락한 적도 없지?”


“응. 그 일 이후부터니까… 한 8년은 됐나.”


“어이…, 넌 이대로 정말 괜찮은 거냐. 라이벌 타령하는 것 치고는 잘도 태평하게 구네. 방금 전화는 그렇다 치더라도, 거기 처박혀서는 자타공인 썩고 있는데 말이지.”


“흐음…, 자타공인?”


“아아, 방금, 텐조 말 대로면 자긴 썩고 있으니까 예전 그 실력이 그 실력이 아닐 거라나 뭐라나.” 



대화 중에도 물구나무를 선 채로 운동을 하고 있던 가이는 아스마의 말에 씨익, 이를 빛내며 웃었다.



“역시 내 라이벌 카카시! 아직 청춘이야! 나도 질 수 없지!”


“어이 어이…… 제발 정상인도 이해 가능한 흐름으로 말을…”


“다른 녀석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난 카카시 녀석 걱정 안 해.”


“…왜? 뭐 아는 거라도 있어?”


“아니, 아무것도.”


“…….”



내용에 비해서 가이의 목소리는 진지했기 때문에, 아스마는 다소의 황당함은 참기로 했다. 곧 몸을 지탱하던 손가락을 하나로 줄인 가이가 말을 이었다.



“구체적인 것들은 계획이나 깊은 생각이 필요하니까, 그야말로 나와는 다른 그 녀석의 영역이지. 난 알지도 못하고 알 필요도 없고. 하지만 뭐랄까… 카카시가 성실한 놈이라고는 농담으로도 말할 순 없지만……”


“……?”


“다 잃은 건 아니잖아? 8년 전에. 녀석에게 지켜야 할 게 남아 있는 한은… 괜찮지 않나, 하고. 

……전부터 믿고 있었어.”


“…….”


“거기다 텐조 말에 여태 기분이 나빠서 발끈할 정도로, 아직도 열혈 청춘이잖나!”


“하? 그게 그렇게 되는 거냐.”


“엉뚱하게 번지수가 타이밍 나쁜 너한테 튄 거겠지만 말이지. ……뭐, 옛날부터 그런 부분은 확실히 꼬이긴 했지, 카카시 녀석.”



하나뿐인 라이벌이 역시나 귀엽고 기특해 죽겠다는 얼굴로 뿌듯하게 웃는 가이를 아스마가 떫은 표정으로 쳐다봤다. 듣고 보니 가이 말이 맞는 것 같긴 한데, 그렇다면 다른 의미로 복잡하게 알다가도 모를 놈이란 생각에 성가신 기분이 든다. 그 맹한 듯 묘하게 꼬리가 늘어진 눈매와 은발 덕에 더 흐릿한 인상이 언제나 속을 알기 힘들다 느꼈는데…… 가이를 보고 있자니 정말 의외로 단순한 문제인 건가 싶다. 자신의 어중간한 수 싸움보다 이쪽이 먹힌다는 건가? ……역시 하나도 안 귀여워. 


저도 모르게 필터를 짓씹고 있던 아스마를 깨우듯, 가이의 시원스런 목소리가 결론을 냈다.



“자자, 그러니까 너무 어렵게 생각 말라고. 인상은 그만 구기고 내일 전화나 한 번 더 해봐.” 




#2.



오늘도 첫손님은 시카마루 씨다. 이렇게 거쳐야 할 일들을 차근차근 거쳐 가는 하루 일과에 카카시는 무엇보다 편안함을 느끼곤 했다. 어제와 오늘이 완전히 같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시카마루 씨의 존재만으로도 커피를 내리는 카카시의 손엔 평소와 똑같은 여유가 깃들었다.


정작 평소와 다른 쪽은 시카마루 씨. 시카마루 씨는 오늘 ‘책 집’에 오자마자 위화감을 느꼈다. 저 책들 분명히… 가장 구석의 책장, 가장 윗칸에서 먼지나 잔뜩 먹고 있었을 텐데. 탁자 위에 항상 널려있던 책들 사이에 두껍고 재미없어 보이는 양장본들이 태연하게 섞여 있었다. 모두 ‘史’ 라는 글자가 하나씩 박혀 있을 뿐이지만 시카마루 씨도 익히 아는 것들이다. <史>. 이 주체가 은닉된 역사책들은, 딱 그에 어울리게 ‘닌자’의 역사를 담고 있었다.


새삼 이 책들을 뒤적거린 장본인은 뻔뻔할 만큼 평소처럼 커피를 내리는 중이다. 급할 것 없는 숙련된 움직임을 보이는 하얀 손에는 새로 생긴 상처들이 있었다. 이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스스로는 전혀 티를 내지 않지만, 카카시의 손에 자잘한 상처가 끊이지 않는다는 것을 시카마루 씨는 알고 있었다. 그렇게 수련의 끈을 놓지 않을 거면서, 굳이 이런 생활을 하는 속은 모르겠지만. 이 이상 파고 드는 것은 귀찮았기 때문에 시카마루 씨는 언제나 이 지점에서 생각하는 것을 멈추곤 했다, ……지금까지는. 그러나 비상한 그의 머리엔 아무리 귀찮고 싫어도 저절로 퍼즐이 맞춰지는 때가 있는 법이었다.


오늘도 낡은 TV에서 울리는, 날로 심각해져 가는 뉴스. 

묘하게 초조해져서는 닦달의 강도 조절에 실패하기 시작한 텐조 씨.

궁지에 몰린 경찰들.

지금까지 빼앗겼단 챠크라의 총량은 대체 어느 정도나 될지.


그리고 무엇보다―

저 태연자약 게을러터진 닌자가 책장 꼭대기까지 손 뻗어 먼지를 마시게 만든, 그 엄청난 동인(動因).



“여기도 곧 문을 닫겠네요.”


“…….”


시카마루 씨는 하품하듯 한 마디 흘렸다. 카카시에게서 돌아오는 반응은 없었다. 분명 특유의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는데’ 모드로 회피하려 들 거라 예상했는데. 말할 때도 멍한 눈으로 TV를 응시한 채였던 시카마루 씨는 오히려 이 무반응 때문에 흘끗, 카카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마침 커피가 완성된 모양이었다. 담백한 손짓으로 시카마루 씨 앞에 잔을 내려놓으며, 카카시는 뒤늦게 아아 뭐-, 하며 애매한 답을 했다.



“의외네요- 절대로 부인하실 줄 알았는데.”



좀 전보다 초점을 벼른 눈길로 카카시를 스윽 쳐다보며, 시카마루 씨는 커피를 입에 가득 머금었다. 하지만 향을 채 음미하기도 전에, 그는 크헉! 소리를 내며 목을 부여잡고 몸을 웅크릴 수밖에 없었다.



“크윽……! 켁, 카카시… 씨, 이게 무ㅅ… 케헥, 큿…!”


“…….”


“큭…… 으… 진짜, 이거 완전 설탕 덩어리잖아요!”



시카마루 씨의 격한 반응에도 한동안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는데’ 란 표정으로 내려다보던 카카시가, 그제야 빙긋 웃음을 지었다. 



“왜 그래, 인생의 맛 같고 좋잖아.”


“아 그게 뭐예요, 썰렁하게. 이 판국에 시인이라도 되실 셈이에요?”


“하하, 그 정도까진 아니어도 말이지…… 문득 좀 비슷하지 않나 해서.

단맛도 지나치면 쓰고, 온통 쓰고 떫은맛에 시달리다 보면 맹맹한 물도 달콤한 법이니까.”


“……하. 맛의 문제가 아니라 혀가 마비될 정도의 고통이라고요, 이거.”


“흐음- 그런가.”



카카시는 어차피 내 혀는 아니니 상관없다는 태도로 볼을 긁적일 뿐이었다. 그에 더 바짝 약이 오른 시카마루 씨가 답지 않게 무어라 잔뜩 투덜거리기 시작했지만, 어느새 의식의 샛길에 빠진 카카시에게는 잘 들리지 않았다. 고통……이라.




#3.



8년. 자신에게 그 시간은 어쩌면 한 잔의 커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남들이 보기엔 그저 지나친 휴식과 여유. 단맛인지 쓴맛인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하지 않다. 일어나길 포기한 앉은뱅이 같은 것도 사실이지만, 글쎄. 지금 모습이 어떻든 인간이라는 건, 향해갈 곳만 잃지 않으면 숨이 붙어 있는 한 어떻게든 걷고 있다 볼 수 있는 거 아닐까나……. 뭐 대강, 이런 식으로 여겨왔던 것 같다.


오비토와 린이라는 동료이자, 친구가 있었다. 오비토는 어렸을 때부터 터무니없을 정도로 큰 꿈을 갖고 있는 녀석이었다.



「카카시, 암살이나 음모에만 이용되기엔 아깝지 않아? 닌자의 힘이라는 거, 좀 더 인류나 평화를 위해서 좋게 쓰일 수 있을 거라고! 난 옛날처럼 닌자 마을을 번영시킬 거야! 린하고 결혼해서!」


「……딱히 네가 무슨 꿈을 꾸든 비웃을 생각은 없다만, 결론이 문맥에 전혀 안 맞는다고, 바보냐.」


「으으! 지금 린을 무시하는 거냐! 싸우자 카카시! 결투다 카카시!」


「그런 말이 아니잖아, 멍청아! 달라붙지 마!」


「나도 그냥 하는 소리 아니거든! 멍청인 너지! 내 계획엔 좀 더 깊은 뜻이…」


「아아, 그러세요? 관심 없으니 혼자 실컷 깊으세요! 그보다 좀 떨어지라고, 이 멍청이 오비토!」


「싫어어어어! 오늘에야말로 널 쓰러뜨리고 최고가 된다! 각오해라 바보 카카시!」



……뭐 이런 식으로. 바보 같고 시시한 일상의 연속이었지만, 오비토는 언제나 진심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엔가― 오비토는 내게 사륜안과 린을 맡기고 죽었고, 나는 린을 지키지 못했다. 그래도 견딜 수 있었던 건 이 눈과 미나토 선생님 덕이었다. 그 시기는 꽤나 안정적으로 오래 유지되었다. 나루토가 태어나고, 꼭 예전 오비토처럼 터무니없는 꿈을 읊어댈 만큼 컸을 때까지. 그러니까, 8년 전까지.


마을이란 형태는 무색해졌지만, 원래 닌자들은 여전히 세상에 녹아 있었다. 개별적으로 의뢰를 받는 식이기는 해도, ‘전통관습’이란 느낌으로 서로 간의 결속이나 모임도 꽤 유지되는 편이었다. 때로는 하는 일과 그 정당성을 문제 삼아 사회적인 이슈가 되기도 했으나, 어쨌거나 공공연하게 존재한단 사실이 ‘인정’은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사건 이후, 아무도 굳이 ‘닌자’의 편을 들려고 하지 않았다. 갑자기 ‘닌자’가 ‘없는 것’이 된다고 해서 아쉬워 할 것도 없었다. 이런 상황이 가능한 건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역시 본연의 역할에 근본적인 정당성이 결여되어 있는 탓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는, 오비토의 꿈은 닌자에게 있어 정말 중요한 이슈였던 것이다.


8년 전 어느 붉은 보름의 밤. 처음 나타난 그 ‘천적’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달을 통해 거대한 환술을 걸었다. 현대의 닌자들은 싸울 때, 기본적으로 결계를 쳐 일반인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함과 동시에 능력과 술법들이 쓸데없이 노출되는 것을 막는다. 하지만 그날은 대처가 너무 늦었고, 본 적도 없이 거대한 술법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 사건을 모조리 목격했다.


미나토 선생님의 집안은 대대로 ‘미수의 봉인체’를 지키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 거대한 챠크라 덩어리를, 예전엔 닌자들이 직접 다루고 이용했다고도 하나 구체적인 방법은 전해지지 않았다. 현 시대엔 그저 위험하지 않도록 지키는 것이 전부. 그리고 그날 밤 ‘천적’은, 노골적으로 그 봉인체를 노렸다.


선생님의 마지막 부탁에 따라, 나는 나루토를 지키는 데에 사력을 다했다. 일반 사람들이 도대체 나의 어떤 모습을 보았는지, 내가 어떻게 싸웠는지, 그런 건 잘 기억나지 않는다. 텐조의 호들갑과는 다르게, 지금까지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는 이유는 단지 닌자의 싸움을 그토록 적나라하게 목도한 것이 처음이라 더 각인된 것일 뿐이 아닐는지. 아무튼 당시의 난 그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언제나 그렇듯,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란 지극히 한심했다. 겨우 겨우 나루토만 지켜낸 정도일 뿐. 선생님도 쿠시나 씨도, 심지어 봉인체조차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당연히 이 사건은 전 세계에 일대 파장을 일으켰다. 노출된 적 없었던 닌자의 능력과 싸움을 목도한 유수의 권력들이 택한 길은 은폐. 워낙 구체적인 모습이 알려진 적이 없었기에, 일회성 사건에 대한 조직적인 정보조작은 시간이 지날수록 결국 먹혀들어갔다. 하지만 나에게 이 사건은, 이런 일반적 의미와는 전혀 다른 이유에서 훨씬 더 특별하다. 그것은…… ‘나루토만은 어떻게든 지켜냈다’는 잠깐의 안도감과 함께 주저앉았던 마지막 순간, 아마도 나에게만 들렸을, 일부러 나에게만 드러낸 목소리 때문에.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그 목소리…….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선생님 덕에 그 싸움이 절반의 패배로 끝났단 사실이었다. 도대체 어느 틈인지도 모르게, 선생님은 나루토에게 봉인체의 반을 맡겨두었던 것이다. 때문에 사건이 그걸로 끝은 아닐 거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 후 나루토는 지라이야 님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 일단은 ‘방법’을 찾기 위한 여행이지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무엇을 위한 방법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조차 정해지지 않은… 정확히는 그 모든 것까지 스스로 찾아내야 하는 여행. 그저 다가올 위협에 대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에 무작정 시작된 여정이었다. 지라이야 님은 당시에 이미 완전한 회복은 불가능할 정도의 타격을 입은 상태셨다. 평생 지속적인 관리와 치료가 필요하겠지만, 츠나데 님도 있으니 걱정하진 않았다. 매년 이맘때쯤 도착하는 책이 무탈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루토라면, 분명 괜찮지 않을까… 뭐든 찾아내지 않을까…… 아니, 그래야만 한다. 나에겐 이상한 믿음이 있다.


그동안 ‘적’은 마치 모자란 절반을 채우겠다는 듯 챠크라를 갈취했다. 

나루토는 다음 생일이면 벌써 성인이다. 


8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왜 나는 그토록 무력했고, 왜 그 많은 것들을 잃어야 했는지를 자문할 때면, 언제나 막다른 곳에서 시커먼 벽을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그 절대적인 벽에 부딪힌 감정들은 고스란히 되돌아와 목을 조인다. 결국 다 내 탓이었을 뿐이라고. 숨 막히는 죄책감은 매번 나로 하여금, 결국엔 그 벽 앞에서 등을 돌리게 만든다. 마치 그러기 위한 감정이라는 듯. 이게 도망치는 건 아니라는, 이상한 자기위로와 함께.


놀랍게도 뒤돌아서면, 희미한… 바람이라고 말할 수조차 없는 미약한 공기의 흐름이 느껴지곤 했다. 그거면 충분했다. 어딘가 틈이 있다면, 정말 막다른 곳은 아니라는 것 아닌가. 모든 게 내 잘못이라면, 감당하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애초에 내게 포기할 자격 같은 게 있기는 한지?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그 벽 너머에서 어떤 목소리가 날 노려보며 비웃고 있다고 해도, 내가 서 있어야 할 곳은 결국 이쪽인 거다. 영원히 닿을 것 같지 않은 단 한 발짝 후의 세상. 거기에 도달하는 방법은 굳이 벽을 부수지 않더라도 분명 있을 터다. 누구나 그렇게 헤매면서, 조금은 돌아가는 것일 뿐일 터다. 아마도 실은, 그렇게 가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그러니 나 역시 그러겠노라고. 내겐 남은 게 있으니까.


8년.

가만히 주저앉아 있었던 건 아니다.




#4. 



“……-이래서… 당신 평판이………, -…짜 독인 줄 알았다고요, 처음엔! 카카시 씨, 듣고 있어요?”


“아―?”


“………하! 정말이지!”



아직도 뭐 씹은 표정으로 투덜대고 있는 시카마루에게, 그냥 잊어버리지는 거 참 속 좁네- 하는 눈길을 태연스레 보내며 카카시는 가볍게 한숨을 냈다. 자신이 정성들여 탄 커피를 위장한 설탕물을 위장한 독극물이 외롭게 식어가는 것이 안타까웠다.



“아아, 너무 그러지 말고 소중하게 마셔 둬― 정말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눈치만 더럽게 빨라서 귀엽지도 않은 후배에게 준 나름의 선물이라고.”



그게 당신이 할 소립니까? 지금은 경찰서의 유명한 형사인 모 닌자 씨가 예전부터 카카시를 두고 뱉던 말을 떠올리며, 시카마루 씨는 더욱 어이없어 했다. 그러나 이미 설탕의 쓴맛을 톡톡히 겪은 후라, 속내를 밖으로 꺼내진 못했다. 그보다는 선선히 마지막을 인정해버리는, 모처럼의 진지함이 의미하는 바를 더 따져봐야 하나. 시카마루 씨는 끄응- 하는 소리를 내며 다시 머릿속을 뒤적거렸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눈앞에 커피 잔을 다시 입에 댈 생각은 죽어도 없지만. 


시카마루 씨가 다시 TV에 멍한 시선을 주며 소파에 드러누웠을 때쯤, 당연하다는 듯 전화벨이 울렸다. 카카시의 느릿한 손이 수화기를 집어 든다.



“여보ㅅ…”


-선배!



어제부터 전화상대의 범위가 약간 늘어나버려서, 평소와 달리 제대로 응대를 하는 카카시의 목소리를 맹랑한 후배가 무참히 끊어버렸다. 이 녀석 버릇이 이상하게 들어버렸군. 언제 정말 제대로…… 어쩌고저쩌고 하며 생각을 이어보지만, 역시 텐조는 카카시의 속도를 배려하지 않았다.



-빨리 오세요! 나루토가 돌아왔다고요!


“……그렇군. 뭐, 지라이야 님이라면 슬슬 돌아오실 거라 생각했지만.”


-아뇨, 선배. 나루토는 혼자 왔어요.


“뭐?”


-자세한 건 와서 들어요, 선배! 전화로 할 이야기가 아니라고요!



텐조가 아무리 잔소리가 많고 간혹 대담하게 자신을 자극하기도 한다지만, 이런 거짓말까지 하는 바보는 아니라는 것쯤은 카카시도 잘 알고 있었다. 



“…알았다. 곧 갈게.”


-……네. 나루토에게도 전해둘게요.



내려놓은 수화기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카카시는 한숨을 쉬었다. 방금 같은 대답을 좀 더 일찍 했다면, 텐조는 지금보다는 훨씬 기뻐하며 한참을 방방 뛰었을 텐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오히려 가라앉고 결의마저 찬 목소리로 의젓하게 구는 걸 보니 어쩐지 마음이 무거워졌다. 조금은 미안한지도…까지 생각하다가, 엊그제 텐조의 말을 떠올린 카카시는 당장에 마음을 고쳐먹었다. 뭐, 썩어? 만나면 버릇을 고쳐줘야겠다.


어쩐지 싱글거리는 카카시 때문에 공연히 오싹, 알 수 없는 소름이 돋은 것은 시카마루 씨였다.




#5.



들어오지는 않은 채 길가에서 사쿠라가 살짝 근심 섞인 얼굴로 이쪽에 목례만 하고 지나가는 것을 보아, 돌아가면 사쿠라도 보게 되겠구나 싶었다. 카카시는 조용히 이곳을 들렀다 떠나고는 하는, 한결같이 각자 개성 강한 방문자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뭐, 우치하 꼬맹이는 매일 오는 건 아니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매번 남아 있는 바람 한 줌 정도로 ‘왔었다’는 것만 알리는 녀석까지. 오늘은 손님이 다 오기도 전에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에 어쩐지 기분이 묘하다. 


그리고 이런 묘한 감성엔 어울리지 않는 투박한 벨소리가 또 한 번.



“생각보다 끈질기시군요, 아스마 씨는.”



상대가 자신을 알리기도 전에 예상했다는 듯 카카시가 툭, 말을 던지자 반대편에서 기막혀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넌 언제나, 항상, 매번, 한결같이 매우 일관적으로 생각보다 안 귀여워, 카카시.


“귀엽다고 생각하시면 그건 그것대로 곤란하니 참아주시면 좋겠습니다.”


-하…, 됐다 됐어. 뭐, 내 용건은 알 테니, 어제와는 다른 대답을 해봐. 뭐든 간에, 할 말은 있지?


“…….”


-어이, 나 바쁜 몸이라고.


“아스마 씨.”


-그래.


“아카데미 시절, 역사 점수 나빴죠? 제 예상엔 분명 그럴 타입-”


-……야! 이게 진ㅉ……!



뭔가 엄청나게 험한 말이 튀어나올 것 같아 카카시는 얼른 수화기를 귀에서 떨어뜨렸다. 하지만 건너편은 의외로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뭐, 대강 어떤 그림일지는 예상이 되지만 말이다. 곧 분노로 부글거리는 속을 누르느라 평소보다 더 짐승 같아진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본론만 말해. 쓸데없는 거면 진짜 재미없을 줄 알아, 망할 귀여운 후배 씨.



아아. 방금 귀엽다고 했어. 본인이 무슨 말하는 건지도 모르는 게 분명하다. 진짜 위험 신호다. 식은땀을 삐질 흘리며 정신을 바짝 차린 카카시는, 어느 때보다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세간에서는, 그리고 닌자들 스스로도, 상대를 ‘닌자’의 ‘천적’인 것처럼… 전혀 특별한 존재인 것처럼 여기고 언급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일단 그것부터가 오류일 뿐이에요.”


-무슨 뜻이야?


“우리는 ‘닌자’고 다소 특별하지만… 생물학적 종(種)으로 치면 엄연한 ‘인간’일 뿐이란 뜻입니다. 챠크라란 것도 이론적으론 훈련만 하면 누구나 생성할 수 있지 않습니까. 더는 설명하지 않아도 아스마 씨라면 알겠죠. ‘닌자의 천적’이란 말 자체에 어폐가 있다는 걸. 상대가 정말 포식자 위치의 ‘천적’이라면, 그건 ‘인간’의 천적이어야 하는 겁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떻죠?”


-……노려지는 건 진짜 닌자들뿐이지.


“여기서 역사적 지식이 좀 필요합니다만…….”


-이봐.


“아아, 진정하세요. 뭐, 말은 이래도 저도 확인 차 책 정도는 뒤져봤으니까요. 아무튼…… 닌자의 역사, 그 시작부터 지금까지…… ‘닌자’의 존속에 영향을 미칠 만큼 위협적인 존재는 언제나, ‘닌자’ 그 자신일 뿐이었습니다.”


-…….



꼭 이런 논리가 아니어도, 카카시는 8년 전부터 대강 알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것, 알리지 못한 것에는 한마디로 설명하기 힘든 많은 이유와 감정들이 있었지만……. 8년이란 시간은 그 모든 것을 딛고도 결심을 굳힐 만큼은 되는 모양이다. 저의 이런 변화를 조금이라도 서글퍼 해준다면. 오히려 좀 더 쉽게 풀릴 가망성이 있지 않을까, 이 사건. 카카시의 눈썹이 어느새 사선으로 축 처졌다.



“닌자로 범위를 좁힌다면 그 다음부터 가능한 가설은 한 가지 뿐입니다. 특정되지 않는 상대의 다양한 모습, 그 정체……. 환술밖에는 답이 없죠.”


-어이, 하지만 이건…


“무슨 말이 하고 싶으신지 압니다. 같은 닌자들도 당할 수 없는, 심지어 제 사륜안으로도 대응 안 될 이런 터무니없는 환술계 능력……. 그러니까, 여기서도 역사적 지식이 좀 필요합니다만.”



결국 건너편에서 책상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이런 게 가능한 건 ‘윤회안’ 뿐일 겁니다.”


-어…이,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냐.



아카데미 시절 책 속에서나 봤을 단어를, 담배연기만큼 희뿌연 머릿속에서 뒤지고 있을 모습을 떠올리자 어쩐지 피식 웃음이 나서 카카시는 상대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호흡을 다듬었다.



“뭐, 최악의 시나리오죠. 하지만 다른 가능성은 생각하기 힘듭니다.”


-……그럼 이쪽으로 얼른 와, 한 시라도 빨리 협력해서…


“아스마 씨, 의뢰를 수락한 기억은 없습니다만.”


-뭐? 말은 다 해놓고 이제 와서 무슨 소리야?


“저는…”



카카시는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눈을 감아 내리며,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입을 열었다. 그러나 말을 채 잇기도 전에, 경악스러운 탄성이 카카시를 붙잡았다.



“카카시 씨! 이거……,”



여태 누워서 멍한 눈으로 뉴스도, 카카시의 통화도 아닌 척 주워 담고 있던 시카마루는 어느새 벌떡 일어나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긴급속보>라는 커다란 글자와 함께 어지러운 화면, 다급하게 외쳐대는 기자의 목소리는 마치 이 세상 일이 아닌 것처럼 유리되어 보이는 착각까지 들었다. 


[아마도 아직 담당 경찰들에게도 소식이 닿지 않은 사건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갑자기 방송국에 들이닥쳐 무작정 저희 뉴스 팀을 찾은 이 사람은 스스로 닌자라 생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정확한 인터뷰가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무엇에 홀린 듯 오로지 ‘이 말을 전하라’며 같은 말을 중얼거리고 있습니다!]


화면 속 만신창이의 닌자가 초점 없는 눈으로 중얼거리는 말이, 기자의 마이크를 타고, ‘책 집’의 적막을 가른다.


[때가 되었다…, 카카시.]



때가 되었다, 카카시. 

주문과도 같은 이 말을 듣자, 8년 전, 싸움의 마지막 순간, 자신에게만 울리던 목소리와 그 메시지가, 카카시의 뇌리에 다시 강렬하게 살아난다. 오랜 세월 떨어져 있는 동안 많이 변해 있었지만, 그래서 믿고 싶지 않았지만, 당시에도 듣자마자 바로 주인을 알 수 있었던 목소리.



끝이 아니다, 카카시. 

기억해라, 넌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죽은 줄 알았던, 옛 친구의 목소리.

그리고 저주.



“…….”


-…….


“…이런 이유로. 전 저대로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아스마 씨.”


-……그래.


“경찰로서, 그리고 닌자로서 할 수 있는 일들… 부탁드립니다.”


-알았다.


“옆에 있는 가이에겐 얼른 오라고 전해주십시오. 그 녀석 성미로는 이 상황에 경찰 조직력 내에 편승해 있는 건 힘들 테니까.”



처음부터 옆을 지키며 아스마가 흥분하는 걸 뜯어 말렸을 가이에게, 카카시가 전언했다. 답을 기다리지 않고 내려놓는 수화기 저편에서, 정말 안 귀여워, 하는 질린 목소리가 얼핏 들렸다. 귀찮은 표정도 사라져버린 시카마루 씨는 먼저 가 있을게요, 라고 한마디 던지고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닌자들의 쉼터.

‘책 집’의 문이 닫혔다.




#6.



옛 나뭇잎 마을 터에 자리 잡은 평범한 주거지역 일부는, 사실은 특정한 결계를 통과하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오래간만의 방문인데도 여전히 변한 것이 없어, 카카시는 마치 8년 전으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그러나 이 기분은 어떤 무지막지한 존재 때문에 무참하게 깨졌고, 카카시는 매우 황당한 방식으로 현실을 깨달아야 했다. 



“카카시 선생님! 진짜 오랜만이라니까아아아아아안! 우와! 여전히 이뻐! 멋있어! 이제 영원히 함께라니까! 절대로 안 떨어질 거야아아아아!!!!!”


“……돌아갈…”


“어 딜도 망가 세요, 선배.”



카카시는 자신이 이미 환술에라도 걸린 것 같았다. 나루토는 옛날부터 항상 이런 식이긴 했다. 여행길 오를 때도 같이 가는 게 아니면 싫다고 땡깡을 삼일 밤낮 놓는 바람에 정말 고생했었다. 떨어져 있으면 정상이 될 거라 생각하고 잊고 지냈는데. 이렇게 커져서도 여전하다니 나이까지 감안하면 더 상태가 나빠진…… 랄까, 방금 텐조 녀석 띄어쓰기 이상하지 않았냐고.



“…….”



도대체 어디서부터 지적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카카시는 그저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잘 왔다, 카카시.”


“아, 오랜만입니다, 시카쿠 씨.”



드디어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할 것 같은 인물의 등장에, 카카시는 반색을 하며 예의바르게 답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상당한 인물들이 모여 있었다. 휴우가의 계승자들은 물론, 기본적인 정보력은 있는 건지 알아서 찾아온 우치하 꼬맹이, 사쿠라, 그 사건 이전에 아스마 씨나 쿠레나이 씨, 가이가 잠시 맡았던 녀석들까지. 시끄럽고 귀찮을 때가 훨씬 더 많은 이들이었지만 그래도 역시, 반가운 기분이 먼저다. 



“뉴스는 봤겠지?”


“네. 시간이 없습니다. 얼른 나루토의 이야기를 듣고 싶군요.”



본론을 꺼내며 카카시는 어느새 들러붙은 나루토의 머리를 밀어냈다. 덩치가 커져서 힘겹지만, 그만큼 듬직해진 면도 있기는 한 것인지, 정작 이야기를 시작한 나루토는 차분했다. 


8년 전 사건에서 입었던 상처로 계속 고생하던 지라이야는 결국 그 후유증으로 죽었다. 그것이 4년 전. 그 당시 나루토는 여행과 수련을 계속해야 했고, 지라이야도 신신당부했기 때문에 이곳엔 돌아오지 않았다. 책도 그의 부탁에 따라 미리 써둔 원고를 나누어 엮어 해마다 카카시에게 보내고 있던 것이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했다니깐. 그러니 카카시 선생님한텐 쓸데없는 걱정 더 시키지 말라면서. 죽은 것도 알리지 말라고. ‘때’가 되면 돌아가라고 알 수 없는 소리만 했는데, 지금이 왠지 그 ‘때’인 것 같아서 감으로 돌아왔다니깐. 아 또, 책에 대해서도 뭐라 뭐라 했었는데……, 해마다 보낼 부분 어딜 끊어야 하는지 외우는 것도 벅차서 뭔가 까먹었어.”


“지라이야 님…….”



흐릿한 기억 속 호탕한 모습을 잠시 그려보던 카카시가, 문득 드는 의문에 고개를 들었다.



“그렇다면 츠나데 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 거지?”


“그게, 나도 모르겠다니깐. 에로선인을 마지막까지 치료하다가, 죽고 나서는 굉장히… 슬프고 분해 하는 것 같았어. 자기 실력이 모자라기 때문이라면서 이대로 있을 수 없다고, 무슨 짓이라도 해서 궁극의 의술법을 만들겠다며 온 주변을 초토화 시켰다니깐. 그 괴력이 이미 궁극의 술법이나 다름없는 거 같은데. 그 할망구 속은 진짜 모르겠다니깐.”



말을 하는 나루토의 표정이 영 개운치가 않아서, 카카시가 한 번 더 확인했다. 



“그래서 그 뒤로는 전혀 소식을 모른다고?”


“그렇긴 한데……, 오로치마루…가 생명력인지 뭔지 그런 거 연구한다면서, 인간이 손대선 안 될 말도 안 되는 영역이라고 화내는 걸 본 적이 있거든. 근데 떠나기 전에 ‘무슨 짓이라도 해서’라고 몇 번이고 말하던 게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다니깐.”


“그렇군……. 뭐, 그 부분은 지금 고민해도 어쩔 수 없을 것 같으니,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나루토, 그래서 그간 네가 얻은 건 뭐지?”


“……나, 아버지께 받은 미수 챠크라를 운용할 수 있게 됐어. 옛날 사람들처럼 자유자재로는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내 의지대로 움직이는 정도는 식은 죽 먹기가 되었다니깐! 더 자세한 건 실전에서 보여줄게! 말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아하하!”



자신 있게 소리치는 모습에 잠시 눈을 동그랗게 떴던 카카시가, 곧 눈꼬리를 접으며 나루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고생 많이 했겠구나.”


“응! 진짜 엄청났다니깐! 그래도 이젠 괜찮아! 이 힘으로 카카시 선생님 내가 꼭 지켜줄 테니깐 우리 이제 떨어지지 말고 한 집에서 영원히- #$%&*(^”


“시카쿠 씨.”



나루토의 헛소리를 자체 차단해버린 카카시가 고개를 돌려 시카쿠를 바라보았다. 



“이 쯤에서 제 생각을 모두에게 말씀드리고…… 한 가지 사과도, 확실히 드리고 싶습니다.”



마침 도착한 가이까지 더하여 모든 사람들 앞에 선 카카시는 차분히 입을 열었다. 

이런 일일수록 해결법은 의외로 아주 기초적인 부분에 숨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자신은 처음부터 ‘힌트’를 갖고 있었던 것이나 다름없긴 하지만, ‘천적’이란 말의 어폐도 결국 기본 논리에서 출발해 얻은 결론이었다. 상대는 미수 챠크라의 반을 가지고 있다. 그 고생을 하며 얻은 것을 쓰지 않을 리 없다. 그럼 그 거대한 챠크라는 무엇으로 상대하는가? 그것을 통째로 증발시키거나, 전혀 위력이 없도록 완전한 봉인을 하는 건 현 닌자들의 술법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두 가지 정도.

첫째, 챠크라를 상대의 의도대로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낭비되도록 유도하는 방법.

둘째, 같은 속성, 위력의 챠크라로 상쇄시키는 방법.


특히 두 번째 방법은 챠크라 속성과 술법을 이용한 닌자들의 전투에선 기초 중에 기초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뭐, 아주 이론적인 이야기일 뿐입니다만……. 첫 번째는 상대의 목적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미리 계획을 세우는 게 불가능하고, 임기응변으로 하기엔 위험부담이 클 겁니다. 두 번째는…… 단순하고, 충분히 가능성도 있는 이야기이지만 지난 8년 간 추가로 모은 챠크라 처리가 관건이고… 무엇보다, 챠크라를 운용해야 하는 나루토가 위험할 수 있습니다.”


“난 카카시 선생님만 있으면 안 죽어! 걱정 말라니깐!! 내가 죽으면 선생님을 지킬 수가 없는데 어떻게 @$%*$&* 그러니까 선생님 나랑 ~!$@%^ 결혼 *(^$@$!@” 


“흐음……, 선배 말은 그럼… 어쨌든 그간 개별적으로 모은 챠크라보다는, 역시 미수가 더 중점적이라는 건가요?”


“그럴 거야. 챠크라 같은 에너지를 무작정 붙잡아 둘 수는 없어. 하지만 봉인술은 그 자체만으로 엄청난 기술과 에너지가 필요한데… 개개의, 그것도 노리기 쉬운 중하급 닌자를 노려서 얻은 자잘한 챠크라들에 모두 봉인술을 쓸 수 있을 것 같아? 배보다 배꼽이 큰 격이야, 불가능해. 어느 한 장소에 계속 모아 넣는 거겠지. 하지만 그런 식으론 챠크라 유실도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되어 있다. 8년이란 긴 준비 기간이 그걸 반증하지. 또한 지금껏 일어난 피해규모로 계산을 해봐도… 그렇게 많진 않아. 시기 선택에 어떤 이유가 더 있을진 모르지만… 적어도 챠크라를 모은다는 측면에선, 8년은 완성이 되어서라기보다, 더 늦출 수 없어서 적당히 타협한 선일 거다. 지금 우리의 전력을 총동원해서, 각자가 챠크라를 최대치로 운용하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규모일 거야.”


“하지만 카카시 씨, 거기엔 한 가지 맹점이 있어요.”



가만히 듣고 있던 시카마루 씨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그 자잘한 챠크라들을 ‘모아 놓은’ 상태와, 우리들 개개인이 발휘하는 흩어진 상태의 챠크라는 위력이 다르다구요.”


“아―아.”



카카시가 고개를 갸웃-하며 검지로 볼을 긁적였다. 꼭 ‘알 만한 녀석이 왜 이래?’ 라는 표정이어서, 시카마루 씨가 눈썹을 치키며 마주 의문을 표했다. 카카시는 곧 흠, 하고 가볍게 숨을 내고 어쩔 수 없다는 듯 슬쩍 웃어보였다.



“뭐, 나도 그다지 놀기만 한 건 아니니까.”




#7.



“오비…토라고? 어이, 카카시. 정말이야 그거?”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하는 가운데, 가이가 덥썩 카카시의 양어깨를 붙잡고 흔들어대기까지 했다. 



“……모두에겐 면목 없습니다.”


“…….”


“변명을 하자면, 처음엔 그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노리는 게 제 쪽이라면, 이곳에 어떤 피해가 될지 모르는데 닌자로서의 생활을 함부로 지속할 수도 없었고……. 거기다 당시엔 어쩐지 제 얼굴이 너무 알려져 버려서.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민폐인 수준이었고 말입니다.”


“선배……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계셨어요…? 그래서 그렇게……”


“썩어 있었냐고?”


“아, 아니 그게 아니라요!”


“흐음- 아직도 썩은 것처럼 보이나-.”


“아아아, 정말! 그건 몇 번이고 사과 드렸잖아요! 제발 잊어달라고요!”



얼굴이 새빨개져서 손을 휘저어 대는 텐조를 보자 만족스러워진 카카시는, 1차는 이쯤하자 생각하고 화제를 돌려주었다.



“사실 처음부터 말씀 드렸어도… 상황이 많이 다르진 않았을 겁니다. 알든 모르든, 개개인이 윤회안의 환술에 대응하는 건 불가능이고…….”


“뭔가 더 짚이는 건 없습니까? 시기라든가, 목적이라든가.”



네지가 마지막 봤을 때보다 훨씬 굵고 남자다워진 목소리로 물었다.



“시기는 아마도 이번 보름날이겠지. 원인은 역시 나에 대한 원망일까……, 난 린을 지키지 못했으니까. 그렇게나 좋아했는데. 하지만 대체 뭘 어쩌려는 건지만큼은 나도 짚이는 게 없어……. 다만,”


“다만……?”


“8년 전 그날과는 다르게 챠크라 갈취 사건들을 보면, 피해자들을 죽이지 않는 게 줄곧 이상했지. 말끔히 뽑아내면 즉사할 테고, 그게 더 쉬운 방법인데. 그 정도로 하는 건 분명 살려두기 위해서니까. 살아만 있으면, 챠크라는 얼마든지 회복이 가능하잖아. 그동안 내가 방관하다시피 할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였다. 사망자가 속출하는 상황이었다면 아무래도 이렇게까진 못 지내지.”


“흠, 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요……?”


“글쎄…….”



‘난 옛날처럼 닌자 마을을 번영시킬 거야!’ 문득 오비토가 말하던 그 ‘터무니없는 꿈’이 머리를 스쳤지만, 카카시는 그 말까지 꺼내지는 않았다. 보름은 불과 하루 뒤였다.




#8. 



아스마가 모은 경찰들은, 모두 이전엔 닌자였던 자들로 일반인들의 촬영이나 접근을 모두 차단하고 있었다. 그러나 거대하고 광범위하게 보일 챠크라 덩어리들은 역시 결계가 아니면 노출을 막기 힘든데…… 과연, 상대도 8년이란 세월을 허투루 보낸 것은 아닌지 환술은 더욱 강력해져 있었다. 아스마가 제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것이 무색하게, 닌자들은 또 다시 결계의 시기를 놓치고 만 것이다, 그날처럼. 하지만 이쪽도 마냥 똑같지만은 않다. 시간이 좀 더 필요할 뿐, 이 정도 환술에 결계를 치는 게 불가능은 아니고 견고함도 전보다 훨씬 강할 것이다. 


커다랗고 붉은 보름달이 음산하게 떠오르고, 나뭇잎의 닌자들은 각자의 술법으로 우선 달빛을 차단하고 있었다. 달을 통해 거는 환술이라 광범위하지만, 아마도 옛 시절 언젠가 있었다는 인계대전에서와 같은 강도는 아닐 것이었다. 


지금은 그 시대도 아니고, 한쪽 눈은 나한테 있으니까……, 오비토. 

카카시는 사륜안만 뜨고는 슬쩍 달을 올려다보았다. 휑한 벌판에 바람이 소용돌이친다. 결계가 완성되기 전까지만 본격적인 전투는 피하는 거다. 진짜는 그 다음이다. 카카시는 마른침을 삼켰다. 



“달을 통해 건 환술에 챠크라를 쏟아 부은 것 같지는 않으니, 예상대로 거대 챠크라는 다른 방식으로 이용할 심산일 거다.” 


“숨어서 환술만 걸 게 아니라면, 곧 모습을 드러내겠군요.”



카카시의 말에 시카마루가 침착하게 대꾸했다. 그래… 그렇겠지. 속으로만 말을 주워섬긴 후 옛 친구의 모습을 기억 속에 더듬으며, 카카시는 한 번 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때마침 마치 달에서부터 울리는 듯한 목소리와 동시에, 멀리 하늘에 익숙한 듯 낯선 인영이 나타났다.



[오랜만이야, 카카시.]


“대체 무슨 짓을 벌이는 거냐……, 오비토.”



사실 어떻게 살아 있는지, 살아 있다면 왜 돌아오지 않았는지, 그 간은 어떻게 지냈는지……, 자신이 얼마나 후회하고, 얼마나 미안해하고 있는지를… 혹시 조금이라도 알고는 있는지.


평소엔 궁금하고 묻고 싶었던 말들이 많았다. 그러나 막상 오비토를 눈앞에 두고는 그런 말들이 나오지 않았다. 언제나 한없는 냉정함이 먼저인 본능. 적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의 카카시는 그런 녀석이다. 오비토는 그것을 익히 알고 있기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이미 알고 있잖아. 빚을 받으러 온 거다.]


“린의 일로 날 비난하는 거라면 상관없어……, 하지만 왜 이런 식으로!”


[린? 그래. 그게 시작이었지. 확실히 넌 실망스러웠고, 그래서 원망했다. 어렵게 건진 목숨, 차라리 다시 죽고 싶을 만큼 증오스러웠어! 너뿐 아니라 이 세계 전체가!]


“…….”


[하지만……, 그 몇 번이고 심장이 찢기는 것 같은 증오의 불꽃을 견디며, 난 깨달은 게 있다.]


“깨달은 것……?”


[카카시, 너라면 알고 있겠지. 우치하의 이 눈의 힘은 최강이다. 세계의 존망을 결정할 수 있을 정도로.]



세계의 운명을 들먹이는 말에, 카카시뿐 아니라 모두가 몸이 굳은 채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나 우치하는 그와 함께 치명적인 약점도 갖고 있다. 바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금방 무너져버리는 하찮은 정신력.]


“…….”


[과거 4차 인계대전은 바로 우치하의 그런 ‘약점’ 때문에 일어났다. 난 그걸 어렸을 때부터 알고 있었어. 그리고 내 꿈을 위해서는 그 점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 극복 방법으로, 사랑하는 린과 결혼하려 한 거다. 하지만 다 수포로 돌아갔지. 네가, 카카시 네가 린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그, 그런…….”


[……어쨌든 중요한 건, 린의 죽음으로 겪은 괴로움도 사실 이성적으로는 예상 가능한 범위였다는 것이다. 즉, 죽음 자체를 예상하진 못했어도, 내가 우치하인 이상 그런 일로 미칠 수도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는 거다. 그래서 죽기 살기로 버텼다.]


“…….”


[그리고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이다……. 린까지 잃은 후에도 어떻게든 살아가는 네 모습을 보면서 깨달은 거야!]


“무슨……?”


[너와 합방하면 되겠다고!

아무리 절망하고, 때로는 절뚝이고 때로는 기어가는 것만큼 처참해도, 결코 삶을 포기하지 않는 네 강인한 정신력과! 우치하의 이 힘이 합쳐지면!! 분명 최강의 닌자가 태어날 거다!!!!]


[거절은 거절한다! 네가 실패해서 린이 죽었으니, 아무리 봐도 답은 너밖에 없다 카카시!! 빚 갚는 셈이라도 쳐라!!! 답은 네 유전자!!!! 내 꿈을 함께 이루자!!!!! 빨리 합체하자!!!!!!

내 아를 낳아도! 카카시! 준비는 다 되어 있다!!!!!!!!!!!!!!]


[카카시? 카카시…? 대답해라 카카시! 말줄임표라도 해! 숨 쉬라고! 어이!]



잠시 혼절한 카카시를 대신해, 늦은 결계 덕에 전 세계로 쩌렁쩌렁 울린 목소리를 들은 인류 전체가, 말줄임표를 해주었다.


 

“…….”



 

 

 

 

-To be continued by 옥수수나무 님

 

 

 

#예고.



―지킬 것이 있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지킬 것’이, 내 ‘정조’일 거라고는 개미 눈꼽만큼도 생각해 본적이 없다.

이 와중에 ‘어쨌든 내가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이라고 생각하는 내 자신이 저주스럽다.

무얼 위한 8년이었나. Aㅏ, 차라리 흑화해버리고 싶다.

-카카시                      


―그런데 이 상황……, 저 ‘악당’ 오비토의 ‘요구’를 들어줬을 때… 세상에 뭔가…… 치명적인 위험 같은 게 생기는 상황인 겁니까, 지금? ‘악당’이 성립 하냐고요. 어쩐지 그냥 들어주는 게 가장 무난히 대부분이 행복할 것 같은데요…….

아직 멀었구나, 시카마루. 머리만 쓰지 말고 주변을 둘러 보거라.

히익! 이, 이 사람들 갑자기 왜 저렇게 불타올랐어요?! 아, 아스마 씨까지??

-시카쿠&시카마루       


―카, 카카시. 정신 차려라, 사랑하는 내 라이벌 카카시여! 난 오비토의 말이 전혀 이해가 안 간다. 

뭐냐, 이 엄청 과학적이면서 불가사의하고 비밀스럽게 적나라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 상황은??!!?!?

(이해하지 마, 거기다 네 말 이미 엄청난 모순이고, 아니 그것보다 깨우지 마!)

-가이(+카카시)           


―안 미치려고 죽기 살기로 버텼다더니?? 이미 충분히 미쳤지 않냐니깐!!!!!!!!

내 카카시 선생님한테 무슨 개수작이야!! 선생님은 내꺼라니까!!!!!

선생님 애도 내꺼다!!!!!!!!!!!!!!

-나루토                     


―저, 전쟁이다!!!!!!!!!!!!!!!!!!!!!!!

-기타 등등                 



 




 

 

 

 

2016. 8. 24.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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